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여신 2>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덥다. 이럴 때에 사랑의 여신을 만나는 건 행복이다. 여성은 사랑의 여신이 되는 거고, 남성은 사랑의 여신을 만나는 것이니, 그게 싫다면 이 글을 읽지 않으시면 된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에 이어 이번에는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앞으로나 뒤태로나 아름다운), 같은 이름 로마의 비너스(비+너츠=꿀벌과 땅콩 아닌가? 달콤하고 고소한 게 사랑 아닌가? 물론 독초도 있지만….)를 만나본다.
Σ 그리스인이 만든 세상
태초의 세상은 카오스였다.
헤시오도스는 그리스 신들의 족보 ‘신통기(神統記)’에 ‘카오스는 무(無)로, 처음으로 무언가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오스로부터 무언가가 태어나니 그 존재는 가이아, 타르타로스, 닉스, 에레보스이고, 이는 각각 땅, 지하, 밤, 어둠의 신이다.’라고 적었다. 따라서 카오스(그리스어: Χάος)는 ‘텅 빈 공간’을 의미하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초신이기도 하다.
태초신 카오스가 짝을 선택했으니 땅의 신 가이아(그리스어: Γαι^α)다.
둘이 결합하니 하늘의 신 우라누스(그리스어: Οὐρανός), 바다의 신 폰토스, (그리스어: Πόντος), 산의 신 오우로스(그리스어: Ούρος)를 비롯하여 수많은 신들이 태어났다.
<가이아>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은 태초의 세상이었다.
땅의 신 가이아는 카오스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우라누스를 선택했다.
가이아의 추측은 들어맞았다. 우라노스는 대단한 정력가였다. 가이아는 거인족 티탄(Titan) 12남매,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Cyclopes) 3형제와 손이 100개 달린 거인 헤카톤케이레스(Hecatoncheires) 3형제 등 생기면 생기는 대로 쑥쑥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외눈박이 퀴클롭스 형제들과 손이 100개인 헤카톤케이레스 형제들이 허구헌 날 쌈박질로 날을 새고, 형과 누나들인 티탄 12남매에게도 행패를 부려 조용할 날이 없었다.
우라누스는 괴물 같은 자식들이 지긋지긋해졌다.
“이런 몹쓸 자식들을 낳다니. 다시 어미 뱃속으로 들어가도록 해라.”
어느 날 우라노스는 그 말썽장이 자식들을 가이아의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로스(Tartaros : 가이아의 동생이기도 하며, 지옥의 끝자락 나락(奈落)이다. 지상에서 타르타로스까지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다) 속에 다시 밀어 넣어버렸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덩치 큰 퀴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 형제들은 가이아의 뱃속인 지옥에서도 소동을 멈추지 않았다. 가이아는 그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웠다.
‘자식은 많이 낳아야 한다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 귀찮게 해도 꾹 참고 자식 쑥쑥 낳아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 그리고 애들이란 게 다 싸우면서 크는 거고 말야. 우라노스 이 나쁜 놈!’
가이아는 이제 우라노스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하고는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너희들 나 좀 보자.”
가이아는 티탄 12남매를 차례차례 불러서 면담을 하였다.
“네 아버지가 더 이상 자식을 못 낳게 해야겠는데, 도와주겠느냐?”
“드디어 내 시대가 왔구나. 예, 어머니! 제가 할게요.”
야심에 찬 회심의 미소를 감추며 막내 아들 크로노스(Cronos)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이다.
“이제 조용해서 살만하구려. 퀴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들이 없으니 참 좋구려. 이리 오시오. 이번에는 아주 착한 자식을 만들어봅시다.”
우라누스가 침실에 들어와 염치코치 없이 가이아를 끌어안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이것만 없애버리면 되는 거지요?”
아들인 크로노스는 어머니가 준 기다랗고 날카로운 낫 스키테(Schythe)로 아버지 우라누스의 생식기를 댕강 잘라 버렸다.
