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더러운 전쟁 베트남전
유고인들은 옆의 사람이 뜨거운 국을 먹을 때 혀가 데인다는 것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한다.
아랍인들은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이고 친구의 원수는 내 원수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거지에게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한다.
<미국 용병으로 베트남으로 돈 벌러 가는 줄도 모르고. 그 때는 그랬다>
역사적으로 고증은 된 건지, 아니 건지,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우리 민족은 5천년 역사에 998번의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다. 하지만 그걸 다 물리친 위대한 민족, 끈질긴 민족이다. 더욱이 한 번도 침략전쟁을 한 적이 없는 백의민족, 평화민족이다.’
대략 그런 얘기였다.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은 우리 백의민족, 평화민족에게 최초의 침략전쟁이었단 말인가?
한 마디로 더러운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1960년 베트남 전쟁 때 한국은 무얼했을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베트남 중부지역의 꽝아이성(省) 빈호아 마을이 있다. 꽝아이성은 예전에 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호치민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유명 휴양지인 다낭에 간 다음 다시 버스로 3시간 정도 가는 곳이다. 지금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의 고장이지만 베트남 전쟁의 최대 비극 중의 하나인 ‘밀라이촌 학살사건’의 ‘선미’ 마을과 한국군 작전지역이었던 ‘빈호아’ 마을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아직도 전쟁의 상흔과 역사의 아픔이 생생히 기억되고 각인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곳에 위령비가 있다. 바로 ‘한국군 증오비’다. 그 비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트랑 방 마을 푹격 사진 '전쟁의 공포' 퓰리처 상을 받았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이 학살에서 희생된 자의 수가 총 430명이며, 그중 268명은 여성, 109명은 50세에서 80세까지 노인, 82명은 어린이, 7명은 임신부였다. 2명은 산 채로 불에 던져졌으며, 1명은 목이 잘렸고, 1명은 배가 갈라졌으며, 2명은 강간을 당했다. 2가구는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퐁니촌 위령비>
또 다른 위령비가 있다. 역시 베트남 중부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촌의 위령비다. 마을 입구 두 그루 당산나무 사이에 7미터 높이의 위령비가 있고 이렇게 새겨져 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희생당한 민간인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비문이다.
‘꽝남성 디엔반현 디엔안사 야유나무에서 남조선 군대에 의해 74명의 인민이 학살당했다. 1968년 2월12일(음력 1월14일).’
희생자들의 명단과 나이도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이다.
<전쟁에는 모두가 피해자다. 군인도 민간인도. 다만 권력에 미친 정치인만 웃는다>
물론 더러운 전쟁의 두목격인 미군들의 만행은 한 술 더 뜬다.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베트남 꽝아이성 선미 지역 주민 504명을 학살한 밀라이(MyLai) 사건이야말로 끔찍한 전쟁의 지옥도 그 자체다. 그걸 아는지 미군은 이 선미 마을을 밀라이라 바꿔 부른다고 한다.
그날 새벽 5시, 9대의 헬기를 타고 온 미군 100여명이 마을 어귀 500미터 부근에서부터 4시간 동안 살육을 자행했다. 그들은 어린아이와 여자를 포함 504명을 학살하고 윤간하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갔다고 한다.
<보트피플. 바다로 탈출한 민간인만 150만명에 달했다 한다>
<미군의 고엽제 살포, 민간인도 군인도 피해자였다>
그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이며 피해국인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도 40년이 다 되어간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희생자 가족들 가슴에 남은 상처는 아직도 생생하다. 누가 걸핏하면 이런 일들을 역사에 맡기자고 하는가?
이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을 파병한 것은 박정희였다. 그래서 박근혜는 더욱 역사에게 맡기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그런 몰상식한 말을 하는 자들을 용서하거나 이해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그런 미치광이 같은 인간들이 인간의 낯가죽을 뒤집어쓰고 잘난 체 으스대게 해선 안 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알먹고 꿩먹고. 미국에게 잘 보이고 돈 벌고>
그런데 1960년 베트남에 왜 그 더러운 전쟁이 발발하였던가?
호치민 등 베트남 민족의 강력한 독립운동에 프랑스가 식민통치를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그러자 이번엔 미국이 동남아시아에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북위 17도선 이하에 남베트남 친미정부를 세웠다. 북베트남은 곧바로 통일전쟁에 들어가고 미군은 ‘얼싸 좋다’ 개입했다. 그러나 서구열강들도 약소민족의 독립을 가로막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참전을 거부할 때, 미국의 추파를 받은 박정희는 ‘지화자 좋다’ 돈에 환장한 부나방이 된 것이다.
그렇게 더러운 베트남 전쟁은 특혜와 비리로 얼룩진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추종자들에게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했다. 파병 군인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흥청망청 치부하며 개발독재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결과 한국은 치명적인 빈부격차와 문어발 재벌의 고름을 잉태하며 겉으로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양심 없는 추악한 나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당시 연인원 40만 명이 참전한 한국군은 5천여 명이 전사했고, 수만 명이 고엽제 등 부상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가해자는 그렇다 치자. 아무 죄 없는 수백만의 베트남인들이 인면수심의 더러운 군인들에게 짓밟히고 학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나 피해에 대한 대책과 보상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같은 선상에서 선의의 참전 한국군에 대한 보상도 미흡하다.
<제주 강정 마을. 경찰에 짓밟힌 성채와 문정현 신부>
그리고 오늘도 한국의 지배층은 더러운 짓을 자행하고 있다. 베트남 출신 노동자들의 이용이 그것이다. 자본과 제국의 이익을 위해 더러운 짓을 하도록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 미해적기지 케이슨제작장 점거 고공시위, 강정평화대행진 등 평화를 원하는 강정 주민들의 항거에 베트남 노동자들을 내세워 구사대로 이용하고 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근혜는 더러운 전쟁 시 학살당한 베트남인들에게 이번에도 또 인명학살이 아닌 정신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강정 마을 들머리. 강정은 똑 같은 베트남 전쟁이다>
이제 캄보디아도 베트남도 우리의 이웃이고 형제이다.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고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역사에 맡기자는 말은 인권말살, 강탈과 폭력, 살육의 전쟁을 인정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특히 12월 대선을 맞이하여 역사를 외면하는 그런 자들이 누구인지? 깊이 통찰하고 성찰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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