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만 보는 짧은 이야기>
두 여인
막걸리나 한 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뜬금없이 어릴 적 가설극장 변사의 틀에 짜인 대사가 들린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밤, 오늘 밤! 여러분을 모실 영화는 이수일과 심순애! 아! 그들은 왜 사랑을 했고, 왜 떠나야 했는가?’
그 대사와 함께 어릴 적 모습이 겹치니, 세월이 뒤로 나는 화살이다.
“아! 그 시절이 좋았어.”
밑도 끝도 없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막걸리 집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친구들이 손을 번쩍 들어 반긴다.
“어야! 댓글 댓똥령이 한 마디 했네. 이제 피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르네.”
자리에 앉자, 술보다 말 안주가 먼저 나온다.
“칠푼이가 또 무슨 말 했단가?”
“잉! 역사도 거닭한 2014년 9월 16일 대한미쿡 걱가 국물회의에서 ‘댓똥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닭눈깔을 부라렸다네. 그러자 종박 견찰이 쪽집게를 들고 나와 ‘사이버 수사로 엄닭하겠다’며 닭똥구녘을 쪽쪽 핥았다네.”
좋은 술안주는 바로 친구고, 그 친구와 나누는 정담이라더니 말이 참 맛있다.
“지 애비 ‘닭까지 마시오’ 시대로 가는 갑네. 하지만 ‘까지 말란 닭을 깐다’고 뭐가 무섭겠나? 한 3년 ‘지랄발닭’하고 갈 거다 닭지.”
“그래서 요즈음 사이버 망명이 유행이라네.”
“사이버 망명?”
“아따, 자네도 이름을 클라우드로 바꿔 이름 망명을 안 했는가? 바로 그거네.”
“어! 좋은 소식이네. 그 사이버 망명 어떻게 한단가?”
“잉! 근께 러시아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거라네. 그 텔레그램 내려받기 횟수가 카카오톡을 앞지르고 그 제작사가 프로그램 한글화를 추진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네.”
“그래. 노가리와 쥐새끼가 러시아에 부지런히 조공을 바치더만, 그 혜택이 돌아오는 갑네. 철의 장막이라 우리가 손가락질 했던 구 소련의 후계 러시아가 선진 언론 민주국으로 이제 우덜의 존경을 받구먼.”
“산전벽해요, 화무십일홍이 달리 나온 말이겠나?”
“그래, 오늘 술안주가 좋네. 대취할 예감이 드네. 흐!”
그렇게 1절이 끝나고, 막걸리 대포 한 순배가 돈 뒤, 술안주 대화가 2절로 이어졌다.
2년 전 상처를 하고 외롭게 살았던 무선이가 여자 얘기를 꺼냈다.
“나 재혼 상대를 결정했네.”
“두 여자를 놓고 고민 중이더니. 그래 누구로 정했는가?”
“소피아로 했네.”
“그 립스틱 짙게 바르고, 얼굴에 온통 화장품 떡칠한 소피아?”
“그 소피아 화장 솜씨가 일류라네. 젊었을 적 미장원을 개척해서 유명 난 배우들 화장까지 해준 솜씨여.”
“알았어. 암튼 화장한 얼굴로 스무살인지, 쉰살인지, 알 수 없던 그 여인으로 정했단 말이지?”
“그렇다네. 그 소피아의 민낯을 보고 결정했네.”
“민낯? 화장 안하니 더 예쁘던가?”
“예쁜 게 문제 아니네. 무엇땜시 그동안 화장을 했는가 모르겄데. 민낯을 보니 열여덟 동안이더라고.”
“엥! 참말인가?”
“그렇다니까. 그래서 딱 결정했네. 소피아를 재혼 상대로.”
“아! 젊은 각시로 회춘도 하니 일석이조. 축하하네. 근데 또 다른 여인 ‘둥자’는 집안 좋고, 학벌 좋고, 무엇보다 돈도 많다고 했잖은가? 돼지를 얼굴보고 잡아먹느냐 하면서….”
“그래서 말년에 그 ‘둥자’ 덕 좀 볼까 했는데, 그 집구석을 보니 순 싸가지가 바가지데.”
“왜?”
“아, 지 오빠가 박사에 빙원장이고, 언니는 대학괴수고, 동생도 부부의사다. 자랑에 침 발랐지, 근데 실은 다 거지들이데. 거지도 거지발싸개 같은 쓰레기 거지. 아, 근께 며칠 전 인사차 갔어. 소고기 먹으러 가자데. 갔더니 수입소고기 직판장으로 가데. 그것도 일곱이 갔는데, 4인분만 시키데. 그러고도 낯짝 좋게 채소 더 주라, 서비스로 몇 점 더 안 주냐? 하이고 구멍 있으면, 쥐구멍이든 닭구멍이든 들어가고 싶데.”
“입만 열면 집안 자랑, 돈 자랑 하더니 그게 순 철판기름칠였구먼.”
“그렇다니까. 거기서도 옷 자랑, 집 자랑, 보석 자랑, 지그 집 새끼들 먹이고 입히는 자랑만 하데. 그래서 나도 한 마디 하고 마쳤네.”
“무슨 말?”
“다음엔 제가 아주 저렴하게 백두산 산삼깍두기, 흰 사슴 생고기, 그리고 진주비취백옥탕으로 대접하겠습니다. 했지.”
“진주비취백옥탕?”
“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거지 시절에 먹었던 식은밥, 배추시레기, 쉰두부를 섞어 팔팔 끓인 것이 바로 진주비취백옥탕 아닌가?”
“으히! 근께 한 방 어퍼컷으로 먹였구먼.”
“그렇지. 그리고 다음 날 둥자에게 선언했네. 나 곧 약혼할 여자가 있다고.”
“그랬더니?”
“돈과 명예, 미모, 행운을 한 번에 놓치는 처사라고 하데.”
“돈, 명예, 미모, 행운?”
“푸하하하! 푸푸푸!”
우린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입에서 아까운 막걸리가 품어 나오고, 비싼 안주도 대책 없이 튀어나갔다.
다행스레 손님이 우리뿐이어서 큰 실수는 없었다.
“야! 잘했다. 그럼 오늘 술값은 니가 내라. 자, 우리 건배 하자. 민낯이 아름다운 열여덟 살 소피아와 우리 친구를 위하여!”
우린 그렇게 건배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술자리에 나갈 때 뜬금없이 가설극장 변사의 대사가 생각났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보톡스를 맞아 팅팅 부은 칠푼닭의 표독스런 얼굴, 그 눈깔이 떠오르며 이상한 말이 귀에 들리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술꾼 여러분! 오늘 밤, 오늘 밤! 여러분을 모실 영화는 닭똥구녁 잡아먹은 오리발 내밀기! 아! 그들은 왜, 7시간 모를 했고, 왜, 모했는가를 숨겨야 했는가?’
아! 이상타! 술과 안주를 사랑하는 내가 그만 막걸리에 취했나 보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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