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08년 새 해 첫날 눈덮힌 무등에서

운당 2008. 1. 2. 06:20

<2008년 새 해 첫 날, 눈 덮힌 무등. 그 눈에 덮였어도 슬픈 이야기가 남은 무당촌을 지나 바람재로 오른다.>

<나무들이 하얀 눈 옷을 입고 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에 누군가가 길을 만들었다.>

<눈바람이 지나가는 바람재에 서서 무등을 본다.>

<바람재에서 원효사쪽으로 가는 길, 사이좋게 눈길 두 개가 나란히 가고 있다.>

<바람이 불면 눈보라를 날리는 솔숲. 솔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니 노래가 된다.>

<저만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누구를 위해 살며 허리가 굽었냐? 허리가 굽어질만큼 노력하며 살만한 세상이더냐??> 

 

문화수도 광주에는 무등산과 광주천이 있다

 

1. 광주의 젖줄 광주천

 

광주에 소재하는 학교 교가의 노랫말에서 상징적인 낱말을 찾는다면 단연 무등산과 광주천이다. 요즈음은 교가를 예전처럼 부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광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의 머릿속 고향언어의 으뜸은 무등산과 광주천일 것이다.

개발과 보전은 상대어가 아니라, 동일어가 되어야 함에도 70년대 초부터 우리에게 불어 닥친 개발 광풍은, 투기와 맞물리면서 이 사회를 끝 갈데없는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광주천의 하류라 할 수 있는 유덕동의 극락강에서도 미역을 감을 수 있었던 그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양동시장으로 건너가는 유동다리 근처 빨래터에서, 남광주 철교 밑에서 고기를 잡고 미역을 감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귀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류라 할 수 있는 원지교에서조차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생각할 일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광주천이 어떤 상태이건 간에, 광주천은 우리 빛고을 광주의 생명수인 젖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광주천이 살면 우리도 살고, 광주천이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는 것이다.

 

2. 광주의 머리산 무등산

 

인구 백만이 넘는 도심과 곧바로 연결이 되는 천미터급 산을 가진 도시는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보아도 흔치 않다고 한다.

더욱이 무등은 동서남북 어디서 보아도 막히지 않고 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산이다.

그래서 인근에서 감히 겨루기를 할 수 없는 산이라 해서 무등산, 또 등급을 매길 수 없다고 해서 무등산, 그 산등성이의 흐름이 평평해보여서 무등산이라고 부른다고 하나, 어떤 이유건 다 좋은 뜻이어서 기분이 좋은 산이 또 무등산이다.

무등 계곡의 눈이 녹으며, 파릇파릇 버들강아지에 새순이 돋으면 광주에 봄이 온다. 증심사 계곡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무등 가는 길 지원동 민가의 담벼락에서 개나리가 노오란 웃음을 짓는다.

무등의 봄이 빛고을로 내려온다고 했다.

거꾸로 가을이 깊어 가면 무등이 먼저 하얀 눈 모자를 쓴다. 그렇게 무등이 세 번 눈 모자를 쓰면 빛고을에 첫눈이 내리고 겨울이 찾아온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도, 마음이 울적해도 찾아가는 산,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고도 그저 시내버스에 달랑 올라타 찾아가서 보리밥에 막걸리 한잔 마시고 내려올 수 있는 바로 그런 산이 무등산인 것이다.

무등산은 행정구역으로는 광주광역시와 담양 남면, 화순군 이서면에 걸쳐있다.

소백정맥에 높이 1187m로 솟아서 백제 때는 무진악, 신라 때는 무악, 고려때는 서석산 등으로 불리우며 성산으로 받들어졌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 천왕봉, 인왕봉, 안양산 들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고 주위에는 신성봉, 수래바위산, 지장산 등이 있다.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단풍, 겨울 설경으로 빛고을 시민을 품안으로 끌어안는 무등산은 서석대와 입석대, 광석대 등 3대 석경을 비롯하여 너덜강, 백마능선의 억새밭이 절경을 이루고, 원효사와 증심사 등 사찰을 품에 안고 있기도 하다.

무등산 수박, 춘설차 또한 널리 알려진 무등의 자랑이고, 김덕령 장군의 충장사와 송강 정철의 식영정과 환벽당 등도 무등의 깊이를 더하는 빛고을의 자랑이다.

