흰옷국의 동쪽에 구미호들이 살았던 선산고을이 있었습니다.
그 구미호들이 천년을 살자 차례차례 인간이 되었습니다.
구미호뿐만이 아닙니다. 그쪽 지역에 사는 짐승들은 무슨 이유인지, 다 천년을 산 뒤 인간이 되었습니다.
들쥐, 들개, 너구리, 여우, 다람쥐 같은 짐승들이 천년을 산 뒤 인간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날짐승이나 강이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 중에도 인간이 된 것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하지만 왜 구미호들이 살았던 선산 고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는 도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짐승이나 물고기가 인간으로 변신한 것들의 두목은 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름을 계생이라 했습니다. 부두목은 들쥐로 이름이 야서였습니다.
그렇게 온갖 짐승, 물고기들이 인간이 되어 2백여 떼를 이루었는데, 또 안타깝게도 하는 짓이 도적질이었습니다.
이웃하여 사는 고을의 백성들이 그 짐승, 물고기 종자들이 변신한 인간 도적떼에 시달리고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흰옷국의 서쪽 지역에 신령스런 바위고을이 있었습니다. 신령스런 바위고을이라 하여 고을 이름이 영암이었습니다. 구미호들이 살았던 선산처럼 오랜 역사가 깃든 고을이었습니다.
영암 고을은 너른 들에 긴 강을 끼고 바다를 두르고 있어 물산이 풍부했습니다. 가까운 이웃 만둣국과 서로 물산을 사고팔아 재화가 풍부한 부자 고을이었습니다.
어느 해입니다.
그 영암 고을을 비롯하여 가까운 7개 고을의 원님들이 임금님께 진상할 보물을 모았습니다.
궁궐을 새로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만둣국보다 더 크고 좋은 궁궐을 지어야 해.”
“암! 우리 흰옷국을 작은 나라라고 무시하는, 만둣국에게 보라는 듯이 화려한 궁궐을 지어야 해.”
그런 맘으로 7개 고을에서 7개 수레에 가득 실을 보물이 모였습니다.
“자, 이제 이 보물을 임금님이 계신 곳까지 안전하게 가져가는 일이 남았네. 듣자하니 구미호 선산고을의 도적 떼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친다니 그게 큰 걱정일세.”
“이번 보물을 호송할 사람은 무술도 뛰어나고 지혜도 뛰어난 자들로 뽑아야 해. 그래야 안심하고 보물을 보낼 수 있겠네.”
원님들은 의논 끝에 보물을 호송할 사람을 뽑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사람이 뽑혔습니다.
그 중에 영암 고을의 육손이도 들어갔습니다.
육손이는 별명이 이름이 된 젊은이입니다. 태어날 때 보니 두 손이 모두 엄지를 빼고 4손가락이 붙어서 하나의 손가락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붙어 있는 4손가락의 가운데를 갈라 둘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한 손의 손가락이 셋이 되었습니다. 두 손을 더하니 모두 손가락이 6개여서 육손이가 된 것입니다.
육손이는 어릴 적부터 손힘이 무척 셌습니다. 센 정도가 아니라,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아기 때 밥그릇을 손으로 쥐면 조각조각 깨져버렸습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성한 그릇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크자, 호두나 개암을 그냥 손바닥으로 비벼서 껍질을 벗겼습니다.
또 조금 크자, 머리통만한 돌덩이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다가 휙 던지는 데 그 돌덩이가 집 뒷산인 월출산 꼭대기까지 날아갔습니다.
황소만한 멧돼지가 마을에 내려왔을 때, 꼬리를 잡아 빙빙 돌린 다음 한 주먹에 때려잡았습니다.
그렇게 육손이 손 힘 자랑을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 육손이가 임금님께 진상할 보물 호송원으로 뽑힌 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처녀였습니다. 밥 잘하고 빨래 잘하고 눈치가 빠른 처녀였습니다.
동네 큰 잔치를 치르게 되면 음식 장만이며 손님 대접하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 상일꾼이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열 사람, 아니 스무 사람 몫을 해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 있었습니다. 흠이라기보다 이상한 생리현상이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방귀를 자주 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 다 큰 처녀가 방귀를 뿡뿡 뀌고 다닐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일하다 방귀가 나오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한적한 곳으로 번쩍 달려가서 방귀를 뿡 뀌고, 다시 일하는 곳으로 번쩍 달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 눈에는 그 처녀가 더욱 부지런하게 보였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방순이었습니다. 어릴 적 방귀를 자주 뀐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방순이는 그런 이름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름과 상관없이 부지런하고 착한 방순이를 좋아했습니다.
그 방순이도 육손이와 함께 보물 호송원으로 뽑혔습니다. 육손이는 도둑을 막을 무사로 뽑혔고, 방순이는 호송원들의 밥과 빨래를 책임졌습니다.
이윽고 임금님께 진상할 보물을 가득 실은 7개 수레가 영암 고을을 출발했습니다.
큰 탈 없이 임금님이 사는 고을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임금님이 사는 고을이 머잖은 능수버들 고을에 이르렀습니다.
능수버들 고을은 큰 고을입니다. 임금님이 사는 큰 고을에 가려면 이 능수버들 고을을 지나쳐야 합니다.