“아아악! 안 돼. 이런 호래자식이!”
우라노스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차라리 죽고 말지, 이제 살아도 못 살아요, 볼 장 다 본 거다. 우라노스가 천추의 한을 품고 땅의 신 가이아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가니,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졌다.
<아버지 우라누스의 중요한 물건을 자르는 크로노스>
그래도 하늘의 신 우라노스다. 댕강 잘려진 물건! 그게 명품 물건이었다.
잘려진 우라누스의 명품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가이아에게 튀어 이번에도 자동으로 임신이 되었다.
하긴 가이아에게 있어서 자식 낳는 거라면 일도 아니다. 얼마 뒤 가이아의 뱃속에서 자식들이 쑥쑥 기어 나오니, 바로 복수의 여신들인 ‘에리뉘에스’와 거인족 ‘기간테스’가 그들이다.
하지만 조금 거시기한 상태여서인지 태어난 자식들의 운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기간테스는 하반신이 뱀의 형상인 거대한 거인이었다. 나중에 크로노스의 아들이며 조카뻘인 제우스와 싸운 뒤 지옥의 나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에리뉘에스들은 부모를 살해한 자들이나 맹세를 어긴 자들을 끝까지 쫒아가 처참하게 죽여 버렸다. 바로 천륜을 어긴 패륜아와 배신자를 응징하는 비정한 살인업자 신이었다.
Σ 아프로디테(Aphrodite, Ἀφροδίτη, Venus)의 탄생
닭이 천 마리면 그 중에 봉황도 한 마리다. 우라노스의 명품 피가 바다에도 떨어져 생명이 되었으니, 바로 우리 인간의 사랑을 풍성하게 만든 아프로디테의 탄생이다.
그러니까 우라노스 생식기에서 흘린 피가 바다에도 떨어져 한 덩이의 거품이 되었다. ‘거품’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는 ‘아프로스(apsros)'다. 그렇게 우라노스의 피는 아프로스 상태로 오랜 세월 바다를 떠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아프로스에서 아름다운 여신이 태어나니 바로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거품에서 태어났다는 뜻)다.
얼굴과 몸매만 예쁜 게 아니다. 아프로디테가 입을 열어 말하니 목소리도 달큼하다.
‘햇살이 맑은 날 파도치는 바다를 보라. 밀려오는 푸른 파도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바람은 비말을 날릴 것이다. 아! 그 누군들 탄성을 지를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파도 위 그 하얀 거품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아름다움과 사랑도 그런 것이다. 그 파도위에서 부서지는 거품과 같이 찬란하고도 덧없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여! 사랑의 맹세를 칭송하는 이들이여! 내 말을 깊이 새길지어다.’
아프로디테의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순간,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미꽃이 되었다. 목소리는 달큼했지만 그 뜻은 진중했다. 하지만 모두들 아프로디테의 목소리가 장미꽃이 되는 것만 보였지, 가지에 돋은 가시는 보지 못했다.
누구든 눈 멀고, 생각조차 굳을 만큼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프로디테 탄생의 다른 얘기도 있다.
우라노스와 가이아가 낳은 거인족인 티탄족 중 에피메테우스(인간에게 불의 사용법을 알려준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와 그의 아내 판도라가 낳은 딸 디오네가 제우스와 만나 낳은 딸이라고도 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생식기를 자르고, 그곳에서 흘린 피가 바다에 떨어져 거품이 되고, 그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게 점잖은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보기 좋게 만든 족보일 것이다.
요즈음도 배신자의 후손들이 애국지사의 자식으로 위장하고, 백성의 고혈을 빠는 족속들이 자신들을 자선가로 포장을 하고 거들먹거리니 위선의 역사는 참으로 긴 것이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을 밝히거나, 보기 좋게 포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무튼 그 거품이 오랜 세월 푸른 파도를 따라 흘러다니다,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의 바닷가에 이르게 된다.
