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화 이야기
금희와 은희
금희와 은희는 평양에서 태어난 쌍둥이 자매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금희는 평양에 남고 은희는 서울로 갔습니다. 두 혈육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이별을 한 거지요.
금희는 평양에서 수령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예쁘게 자랍니다. 하고 싶은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성악가로 성장합니다.
금희의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면 항시 하늘은 맑고, 꽃이 피는 계절이며, 비가 오더라도 무지개가 아름답습니다.
반면에 서울살이를 하는 은희는 어린 시절부터 구걸과 남의 집 식모살이로 갖은 고생을합니다. 판자집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밥 굶기를 밥 먹듯 합니다. 마침내 술집에서 생활하며 웃음을 팔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음악 공부도 하지 못합니다.
결국 약을 먹고 한많은 세상을 떠납니다.
은희의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는 비가 오는 밤이거나, 흐린 날씨거나, 쓰레기 굴러다니는 거리입니다.
이 영화 얘기는 지난 여름 백두산 여행 시 연변의 여행사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86년 아세안 게임 치르기 이전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랍니다. 일 년이면 서너 차례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주는데, 위 금희와 은희는 필수로 보는 영화라 했습니다.
그 영화 보며 북조선은 살기 좋은 나라, 남조선은 못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했습니다.
하지만 86년 아시안 게임을 처음으로 지켜보며 남한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했습니다.
남과 북!
이제는 더 이상 금희와 은희 같은 얘기, 그보다 더한 거짓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 온 연변의 어떤 여대생에게 물었답니다.
‘한국과 북한 어느 쪽이 더 좋아요?’
‘한국은 사촌이고 북한은 친형제지요. 사촌은 사촌대로 좋고 친형제는 친형제대로 좋지요. 누가 더 좋고 말고가 있겠어요?’
어른스럽지 못한 부끄러운 물음에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하더랍니다.
연변의 가이드도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연변사람이 북한에 사는 일가친척을 쉽게 만날 수 있나요?’
‘북한에 장기간 갈 때는 통행증을 받아야 하나, 단기간이면 자유롭게 다녀오지요. 갈 때는 과자나 간단한 일상용품을 많이 가지고 가지요. 아무래도 우리 보다는 못사니까 그러지요. 다 우리 형제, 가족이니까요.’
남한이 잘 사니까, 북한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갖는다는 게 참 우습습니다.
북한을 못산다고 비웃고 야유한다는 것도 참 그렇습니다.
이제 그런 유치한 생각, 대결, 응징 같은 발상을 버리고 진정으로 평화와 번영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좀 살만큼 사는 쪽 남쪽에서, 한국에서 먼저 베풀고, 화해와 평화의 손을 내밀었으면 합니다. 그게 아량이고 덕이지 않겠습니까?
인장지덕이요, 목장지폐라 했습니다.
큰 사람 아래서는 덕을 보지만, 큰 나무 밑에서는 해를 입는다 했습니다.
지금 더불어 살아가자는 큰 사람이 많습니까? 저만 잘난 인간괴물들이 더 많습니까?
부자 가슴에 못을 박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발가락에까지 다이야 반지를 끼고 사는 통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도둑이 들까 담장을 올렸습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돼 담장 위에 철망을 치고 전기까지 흐르게 했습니다. CCTV를 설치하고 경비원을 고용했습니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담장 옆에 해자를 팠습니다. 폭격에 대비해 지붕위도 강철돔으로 둘러쌓습니다.
그러고도 방안에 있는 것이 두려워서 지하 벙커를 파고, 쥐소리만 찍하고 나도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옷도 방탄복을 입고, 걸핏하면 방독 마스크를 썼습니다. 음식도 안심이 안 돼 각종 독극물 검사를 하고 나서야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모처럼 집 밖으로 나왔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세상은 텅 빈 들판이고 자기 집만 덩그마니 남아있었습니다.
그동안 전쟁이 났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았는지? 그 뒷얘긴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처음의 금희와 은희 얘기로 돌아가
우리는 평야에 남은 금희건, 서울에 온 은희건 모두 이 땅, 이 나라의 아들딸로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음 합니다.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할 수 있었음 합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제가 참 한심합니다. 그러면서도 암울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습니다.
그런 맘이기에, 동화 아닌 동화로 이 사회를 생각해보는 성탄절 아침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건, 예수님의 사랑이건, 진정으로 이 땅의 백성을 평화롭게 어여삐 여겼으면 합니다.
2010년 성탄절 아침에 김 목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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