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 둘. 애틋하고 애절한 사랑 앙암바위
<나주목사가 정무를 본 금성관. 사진 오른쪽에 비석들이 즐비하게 있다.>
<김좌근 영세불망비-허리가 부러져도 좋고>
<영세불망비 뒤>
<영산강과 앙암바위>
<앞 쪽은 수변공원과 자전거길>
<사진으로만 그럴 듯 하다. 들어가지 마시라, 쓰레기 악취는 두 번째고 우선 뱀이 무섭다.>
나주목사가 정무를 본 금성관 뜰 한 쪽에 나합의 치마폭에 놀아난 영의정김공좌근영세불망비(領議政金公左根永世不忘碑)가 있다.
항룡유회(亢龍有悔), 화무십일홍이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길은 둘뿐이다. 하늘을 날지 못하면 다시 내려와야 한다.
그 대단한 김좌근의 비석이 허리가 부러져 흙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다 어찌어찌 이어 붙이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서 지난날의 허망한 영화를 온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역사가 무서운 줄 알았으면 어찌 그렇게 기고만장 포악무도한 짓으로 세상을 어지럽혔을까?
잠시 그 김좌근 비 앞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이그러지고 굴절된 역사의 정의와 진실을 생각한다.
요즈음 인구에 회자되는 우스개다. 이승만을 초보운전, 박정희는 과속운전, 최규하는 대리운전, 전두환은 난폭운전, 노태우는 졸음운전, 김영삼은 음주운전, 그리고 김대중 안전운전, 노무현 모범운전, 이명박 역주행, 박근혜 무면허운전, 그런 얘기인데 꼭 우스개만은 아니다. 정확한 맞춤 현실풍자다. 윤보선이 빠졌는데 최두부라는 별칭도 있었던 최규하를 꼭두각시운전으로 교체, 윤보선을 대리운전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데 오늘도 이쥐놈닭그년의 십상시와 반신반인 추종자들인 영구박멸세력, 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갑질 일당, 또 찌라시와 종편떡에 나와 복날 개 거품 튀기며 이쥐놈닭그년 찬가를 불러대는 꼭두각시들은 이 글에 핏발 눈 흰자위에 칠하며 헌법개판소나 걱정원, 견찰 등을 동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종자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제 새삼스럽지도 두렵지도 않다. 누구든 죽으면 썩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이제 김좌근도 구더기 밥이 되어 백골은 진퇴 되었다. 넋은 어떨지 모르지만, 비바람 찬 서리에 묵묵히 서있기만 하니 김좌근을 보는 맘이 그저 편하고 눈도 시리지 않다.
하긴 김좌근송덕비만 눈총 받을 일도 아니다. 금성관 동헌 뜰에 즐비한 그 기적비들이 과연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치적비일까? 혹여 과대 포장되고 짝짜꿍 담합, 은근한 강요, 강압으로 세운 것은 아닐까? 이명박 그 쥐새끼가 독도에 지놈 기적비 세우듯 말이다.
일전에 그 무식해서 용감이 무성하다는 놈도 지 친일파 애비를 독립지사로 둔갑 시키려 했던 현실에서 웃기는 짬뽕, 탐관오리, 매국노들의 비가 없다고는 못하리라.
하지만 선열들의 비 앞에서 어찌 근거 없는 비웃음을 날리고, 진정성을 폄하 훼손하겠는가? 그래서 한껏 감정을 누르고 잠시 그 즐비한 비석군들을 휘둘러본다.
그런 다음 나주가 낳은 조선 말엽의 미녀 양도내기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이번엔 가까이에 있는 앙암바위를 찾았다.
영산포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홍어다. 흑산도 근해에서 잡은 홍어를 배에 싣고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에 이르면 마침 먹기 좋게 곰삭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영산포의 먹거리 하면 잘 곰삭아 발효된 홍어를 연상하게 된 것이다.
요즈음 그 홍어가 잘 잡히지 않고, 따라서 값도 만만치 않아 서민들은 감히 먹을 엄두를 못내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칠레산 홍어도 맛있고, 그냥 갓 잡은 싱싱한 작은 홍어나 가오리도 맛있다. 굳이 비싼 홍어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 장어로 유명한 구진포를 지나 산 하나를 휘돌면 영산포구가 지척이다. 그런데 그 물살이 휘도는 산은 56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다. ‘앙암(仰岩)바우’ 또는 ‘아망바우’라 하는 곳이다.