태초의 세월, 그 어느 봄날, 보름달이 덩실 비추어 하늘과 바다에 두 개의 보름달이 있을 때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그림-아프로디테의 탄생>
파도 위 거품 속에서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아름다운 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바다의 신이 큰 조개를 여신의 발아래 바쳤다. 여신이 조개에 올라타자, 미풍의 신 ‘아우라’와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입김을 불어 조개는 키프로스(키+플러스=열쇠가 많은 섬이니 좋은 이름이다) 섬에 닿았다. 마침 섬에 머물던 계절의 여신 ‘호라이’자매가 반겨 맞으며 언니인 탈로(Thallo)가 아프로디테의 알몸에 옷을 입혀주었다. 이 때 또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운 꽃들이 사방에서 피어나니 바로 장미꽃이었다.
호라이 자매는 아프로디테를 올림포스로 데려갔다.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은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자태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출렁이는 금발 머리, 갈색 눈, 빛나는 상아빛 피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육체는 아름다움의 표본 그 자체였다.
<모에라이 3여신>
“참으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신이로다.”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 등 생명체의 운명줄을 쥐고 있는 세 ‘모에라이(고대 그리스어: Μοῖραι, 운명들)’여신들이 아프로디테에게 아름다움과 사랑, 항해중인 배와 선원들을 수호하는 직책을 맡겼다.
<키프러스(사이프러스) 섬의 아프로디테 바위(Aphrodite's Rocks)봄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 자정에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아프로디테 바위’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거품에서 태어난 장소’라는 전설이 있다.>
Σ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사랑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다. 그는 못생긴 외모와 다리를 저는 불구 때문에 여자복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올림포스 신들 중 끝내주는 손재주를 지녔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거인족인 티탄족과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티탄족 때문에 제우스는 골치가 아팠다.
‘누구든 티탄족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주면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주겠다’
제우스가 그런 말을 하자, 헤파이스토스의 귀가 번쩍했다.
‘아버지의 신임도 얻고 미인도 얻고, 이거 양수 겹장 아니냐? 내가 누구냐? 바로 발명왕 아니냐?’
헤파이스토스는 곧장 대장간에서 뚜닥뚜닥 무기 하나를 만들었다.
“아버지! 이거 번개라는 건데 한 번 써보세요.”
헤파이스토스는 번개무기를 만들어 제우스에게 바쳤다. 제우스는 그 무기로 티탄족들을 하나하나 토벌할 수 있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헤파이스토스의 물건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아내로 맞았지만 대장간 일을 핑계로 집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남편을 보려면 아프로디테가 일부러 대장간으로 찾아가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남편을 찾아가봐야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아름다움과 사랑에 목마른 자들에게는 그게 천운이었을 게다.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여신 아프로디테에게도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어디 멋진 남신이 없을까?’
왜 없겠는가? 그 때 나타난 게 호전적인 성격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전쟁의 신 아레스였다. 아프로디테를 보고 넘어가지 않을 사내는 없다. 아레스는 곧장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
밤낮으로 아프로디테의 치마폭에 쌓여있으니 자식도 쑥쑥 태어났다. 공포를 뜻하는 포보스와 두려움을 뜻하는 데이모스, 그리고 조화를 뜻하는 하모니아와 사랑의 신 에로스가 그들이다. 그런데 에로스가 언제나 아프로디테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나중에 아들로 추가했다는 말도 있다.
<헬리오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아프로디테의 불륜을 고자질하다.>
아무튼 벌건 대낮에도 사랑에 빠진 이들을 지켜본 태양신 헬리오스(아폴론)가 참다못해 헤파이스토스에게 이 사실을 밀고했다.
“헤파이스토스! 지금 자네 침실에 누가 있는 줄 아는가?”
“조금 전까지 아무 일 없었는데…. 아내의 몸을 샅샅이 살펴보기까지 했거든.”
“이 사람아! 그러지 말고 확실한 증거를 잡게.”
<아프로디테의 몸을 검사하는 헤파이스토스-이 사람아! 아레스는 침대 아래 숨어있어.>
“증거? 그래 증거를 잡아야 해.”