“이제 사흘이면 임금님이 사는 고을이다. 오늘은 여기서 푹 쉬도록 하자.”
큰 여관을 잡아 짐을 푼 뒤, 모처럼 푹 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육손이! 자네는 마음을 놓지 말고 보물 짐을 잘 지켜야 하네.”
그래도 긴장을 풀지 말고 보물 짐을 잘 지켜야 한다고 호송대장은 육손이에게 특별이 부탁했습니다.
“예! 걱정 마십시오. 호송을 마칠 때까지 책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들 음식과 함께 술을 마셨지만 육손이는 음식만 먹고 보물이 있는 방 앞으로 갔습니다. 보물 옆을 한 시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구미호 선산고을의 도적떼가 이미 와있었습니다. 벌써 여러 날 째, 영암 고을에서 올라오는 보물 수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이 기회다. 저자들이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한데다 술까지 마셨다, 그러니 오늘 밤 모두 죽인 다음 보물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
구미호 선산 도적떼의 대장 닭의 화신인 계생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물론이지요. 오늘을 위해 칼을 갈았습지요.”
쥐의 화신인 야서가 역시 번들번들 벗겨진 이마를 번쩍이며 음흉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 때입니다.
방순이가 방귀를 뀌고 싶었습니다. 방에서 나온 방순이는 변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변소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디 방귀를 뀔 마땅한 데가 없나 살피던 방순이는 저만큼 대나무로 엮은 통들이 주욱 늘어선 것이 보였습니다. 한 2백여 개나 되는 커다란 통들이 울타리처럼 줄줄이 놓여 있었습니다.
‘옳다. 저 틈새에 숨어서 방귀를 뀌면 되겠다.’
방순이는 그 사람 키만큼 큰 대나무 통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가운데쯤 자리를 잡고 방귀를 뀌려하는데 똥까지 마려웠습니다. 그래서 이왕 방귀를 뀌는 김에 똥까지 싸버리자 하는 맘으로 치마를 내리고 주저앉았습니다.
‘푸드득! 뽕!’
똥 싸는 소리에 방귀 소리가 우렁찼습니다.
“어휴, 시원해!”
일을 다 본 방순이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걸었을 때입니다. 어디선가 참았던 웃음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속삭이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크크크! 그 년 똥 한번 많이 싼다, 어휴 똥 냄새!”
“히히히! 방귀 소리는 어떻고? 내 생전에 이리도 큰 방귀 소리는 첨이다, 그나저나 냄새지독하다.”
“냄새는 지독하지만 참아. 참고 기다리면 똥냄새 방귀냄새가 아닌 황금 냄새를 맡을 테니까.”
“그래, 저것들을 모두 죽여 똥통에 빠트려 버리세. 그리고 우린 황금덩어리 속에 빠져 보세나.”
방순이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분명 도적들의 목소리였습니다.
방순이는 단숨에 육손이에게 달려가 이러쿵저러쿵 도적들이 한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육손이는 또 호송대장에게 의논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호송 대장의 물음에 방순이가 꾀를 내었습니다.
“저 대나무 통을 세어보니 2백 개 남짓이지요. 숫자로 봐서 분명 구미호 선산 고을의 계생이 이끄는 도적떼가 분명하지요. 이렇게 하지요. 간장을 팔팔 끓여 저 대나무 통에다 붓는 거예요. 그러면 도적놈들이 통속에서 튕겨져 나올 거지요. 그 때 육손이가 돌멩이를 던지면 모두 때려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 참 좋습니다. 저는 돌덩이를 2백여 개 준비해놓겠습니다.”
“좋아. 이 일이 성공하여 도적을 모두 잡으면 그 공은 방순이와 육손이 것이네. 임금님이 아시면 큰 칭찬은 물론 상까지 주실 걸세.”
세 사람은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여관 집 주인을 깨워 간장을 끓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을 시켜 대나무 통에 팔팔 끓인 간장을 한 바가지씩 붓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생각한 대로 뜨거운 간장 물에 몸을 덴 도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통속에서 튕겨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튕겨져 나오는 도적은 육손이 담당이었습니다. 머리통만한 돌멩이가 비가 오듯, 화살처럼 도적들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2백 명이 넘는 도적떼가 한 순간에 말끔히 소탕이 되었습니다. 두목인 계생과 부두목인 야서도 허망하게 목숨 줄이 끊어졌습니다.
소란한 소리에 구경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죽어 자빠진 도적들을 들녘으로 끌고 갔습니다. 들녘 똥통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황금덩어리에 풍덩 빠져 보려던 도적들은 똥통으로 풍덩 들어가고, 황금은 무사히 임금님이 사는 고을에 도착했습니다.
호송 대장의 자세한 보고를 듣고도 임금님이 또 방순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도적은 어떻게 잡았느냐? 황금과 보물을 어떻게 지켰느냐?”
“예! 제 똥과 방귀가 도적을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제 똥과 방귀가 황금과 보물을 지킨 겁니다.”
“우하하하! 우하하! 내 평생에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임금님은 평생 처음으로 입이 찢어지게 웃었습니다. 신하들이 모두 있는 자리였지만, 체면 같은 건 내팽개쳐버렸습니다. 용상에 바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습니다.
그래도 배꼽은 꼭 잡았습니다. 웃다가 배꼽이 빠진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