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
함평만의 누리해안길
함평만은 함평천지의 시작점이다. 자손대대로 풍요와 번영이 이어지길 소망하는 우리네들의 오랜 삶터다.
그 함평만의 시작점인 함평항을 찾아 군유산을 내려온다. 함평항의 건너편은 무안군 도리포유원지다. 그러니까 함평만이 함평군과 무안군을 아우르는 큰 항아리라면 함평항과 도리포 유원지는 그 항아리의 들머리다.
함평항의 지리적 명칭은 함평군 손불면 학산리 해은 마을이다. 조선시대까지 어업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고, 2006년에 어촌정주어항이 되었다. 이후 국가관리연안어항으로 승격을 위해 명칭을 ‘해은항’에서 ‘함평항’으로 개칭하고 해양마리나 시설, 항로준설, 연안정비, 소득증대 등 개발사업이 진행중이라 한다. 그러나 개발은 항시 신중해야 되리라. 한 번 망쳐버린 자연환경, 생태계의 복원은 기간도, 비용도 문제지만, 우리와 우리 후손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함평항에서 함평읍 석성리 돌머리해수욕장에 이르는 길이 함평만의 함평쪽 갯길이다. 이 25.65Km에 이르는 길을 요즈음에는 ‘해안누리길’이라 부르며 석축을 쌓고, 해당화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2011년 7월 12일,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이 장마가 개면 여름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적막하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인간도 자연 속 하나의 점이다. 비도, 바다도, 갯벌의 무수한 생명체가 우산 속에 서있는 나그네를 정겨운 벗으로 반겨준다.
자연과 하나 되는 맘으로 갯벌에 내려가 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갯벌 가득 발발 거리며 돌아다니던 작은 게들이 재빠르게 제 구멍을 찾아 몸을 숨긴다. 지금껏 남의 손에 있는 사과를 크게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저 게들에게 나는 탐욕자요, 포식자며, 침입자일 뿐이다. 남의 허물만 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더니,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중가면을 쓴 껍질뿐인 평화주의자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술렁이던 갯벌은 조용하기만 하다. 발 아래 갯고동이 눈에 띈다. ‘저것도 삶아서 쪽쪽 빨아 먹었는데….’ 머리에 그런 생각이 있는데, 저들이 마음을 열까? 군침을 삼키는 침입자의 기세에 눌려 갯고동은 숨을 생각조차도 못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갯벌에서 물러나 저만큼 떨어지니, 그제야 안심했는지, 게들이 하나 둘, 어느새 갯벌 가득이다.
함평항에서 해안누리길을 따라 안악해수욕장에 이른다. 뜻밖이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섬은 아닌데 ‘섬마을 선생’의 노래비가 서있다. 해당화는 지고 원추리가 화사하게 피어난 꽃밭에 섬처녀가 있다. 이미자의 가요를 새긴 조형물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작은 섬, 외로운 섬, 그리운 섬이다. 섬, 섬들이다. 섬마을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듯 우리 인간의 섬들이 오순도순 모이고 모여서 이 너른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은 손님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장맛비가 개기를 기다리고 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이미자의 노래처럼 기다림과 사랑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 감정의 산물이다. 그게 사라지면 우리 인간은 이 자연에서 도태된 하나의 종(種)이 될 것이다.
여름 해수욕장, 사람이 북적거려야 할 그 모래밭에 오늘은 고즈넉이 비가 내리고 고깃배 몇 척이 한가롭기만 하다.
한동안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섬마을 처녀와 사랑에 취해 있다가, 안악을 떠난다. 1.4Km의 아름다운 해당화길(월천방조제)을 즐기며 일명 ‘일공구’에 이른다. 맨 처음 공사를 시작한 곳이어서 ‘일공구’라 한다는데, 일제강점기인 1935년 ‘삼양사’의 ‘손불농장’ 간척공사의 산물이다. 이후 갯땅이 농토가 되었고, 고소하고 쫀득한 맛좋은 함평 간척지 쌀이 이곳에서 난다.
이 안악에서 일공구에 이르는 월천방조제는 2000년 8월 태풍 ‘프라피룬’으로 유실되었다.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으며 거친 환경에서도 향긋한 꽃을 피우는 해당화 6만여 그루를 심었다. 안악 해수욕장 입구에는 높이 13.5m의 조형물도 세웠다. 그래서 새로이 태어난 이 해당화길은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극복정신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간척공사 당시에는 각처에서 모여든 노동자들, 그들의 돈으로 흥청거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잊혀져가는 이름이다. 비 내리는 오늘, 역시 배 몇 척만이 갯벌에 기우뚱 몸을 기대고 나그네를 반길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짧은 방파제 끝 조형물에는 갈매기 수십 마리가 비를 맞으며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
가까운 산남리 마을에는 1970년대 초 ‘꽃반지 끼고’의 가수 은희가 만든 문화공간 ‘민예학당’이 있다. 자연재료를 활용한 디자인 제품, 천연염색의 현장을 보고 싶다면 잠시 들려도 좋을 것이다.
월천방조제길은 드넓은 갯벌의 석창리 바닷가로 이어진다. 이곳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경사가 완만해 석화(굴)와 바지락, 낙지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돌머리해수욕장과 마주보고 있는 석계는 함평 최대의 석화 생산지라고 한다. 김장재료로 주로 쓰이는 석화는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2월경에 그 맛이 절정인데, 농한기의 귀한 소득원이다.
석창리 삼거리 찻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에 둥근 반지형태의 조형물이 눈에 뜨인다. 가보니 장어양식장 앞에 있는 ‘대지의 희망’이란 장어 모양의 형상물이었다.