당장 침실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 풍로의 불길을 올렸다.
“어디 맛 좀 봐라.”
헤파이스토스는 뚜당뚜당 청동을 두드려 거미줄보다 더 가는 그물을 짰다. 그런 다음 아프로디테의 침대에 그 그물을 쳤다. 침대가 흔들리면 그 그물이 침대를 감싸는 자동그물이었다. 그걸 모르고 그날도 아프로디테는 아레스를 불러들여 마악 달큼한 시간을 즐기려 할 때였다.
“여보, 이게 무슨 짓이요?”
갑자기 헤파이스토스가 포세이돈을 비롯하여 여러 신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물에 걸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벗어나려할수록 그물이 몸을 조였기 때문이다.
“저 꼴이 보기 좋냐?”
제우스가 부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예! 저도 아프로디테와 저 그물 속에 갇혀있고 싶어요!”
헤파이스토스는 여러 신들 앞에서 아내를 망신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르메스를 비롯한 신들은 비난은커녕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등 엉뚱한 생각만 했다.
“그래도 자네 아내 아닌가? 어서 그물을 풀어주게. 그리고 이렇게 망신이나 주려면 차라리 깨끗이 헤어지게. 그럼 내가 청혼하겠네.”
한 술 더 뜬 포세이돈의 설득으로 헤파이스토스는 그물을 거두어 두 사람을 풀어주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헤파이스토스의 아이를 낳아주지 않은 게 아니라, 낳을 수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남의 자식만 넷이나 낳았으니 헤파이스토스가 아내를 원망 할만도 했다. 그래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건 참으로 졸렬한 남편이요, 남자라는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쯔쯔쯧!
<올림포스 신들을 데리고 아내의 밀회 현장을 찾아간 헤파이스토스, 자랑할 게 뭐가 있다고?>
아무튼 그녀는 사랑의 여신이다. 아레스 말고도 많은 사랑을 했는데, 남편인 헤파이스토스 외에도 네 명의 신, 세 명의 인간과 인연을 맺었다.
전쟁의 신 아레스하고는 안테로스(Anteros), 데이모스(Deimos), 포보스(Phobos), 하모니아(Harmonia)를 낳았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하고는 결혼 왕 히멘과 거대한 남근을 가진 정력왕 프리아포스(Priapus)를 낳았다.
그물에 갇히고 싶어서 부러워했던 전령(傳令)의 신 헤르메스하고는 유노미아(Eunomia),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 페이토(Peitho), 프라이푸스(Priapus), 로도스(Rhodos), 타이케(Tyche)를 낳았다. 나중에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남녀양성을 가진 추니가 된다.
밀회 현장에서 아프로디테를 편들어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에릭스를 낳았다.
인간이자 트로이 이다산의 양치기인 안키세스(Anchises)와는 아이네아스(Aeneas)와 리르노스를 낳았고, 부테스(Butes)하고는 에리스(Eryx)를 낳았다.
아도니스와도 사랑을 나누었는데, 전쟁의 신 아레스가 질투 끝에 멧돼지로 변하여 아도니스를 받아 죽였다. 바람(Anemos)이 불면 피고 지는 아네모네(Anemone : 바람꽃)꽃은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한다.
<아프로디테의 진주>
Σ 자유인 아프로디테
1. 연인 디오니소스를 장가보내다
‘네 짝은 헤파이스토스다.’
제우스가 여신들 중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에게 못생긴 절름발이 대장간 신을 짝으로 점지했을 때 아프로디테는 두 말하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는 그녀에게는 그게 오히려 바라던 바였을지 모른다.
사랑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것도 걸거침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아프로디테의 사랑법은 한 마디로 폴리아모리(Polyamory : 비독점적 다자연애관계)라 할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하였지만, 아레스와 사실상의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자식을 넷이나 낳았다. 자신과의 사이에 자식을 둘이나 낳고 떠나버린 디오니소스에게는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떠나버린 애인을 위해 중매장이까지 된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왕비 ‘파시파에’에게 아리아드네라는 딸이 있었다.
