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베트남 여행기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기 1

운당 2012. 10. 6. 07:47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기

 

1. 여행기를 쓰면서

 

녹차밭

 

차나무가 날 바라본다

생글생글 웃고 있다.

 

녹색 손 발 흔들며

싱글벙글 웃고 있다

 

바람이랑 이슬, 햇빛 단장

너무 예쁘다

 

눈이 부셔 눈 감고

슬그머니 껴안으니

오월의 푸른 옷 입혀준다

 

<보성 녹차밭> 

보성 녹차밭에 갔을 때다. 이 땅의 주인인 아이들이 녹차밭 여기저기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었다.

세상에 보기 좋은 그림이 이 것 말고 또 있을까? 아이들 글 읽는 소리와 밥 먹는 소리,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세상에 제일 행복한 소리라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덩달아 연필과 기록장을 꺼내 동시 한 편을 쓰며 모처럼 아이들이 되어보았다.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인 아이들>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기를 쓰면서 문득 그 보성 녹차밭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이 세상 어디건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있는 한 이 세상은 존재할 것이다. 말로만이 아닌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미래를 위해 현실이 존재해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프라하의 봄, 체코 프라하를 짓밟은 소련군> 

캄보디아도 한국처럼 근현대를 지나며 고통과 역경을 뼈저리게 겪은 불행한 나라 중의 하나다. 특히 1975~79년의 내전 때는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한국도 왜국 장교출신 다까끼 마사오인 독재자 박정희의 유신시대였다.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짓밟고 총칼로 위협하는 철권통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얼마 전 망치로 맞은 듯 함몰된 두개골로 박정희 시대의 학정과 학살을 드러낸 장준하 선생, 그리고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사형집행 된 인혁당 날조사건의 비극 등이 모두 이 때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과 캄보디아는 그 비극과 압제의 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응징당했지만 그의 딸 박근혜가 아버지의 구테타와 유신을 옹호하며 대권을 노리고 있다.

 

<캄보디아의 봄은 크메르 루즈가 짓밟았다.  그의 후예 훈 센이 지금도...>

캄보디아도 역시 학살의 주범인 크메르 루즈 집단이었던 훈 센이 총리를 하고 있다.

역사를 말하는 입도 어쩜 박근혜와 훈센이 그리 똑같을까? 비극이고 업보인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명박근혜으로 지칭되는 쥐새끼와 닭 일당을 비롯, 친일, 친미, 착취와 강탈에 가까운 짓을 서슴지 않는 무리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둘러보며 내내 떨치지 못한 화두다.

1968 프라하의 봄, 1975 캄보디아의 봄, 1980 서울의 봄은 다른 이름의 동의어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이다.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불법 침략한 소련군은 탱크로 프라하를 짓밟았다. '체코사태'라고도 하는 쏘련의 군사개입으로 프라하의 봄은 꽃을 피우지 못했다.

 

<다까기 마사오가 총에 죽은 뒤 찾아온 서울의 봄. 29만원이 광주시민을 학살했다>

한국도 1979년 박정희가 총탄에 죽은 10·26사태 이후 싹을 틔우던 민주와 자유의 염원과 운동은 80517, 29만원짜리 전두환의 군홧발에 짓밟혀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세 나라 다 민주화의 봄은 그렇게 강대국, 독재자, 학살자들의 무자비한 억압과 탄압으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역사의 과제로 남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 탄압자, 학살자, 독재자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채 바퀴 돌며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가해자의 일방적 헛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