그렇게 해안의 풍광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벗 삼아 함평만의 함평 쪽 끄트머리인 돌머리해수욕장으로 가는데 활기 넘치는 마을이 반긴다. 손불면 궁산리 신흥마을이다. 바로 해수찜으로 유명한 곳이다.
함평 해수찜은 1800년대부터 민간요법으로 널리 이용하던 해수탕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해수찜에 사용되는 이 지역의 돌은 다른 지역보다도 유황과 장석이 많은 산성 암맥이라고 한다. 살균작용과 피부질환, 신경통 등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700m 정도 가면 풍광도 멋진, 이름도 멋진 바닷가 마을이 있다. 바로 주포(酒浦) 또는 주항포((酒缸浦)라는 불리는 포구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1865)에 ‘주항포는 (현의) 서쪽으로 10리에 있고 장삿배들이 모여 머문다’라는 기록이 있고 그 이후 나온 함평현읍지나 군지 등의 기록에 미루어 오랜 역사를 지닌 번창했던 포구였음을 알 수 있다.
주포라는 이름은 술항아리, 술집을 의미하는 ‘술항개’라 여겨진다. 지금도 인근 사람들이 ‘술항개’라 부르고 있고, 그걸 한자로 표기하며 주항포(주포)가 된듯 싶다. 또 질흙 투성이 갯가로 발이 술술 빠지는 수렁의 갯가 즉 ‘수렁개’가 ‘수랑개’, ‘술항개’가 되어 주포로 표기된 거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재미있고, 낭만적인 이름으로 이보다 더한 이름이 있을까? 싶다.
지금은 토사가 쌓이고, 어업도 예전만 못해 소형 어선만 드나드는데 신흥해수찜이 전국에 알려지고 2009년에 수산물직거래판매장이 들어서면서 옛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주포에서 잠시 나그네의 마음을 달랜 뒤 오늘의 마지막 여정지로 간다. 돌머리해수욕장은 솔숲, 폭신폭신한 백사장, 환상적인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한 곳이다. 가는 길 해변 중간쯤에 이곳 석성리 일원 5만9330㎡ 부지에 총 50세대의 한옥 전원마을이 조성된다는 푯말이 있다.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한 환경 등 입지조건이 좋아 이곳의 또 다른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주포에서 반달 모양의 길을 비스듬히 돌아가면 돌머리해수욕장이다. 지명이 석성리 석두마을인데 우리말의 돌머리를 한자로 쓰다 보니 석두(石頭)가 되었다.
이곳에는 밀물과 썰물로 자연스럽게 새 물로 교체되는 인공수영장이 있어 언제든지 편안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여름철에는 그곳에 장어를 풀어 장어잡이 체험을 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걸어 오늘 나그네의 끝 여정지고, 돌머리 해수욕장의 이정표인 돌탑과 기념비, 전망대에 이른다.
돌탑은 술항아리 모양이고, 그 옆 기념비에는 ‘함평만 생태보전 기념비’라 쓰여 있었다. 기념비 뒷면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자연과 우리가 하나임을 깨닫는다. 돌탑은 석성 2리 주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92년 부안의 새만금 사업에 버금가는 함평, 영광, 무안, 신안군 일대 33,560ha의 갯벌을 매립하려 하였다. 1998년에 구시대의 개발계획을 철회하고 생태계 보전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이곳 돌머리 해변에 기념비를 세운다. 2010년 석성 2리 주민 일동’
삽질 숭배론자들의 사나운 굴삭기에 맨 몸으로 맞서 자연의 소중함을 후세에 귀감으로 남기고자 한 석성 마을 사람들이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석두(石頭)를 지켜낸 것이다.
‘아, 오늘 내가 본 게며 갯고동, 해당화며, 갯벌은 바로 이 분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볼 수 있었구나.’
비 앞에서 한동안 석성 주민들에게 감사의 고개를 숙인다.
비오는 날 무슨 낙조까지랴? 등대를 닮은 전망대에 올라 비에 젖은 함평만과 마주하는 무안 해제반도의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하다.
항아리 모양의 함평만 들머리 함평항에서 안악, 주포, 돌머리해수욕장까지가 누리해안길이다.
함평항에서 안악해수욕장에 이르는 길, 사진 위쪽 가운데가 함평만의 들머리다.
해당화는 지고 그 열매가 나그네를 반긴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선생님!
섬마을 처녀가 장맛비를 맞고있다.
안악해수욕장이 손님맞이를 마쳤다. 아름답고 깔끔하며 갯벌의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다.
안악에서 일공구에 이르는 해당화길, 몇 송이 해당화가 나그네를 반긴다.
대지의 희망, 장어를 보기만해도 힘이 불끈 솟는다.
신흥해수찜 마을에서 술항구 주포에 이르는 길, 바라보이는 곳이 신흥 마을이다.
주포항, 헤밍웨이가 술 한잔 드시러 다녀가셨나 보다.
수산물어판장 등 새럽게 발돋움 하는 술항구 주포항.
주포에서 바라본 돌머리 해수욕장
돌머리 해수욕장 가는 길
돌머리 해수욕장의 갯벌 생태관
여기도 손님맞이 채비를 마치고 장맛비 개기를 기다리고 있다.
돌머리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광, 바로 앞이 인공해수욕장이다.
돌머리가 있는 돌머리 해수욕장
함평만 생태보전 기념비, 석성 주민들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전망대, 낙조 구경 오십시요.
이곳이 제 2의 새만금이 될뻔했다니 끔찍하다. 자손대대로 영광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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