파시파에는 무척 정력적인 여성으로 인간만으로는 만족을 못하고 황소와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미노타우로스인데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뚱이를 가진 괴물이었다.
불같이 화가 난 미노스 왕은 교묘한 미궁을 만들고 불륜으로 태어난 괴물을 가두어버렸다.
당시 크레타의 속국 아테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다. 그중에 가장 가혹한 것은 인신조공인데 매년 일곱 명씩의 소년소녀를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밥으로 바쳐야 했다.
“내가 이 가혹한 조공을 마무리 짓겠다.”
아테네의 후계자였던 테세우스가 아테네 사람들의 희생을 막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미노타우로스를 없애버리겠노라고 했다.
테세우스는 제물이 될 소년소녀들을 데리고 함께 미노스 왕을 만났는데 이때 아리아드네 공주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괴물에게 죽어선 안 돼요.”
아리아드네는 미궁에 들어가는 테세우스를 구하기 위해 칼과 실타래를 주었다. 테세우스는 아드리아네 덕분에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풀어놓은 실타래를 더듬어 무사히 살아나왔다. 결국 아리아드네는 부모와 조국을 버리고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적국의 왕자 테세우스를 따라 아테네로 가는 배에 올랐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비정한 배신자였다. 도중에 낙소스 섬에 잠시 정박했을 때였다. 아리아드네가 잠든 틈을 타 몰래 배를 바다에 띄우고 도망을 쳤다. 생명을 건지게 해준 은인이며, 더욱이 자신과의 사랑에 빠져 부모와 조국을 배신한 여인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그렇게 배은망덕한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고 홀로 남아 망연자실 울고 있는 아리아드네를 불쌍하게 여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프로디테였다.
“가여운 아리아드네여! 걱정하지 말아라. 너 자신을 사랑하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가 너를 사랑하게 될 거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은 다른 사람을 계속 사랑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란다.”
울고 있는 아드리아네를 다독이며 아프로디테는 자신있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다. 이 세상에 널린 게 남자다. 내가 멋진 남자를 다시 소개해주마. 내가 한 번 살아봤던 남자여서 잘 아는데, 진짜 괜찮은 남편감이다.”
아프로디테가 나서자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프로디테는 서슴없이 자신의 과거 애인이었던 디오니소스를 아리아드네의 짝으로 맺어주었다.
그뿐인가? 아드리아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금관을 선물로 주었다. 버림받아 슬픔에 잠긴 여인에게 한 번 살아봐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멋진 신랑을 데려다준 것만도 어딘데 결혼선물까지 준비하다니 역시 아프로디테다. 게다가 그 금관은 그녀의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살살 꼬여서 만들게 한 것이니 지상에 하나뿐인 명품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아리아드네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라 영원히 살 수 있지만 인간 아리아드네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연인을 기리기 위해 아프로디테가 아리아드네에게 결혼선물로 준 금관을 하늘로 올려 보내 별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애인에게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주기도 한 아프로디테이기에 한 번 점찍은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얼굴 이쁘지, 몸매 죽여주지, 피부 빛 환상인데다, 또 아프로디테에게는 마법의 허리띠가 있었다. 바로 캐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라는 허리띠다. 이 마법의 허리띠는 아프로디테의 남편이 자신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금실은실로 짜고 갖가지 실전용 춘화도까지 그려 넣은 것이다. 누구든 그 허리띠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마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헤파이스토스는 그 마법의 허리띠를 아내에게 만들어주었단 말인가? 실수인지 의도적인지 본인만이 알겠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아내의 밀회 현장을 보면서 은근히 즐기는 관음증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아프로디테가 자유롭게 여러 남자와 즐길 때 헤파이스토스 딱 한 번 연애를 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지상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달라며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찾아왔다.
“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니….”
