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46
강진(康津)의 상가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 건너갈제
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인 게 김제(金堤)로다.
외갓집 마을!
이 세상 많은 언어가 있지만, 참으로 따뜻한 낱말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외갓집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보통명사를 특별명사로 바꾼 마을이 또 외갓집 마을이다.
세상에 단 하나, 마지막 남은 외갓집 마을이라고 생각해보자.
마음이 따뜻해지는가? 쓸쓸해지는가?
따뜻해지면 그대는 아직도 인정과 정감이 있는 사람이다.
쓸쓸해져도 마찬가지다. 외갓집 마을은 마음에 켜는 따뜻한 등불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8월 26일, 그렇게 잃어버리는, 잊어버리고 있는 인정과 정감을 찾아 외갓집 마을로 갔다.
김제군 금구면 사방길 110-5 번지, 농촌 마을의 훈훈한 인정과 정감이 살아 넘치는 푸른 들녘에 자리한 낙성리와 산동리 2개 마을이 바로 그 외갓집 마을이다.
익산쪽에서 금구를 지나 전주로 가는 들녘 길에서 여기쯤이겠지 하고 마을길로 들어섰다. 나지막하게 휘어진 길을 내려서니 김제 외갓집 마을 정보화센터 건물이 눈앞이었다.
젊은 여성 두 분이 사무를 보고 있어서 이것저것 묻고 있는데, 마침 마을 회의를 하러 온 울타리 영농법인 송장열 이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 점심시간이고 바쁜 일정을 앞두고도 나그네의 궁금증을 친절하게 풀어주었다. 바로 외갓집 마을에서 만난 인정이고 정감이었다.
요즈음 어딜 가도 사람 만나 길 묻기가 어렵다. 인적도 드물지만,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전 이장님이었다는 송 이사님을 차에 모시고 외갓집 마을 주변을 둘러보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참으로 금캐는 마을에서 금을 캔 듯, 감사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금구는 말 그대로 금을 캐는 땅이었나 보다. 일제강점기 시절 마을 앞 너른 들에서 사금을 주웠다 한다. 지금은 그 들판이 국립종자원의 시범포여서 새로운 볍씨를 얻는 곳이라 한다. 금싸라기 땅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쌀이야말로 땅에서 얻는 진정한 금인 것이다. 우리를 수수천년 살려온 금처럼 귀한 식량이다.
그 금을 줍던 금구 들녘을 내려다보는 고깔봉에서도 일제가 금을 채굴했다 한다. 지금은 폐광이 된 냉굴에서 마을 주민들이 여름 한 철 장사를 한다고 했다. 에어컨이 필요 없을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부지런을 떨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얘기가 콩쥐 팥쥐 설화다. 바로 이곳이 그 콩쥐 팥쥐의 얘기가 탄생한 곳이라 한다.
이곳의 들녘을 적셔주는 두월천은 바로 콩쥐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너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또 마을 주민들이 팥죽이 방죽이라 부르는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을 막은 제방을 두죽제(頭粥堤)라 하는데 머리 ‘두(頭)’는 콩(豆)과 팥(荳)의 유사형태이고 향토지인 ‘완산지’에는 콩 ‘두(豆)’로 표기돼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 금구면 둔산 마을에는 콩쥐 아버지의 성씨인 최씨가 약 540여 년 전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왔고, 마을 동쪽 250여m 지점에 팥죽이 방죽이 있다. 이 방죽은 최씨의 후손들이 오랜 세월 가뭄에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한 소류지고 지금도 그렇게 이용한다고 했다.
또 이 팥죽이 방죽에서 가까운 ‘앵곡’ 마을은 조선시대 여행객들이 머물던 ‘역’이었고, 콩쥐팥쥐전의 필자가 이곳에 머물면서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를 얻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최씨 집성촌인 둔산리 바로 인근에 후처이자 팥쥐의 어머니로 나오는 배씨 집성촌인 상리 마을이 있었다. 또 콩쥐의 선행에 탄복해 밤과 은행 등 과일을 베푸는 장면은 바로 가까이 금천저수지의 옛 지명 ‘대율’과 ‘은행’이 뒷받침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마을 외갓집 마을에 금처럼 귀한 얘기가 있음이 당연한 일이다.
콩쥐가 꽃신을 떨어뜨린 두월천, 콩쥐의 아버지 최만춘이 살았던 집터였다는 거북바위, 팥쥐가 콩쥐를 유인하여 밀어 넣은 팥죽이 방죽인 두죽제(豆粥堤), 왜인들이 개다리를 걸어놓고 먹었다는 개다리 등, 그렇게 따뜻한 인정과 정감에 취해 외갓집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 외갓집 마을에서는 철에 따라 영양쌀과 찰보리, 황토밤, 호박 고구마, 포도, 배, 모싯잎떡, 절임배추를 판매하고, 조청, 두부, 염색, 김장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즈음 먹거리에 비상이 걸렸다. 공장지대, 사대강 주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일본 방사능 피해가 있음직한 수산물이 특히 경계 먹거리다. 또 가공과정에서 둔갑 시키는 깨, 콩, 고추 등의 부식물과 떡이며 간장, 된장, 고추장 등도 겉만 보고는 안심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한 우려와 염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집이 외갓집 아니겠는가? 외갓집 마을! 부디 그 따뜻하고 행복한 이름으로 우리 모두를 포근히 안아주었으면 한다.
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인 게 김제(金堤)로다.
가장 소중하고 귀한 금인 먹거리를 일어 내는 곳이 금구의 외갓집 마을이고 그 외갓집 마을이 모여 김제 땅이 되었다. 호남가 한 자락이 흥겨운 이유다.
농사(農事)하는 옥구백성(沃溝百姓) 임피사의(臨陂蓑依) 둘러 입고
정읍(井邑)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淳昌)이라.
금캐는 마을에서 금을 캐고 농사짓는 옥구백성을 만나러 나그네는 또 길을 떠난다.
<김제 외갓집 마을 정보화 센터>
<콩쥐의 아버지인 최씨 집성촌>
<콩쥐 아버지의 집터였다는 거북 바위>
<팥쥐가 콩쥐를 밀어넣은 두죽제의 팥죽이 방죽>
<콩쥐가 꽃신을 빠트린 두월천.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역류하는 생명의 탄생을 맡은 여성형의 물길이다. 가운데가 모악산, 오른쪽이 고깔봉>
금을 캐며 왜인들이 개다리를 걸어놓고 먹었다는 개다리>
<금을 줍던 들판, 지금은 국립 종자원의 볍씨종자포라고 한다>
<아름다운 외갓집 마을 지도>
<금광이 있던 고깔봉, 지금은 냉굴로 천연 에어컨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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