마주보는 건너편은 창랑정이다. 그 창랑정 일대의 들녘과 절벽이 어울려 풍광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바위 아래 깊은 소(沼)를 이루어 돛배가 다니던 시절 자칫 배가 파선하기 일쑤여서 뱃사람들에겐 두려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앙암바위 아래에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흑산도, 제주도, 중국으로 가는 배들이 안전한 항해를 위해 이곳에 용진단을 세우고 제를 올렸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아름답고도 슬픈,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때는 백제 시절이다. 앙암바위가 있는 절벽 앞에서 굽이치는 영산강을 서로 마주보며 앙암바위의 허리쯤에는 진부촌, 맞은편 창랑정 쪽엔 택촌 마을이 있었다. 이 택촌은 훗날 양도내기, 그러니까 나합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어느 날이다. 택촌 마을의 아랑사라는 어부가 작은 배를 끌고 영산강으로 고기잡이를 나왔다. 그런데 강 건너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를 저어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진부촌에 사는 아비사라는 처자였다.
“처자! 어디 사는 누구시오. 어인 일로 이리 슬피 우시오?”
“저는 진부촌에 사는 아비사라 하지요. 오래 전 홀아버지가 병이 들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물고기를 잡숫고 싶다 해서 나왔으나, 물고기를 잡을 길이 막막하여 울고 있지요.”
“마침 잘 됐소. 여기 내가 잡은 물고기가 있으니 가져다 드리시오.”
아랑사는 자기가 잡은 물고기를 아비사에게 주었다.
“내일도 여기서 만납시다. 나는 날마다 고기를 잡으니, 처자에게 나눠주리다.”
그렇게 인연이 돼 두 사람은 앙암바위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이럴 수는 없다. 아리따운 아비사를 택촌 놈에게 줄 순 없다.”
“그래, 그 녀석을 없애버리자.”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진부촌 젊은이들이 아랑사를 없애 버릴 계획을 세웠다.
어느 흐린 날, 달도 없이 어두컴컴한 날 밤이다. 그날도 아랑사는 아비사를 만나기 위해 영산강을 건너왔다.
“아비사가 앙암바위 위에서 기다린다고 전해 달라고 했지요.”
진부촌 젊은이 하나가 거짓말로 속여 아랑사를 앙암바위 위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젊은이들과 합세하여 아랑사를 바위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죽은 줄도 모르고 아랑사를 기다리던 아비사의 얼굴에는 날마다 수심이 더해갔다. 날이 흐를수록 아비사의 몸은 수척해져만 가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다시 아비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일도 열심이었다. 예전처럼 저녁마다 어디론가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아무래도 이상해.”
마을 젊은이들은 아비사의 뒤를 밟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아비사가 앙암바위 위로 가니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나 아비사와 사랑을 나누는 것 아닌가?
“이건 우리 마을이 망할 징조다.”
이번에도 마을 젊은이들은 구렁이와 아비사를 없애버리기로 했다. 사실은 그 구렁이는 아랑사가 변한 것이었다.
아무튼 진부촌 젊은이들은 아랑사가 변한 구렁이와 아비사를 다시 바위 아래로 굴려 버렸다.
그 일이 있은 뒤 다음 날이다.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밤마다 서로 얽힌 두 마리의 구렁이가 진부촌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진부촌 젊은이들이 하나 둘, 시름시름 앓다 차례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랑사와 아비사를 우리 진부촌 젊은이들이 죽였다 하오.”
“큰일이오. 이제 젊은이들이 그 죄 값을 받는 가보오.”
마을 노인들이 나서서 무당을 불렀다. 그리고 아랑사와 아비사를 위해 위령제를 지내며 씻김굿을 했다. 그리고 해마다 8월이면 날을 받아 씻김굿을 이으며 아랑사와 아비사의 넋을 위로했다.
다행히 그런 뒤로는 두 마리의 구렁이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마을 젊은이들이 죽지도 않았다 한다.
앙암바위! 이제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 얘기를 전설로만 간직한 채 말없이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아랑사와 아비사의 사랑의 상징이었던 그 앙암바위도 사(死)대강 사업 덕으로 주변 단장을 했다. 앙암바위 건너편에 수변공원과 자전거길이 조성된 것이다.
생각대로라면 앙암바위를 바라보는 영산강변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 잘 생긴 아랑사와 아리따운 아비사의 후손들이 그곳 자전거 길을 신나게 달리며, 이제 슬프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이어가리라.
하지만 나그네가 그곳을 찾았던 2015년 8월 16일, 수천만원인지, 수억원인지 모를 많은 돈을 들여 조성했을 그 수변공원과 자전거 길은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에끼 사기꾼놈들! 백성들 귀한 세금으로 지놈들 똥구녘을 닦았구나.”
이명박일당과 당시 ‘니나노 얼시구 좋다’ 쥐에게 붙었던 전남지사 박준영에게도 욕을 한바가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무성한 잡초, 더럽고 악취 나는 그곳 영산강변, 앙암바위 바라보이는 강둑에서 재빨리 차로 돌아왔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놔두면서 인간이 공존할 방법을 찾을 순 없을까? 진부촌 젊은이들이 아랑사와 아비사를 죽인 벌을 받듯, 사(死)대강으로 사기치고 치부한 놈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뒈져….(이하 생략)’
그래서 아랑사와 아비사의 애틋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여기까지다.(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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