남의 손에 있는 사과가 커 보이는 법, 지상 최고의 미인인 아내를 두고도 헤파이스토스는 그만 꼴까닥 숨이 멈추는 걸 느꼈다. 쇳조각을 두드리던 망치를 내던지고 달구어진 쇳조각보다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덥석 아테나의 손을 잡아 가슴에 안았다.
하지만 평생을 처녀의 몸으로 지내는 아테나에게 있어서 헤파이스토스는 징그러운 한 마리의 바퀴벌레였다.
“이거 무슨 짓이야?”
아테나가 헤파이스토스를 사정없이 밀쳐냈는데, 불같이 일어난 헤파이스토스의 물건에서 그만 하얀 정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헤파이스토스의 정액은 한동안 대기를 떠돌다 지상에 안착했다. 그리고 땅 속 깊이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엉겹결에 그 정액을 받아들인 땅의 여신 가이아가 아테나 대신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태어나게 된 건 네 책임도 있으니 네가 기르렴.”
가이아는 처녀인 아테나에게 아들을 주어 기르도록 했으니 후일 아테네의 왕이 되는 에릭토니우스다. 그는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뛰어난 솜씨로 전차를 발명하기도 했는데, 역시 다리를 절었다고 한다.
어쩌다 단 한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헤파이스토스의 물건은 본질적으로 부실했다. 그러기에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눈으로 보고 즐기면서 욕정을 해결하는 관음증 환자였을 거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아들을 하나 얻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2. 아도니스
시리아의 왕 테이아스는 스미르나(Smyrna)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입이 싼 테이아스 왕은 곧잘 딸 자랑을 했다.
“내 딸이 아프로디테보다 훨씬 아름답다네.”
“무어라? 나보다 더 예쁘다고? 에로스야! 가서 테이아스 왕을 혼내주도록 해라.”
화가 치민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Eros)를 팔불출인 왕에게 보냈다.
쏜살같이 달려간 에로스가 스미르나에게 사랑의 금화살을 쏘았다. 사랑의 대상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테이아스였다.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화살에 맞은 스미르나는 아버지에게 견디지 못할 정도의 정욕을 품게 되었다. 갖은 기회를 엿보던 끝에 스미나르는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욕정을 풀었는데 그만 임신을 했다. 처녀인 딸의 배가 점점 불러오자 테이아스 왕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이냐? 누구 아이냐?”
왕은 딸에게 아기의 아비가 누구냐고 물었다.
“사실은….”
스미나르는 사실대로 고백을 하고 말았다.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걸 안 테이아스 왕은 창피한 마음에 칼을 뽑아 딸을 죽이려고 했다.그러자 아프로디테는 스미나르가 불쌍해졌다. 마악 칼날이 날아가는 순간에 아프로디테는 스미르나의 몸을 몰약나무로 바꾸어버렸다. 그런 다음 나무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를 꺼내 상자에 넣어 명계(冥界)의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 맡겼다.
바로 이 아이가 아도니스(Adonis)이다.
아도니스가 아름다운 미청년으로 자라자, 페르세포네는 남편 몰래 아도니스를 침실로 불러들였다.
“아니, 아이를 키워달라고 했지, 애인을 만들라고 한 건 아니잖아? 아도니스를 돌려다오.”
“흥! 어림없는 소릴하지마. 내가 키웠으니 내 것이야.”
아프로디테가 맡겼던 아이를 돌려 달라고 했으나 페르세포네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제우스 신이이여! 이 문제를 해결해주세요. 나도 잘 생긴 아도니스를 갖고 싶답니다.”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에게 호소하였고, 제우스는 아도니스의 1년을 셋으로 나누었다. 1/3은 페르세포네, 1/3은 아프로디테와 지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내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해주었다.하지만 아프로디테가 누구인가? 규칙을 어기고 자신의 마법의 띠로 아도니스의 정욕을 부추겨 독점해 버렸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이 왜 있는 줄 알아?”화가 난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의 애인인 아레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질투에 불탄 아레스는 아도니스가 수렵에 나가자 멧돼지로 변신해서 죽여 버렸다.
그 뒤로 페르세포네가 죽은 아도니스를 되살려서는 반년은 자기가 데리고 살고 반년은 아프로디테에게 보냈다고 한다.
3. 헬레네
미르미돈족의 왕 펠레우스(Peleus)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Thetis)의 성대한 결혼식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대거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러나 에리스(Eris)라는 여신 한 사람은 초청을 하지 않았으니, 그 역할이 불화의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잔치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이다. 불청객인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불쑥 연회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황금사과 한 개를 집어 던지더니,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
“이 사과의 주인은 바로 나야.”
“뭐라고? 아름다운 여신이라 했으니 바로 나지.”
아름다움이라면 결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헤라(Hera)와 아테나(Athena), 아프로디테(Aphrodite)간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여러분들이 사과의 주인을 결정해 주세요.”
세 여신은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누가 사과의 주인으로 어울리는지 가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누가 끼여들겠는가? 모두들 바늘로 입을 꿰맨 듯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결국 세 여신은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에게 판결을 부탁했는데 제우스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리 없다.
“그래, 저 녀석에게 맡기면 되겠구나.”
제우스는 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트로이 이다산의 양치기 파리스를 심판관으로 골랐다.
“헤르메스야! 세 여신을 이다산으로 모시고 가서, 파리스의 심판을 받도록 해라.”
그렇게 해서 세 여신은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를 따라 이다산으로 갔고, 트로이의 왕자로 양치기를 하고 있는 기구한 운명의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
“난 어마어마한 재물과 권력, 보태어 명예까지 주겠다.”
헤라의 제안이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지혜를 주지.”
아테나는 지혜를 조건으로 내밀었다.
“날 선택하면 나만큼 아름다운 지상 최고의 미녀를 주겠다.”
아프로디테의 제안이었다.
다 달콤한 말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파리스의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은 아프로디테의 제안이었다. 파리스가 아직은 자신이 왕자인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일개 양치기로서 지상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어찌 침이 꼴깍 넘어가지 않았겠는가?
“바로 당신,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답소. 내게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주시오.”
파리스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명예를 얻었고, 파리스는 세계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파리스의 판결 - 명예인가? 지혜인가? 미녀인가?>
하지만 그 약속에 큰 문제가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말한 지상 최고의 미녀 ‘헬레네’는 그리스 아가멤논왕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임자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에게는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파리스, 이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이하게 될 거야.”
그렇게 상황을 만든 아프로디테도 그곳 이다산에서 또 한 건을 건진다.
“아니, 이 무슨 횡재인가? 저토록 잘생긴 인간이 있다니….”
<아프로디테와 안키세스 그리고 두 아들 아이네아스와 리르노스>
아름다운 양치기 청년 안키세스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다. 그녀는 옷자락을 펄럭이는 단 한 번의 유혹으로 안키세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 날 새는 줄 모르는데, 아이네아스와 리르로스라는 자식까지 생겼다.
후일 트로이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자, 큰 아들인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를 건설한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로마의 시조 아이네아스의 어머니로서 널리 숭배되기도 한다.
<파리스에게 약속된 선물 헬레네를 넘겨주는 아프로디테>
그런데 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이다산의 양치기를 하고 있었는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왕비 헤카베는 파리스(인류의 수호자를 뜻하는 알렉산드로스 Alexander라고도 불렀다)를 낳을 때 온 도시가 불타는 꿈을 꾸었다. 예언자는 그것이 트로이의 멸망을 의미하는 불길한 전조이며 아기가 태어나면 죽여야 한다고 했다.
프리아모스왕은 파리스를 양치기에게 주며 이다산에 버리라고 했다. 아기를 버린 양치기가 5일 만에 다시 가보니 놀랍게도 아기는 곰의 젖을 먹고 아직 살아있었다. 순간 아기가 불쌍해진 양치기는 자신이 직접 아기를 키웠다.
아무튼 그렇게 이다산에서 양을 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파리스의 운명을 바꾼 건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결정한 바로 황금사과 사건이다.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빼앗긴 아가멤논 왕이 쳐들어왔고, 그 트로이 전쟁으로 트로이는 멸망했으며 파리스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쟁 내내 아프로디테는 트로이를 도왔다. 하지만 파리스에게 앙심을 품은 두 여신들은 그리스를 도왔다.
아프로디테는 전쟁중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 싸우다 위험에 처하자 구해 주었고, 자신의 아들인 아이네아스가 데오메데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 순간에는 대신하여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또한 그녀는 트로이가 멸망한 순간 탈출한 아이네아스(안키세스를 유혹해서 낳은 아들)가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를 세우는 걸 돕는다.
<멸망한 트로이에서 도주하는 아이네아스 가족,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를 세운다.>
4. 피그말리온
키프러스 섬의 왕자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이상적인 여자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당시 키프로스 섬의 처녀들은 혼기가 되면 일정동안 항구에서 몸을 팔아 결혼 자금을 마련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현실을 보며 피그말리온은 세상의 모든 여자를 창녀 또는 악녀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독신으로 살고 싶지도 않아 상아로 정교하게 만든 여자 조각상을 만들어 아내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여보! 사랑해요.”
피그말리온은 수시로 조개껍질이나 조약돌, 꽃, 보석이나 구슬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 뿐인가? 상아조각에 입을 맞추고 끌어안기도 했다. 알몸의 조각을 아내처럼 생각하고 잠자리도 같이했다.
“언제봐도 당신은 참 아름답지요.”
조각상에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와 목걸이로 장식을 하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소망을 키웠다.
키프러스 섬은 아프로디테 신앙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성대한 축제를 있었다. 그 축제가 있는 날 피그말리온은 여신께 제물을 바치면서 간곡하게 고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시여! 부디 제 아내가 될 수 있게 상아여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소서.”
그 간절한 기도가 끝나자 제단의 불길이 세 번이나 치솟아 올랐다.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그렇게 계시를 받은 피그말리온은 득달같이 집으로 왔다.
“오! 나의 여인 갈라테아여!”
피그말리온이 상아조각상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상아로 만든 조각이 살아 있는 여인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살갗은 피가 흘러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졌다. 눈은 샛별처럼 빛나고 앵두같은 입술에서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와 결혼해주시오.”
“그러고말고요. 이미 저는 당신 거랍니다.”
마침내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결혼식을 올렸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친히 하객으로 참석해주었다.
그 뒤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어떻게 살았을까? 파포스라는 딸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피그말리온이 아름답고 정숙한 갈라테아를 만나 행복하기만 했을까?
“여보! 더 비싼 보석, 더 예쁜 꽃, 더 좋은 옷!”
갈라테아의 요구는 점점 끝이 없었다.
더욱이 아름다운 갈라테아가 점점 늙어가니 피그말리온은 새로운 상아조각상을 조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봇! 지금 뭐하는 거예요?”
‘와장창! 쨍그렁!’
아까운 상아조각이 박살이 났음에 분명하다.
‘그거 봐라. 사랑은 물거품이다. 우리 아버지 우라노스가 아들인 크로노스에게 허망하게 물건을 잘리고 그 거품에서 내가 태어났다. 내가 달리 거품에서 태어난 줄 아느냐? 바로 그 어떤 사랑도 물거품이라는 걸 깨닫게 함이다.’
그 꼴을 보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에 대해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된 조각상 갈라테아를 보고 감격해 하는 피그말리온>
이상으로 그리스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만나보았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다른 누구도 너를 사랑하리라.’고 했던 너그럽고, 용감하고 적극적인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자신의 사랑에도 거침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의 사랑에도 거칠 것이 없었던 아프로디테였으니, 오늘 누구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아프로디테에게 소원을 빌어봄직하다.
사랑이란 게 설령 물거품이라 해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제 좀 시원해지셨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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