어떤 이는 타지에 나갔다가 돌아 올 때, 머얼리서 무등의 둥그스럼한 등을 보면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무엇보다도 무등을 보며 이 각박한 세상, 잘나고 많이 갖고 영악한 것이 으뜸인 세상에서, 그저 둥글둥글 등급을 매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빛고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3. 후손에게 물려줄 무등산과 광주천

 

무등산과 광주천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무등이 있어 광주천이 있고, 무등의 얼굴이 바로 광주천이다.

광주천은 행정상으로는 동구 용연동 무등산(1,187m)남서계곡에서 발원하여 배부른 다리와 배고픈 다리를 지나 원지교에서 화순쪽에서 흘러오는 지류와 합류한다. 그리고 지금은 복개되어버린 숱한 실개울을 품에 안으며 광주의 중심부를 관통해 흐른다. 이윽고 서구 치평동과 광산구 우산동 사이에서 극락강이란 이름을 달고 영산강으로 합류하는 총 길이 23km, 영산강의 제 2지류이다.

요즈음 환경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서 광주천의 자연생태를 되살리는 문화하천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성급하고 실적 위주의 조성사업은 자칫 또 다른 난개발로 이어져, 자연생태라는 말만 남고, 인공조형위주의 볼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가 된다.

사실 예전의 광주는 광주천을 중심으로 시민과 학생들이 하루에도 두어번씩 다리를 건너다녀야 할 만큼 한 생활권이었다.

학교도 그렇고, 시장도 그렇고, 시민의 유일한 휴식처인 공원도 그러해서 보기 싫어도 광주천을 건너다니며 살아야 하는 동일 생활권이었다.

송사리, 붕어가 뛰놀고 아이들이 미역을 감는 실버들 늘어진 광주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는 빨래터, 그런 날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광주천이 다시 빛고을 시민의 삶터요, 휴식처로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서 누구라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를 꿈꾸는 광주의 미래를 생각하며, 무등산과 광주천의 자연환경과 생태를 살리는 일에 대해 깊은 생각과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 중의 으뜸이 바로 무등산이고 광주천이기 때문이다.

 

4. 무등산과 광주천을 살리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뒤를 이어 살아갈 후손에게 빌려서 쓰는 이 땅의 자연과 환경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무등산과 광주천을 보호하고 살리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면 한다.

그런 뜻에서 감히 한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보아서 무등산과 광주천을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장은 무등산 증심사 계곡을 내려와 전설이 깃든 배부른 다리와 배고픈 다리를 지나 원지교에서 화순쪽 지류와 만나는 곳까지이다.

두 번째 장은 원지교에서 옛 남광주 철교를 지나 구동 다리와 양동시장에 이르는 곳이다.

세 번째 장은 발산다리에서 광천교를 지나 상무지구를 돌아 장암다리에 이르는 곳이다.

네 번째 장은 장암다리에서 서창 앞들을 지나 황룡강과 합류하는 지역이다.

첫 번째 장은 증심사 계곡과 원지교 사이는 우리 빛고을의 의로운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애국혼이 살아 숨쉬는 충장사, 송강 정철의 식영정, 환벽당 등과 가사문학, 허백련 화백과 춘설원, 원효사와 증심사 등의 역사유적, 그러한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남도인의 의기가 면면히 흐르는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를 수 있는 빛고을 광주인들의 의향을 상징하는 곳으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두 번째 장은 원지교에서 양동시장에 이르는 남도음식과 풍류 등을 살리는 미향, 예향의 공간으로 만들어갔으면 한다. 남도의 전통 음식, 전통예술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세 번째 장은 발산 다리에서 상무지구를 지나 장암다리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광주의 미래산업을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장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산학협동으로 산업발달의 부가가치를 높이며, 빛 산업 등, 광주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이미지를 살리는 산업의 장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네 번 째 장은 장암 다리에서 서창 앞들을 지나 황룡강과 합류하는 지역으로 생태환경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죽어버린 광주천이 살아나는 길은 광주천 하류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한 영산강으로 들어가는 하류의 퇴적지를 이용하여 다양한 생태공원을 조성했으면 한다.

인근의 광주공항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경우도 대비해두었으면 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공존을 할 수밖에 없다. 자연환경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문화수도 광주!

우리는 희망을 노래하지만, 앞으로 전남 광주는 계속해서 인구가 줄어갈 것이라고 한다. 더하여 1, 2차 산업의 퇴조도 불 보듯 뻔하다.

오랜 세월 의연하게 우리의 빛고을을 지켜온 무등산과 광주천!

이제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를 무등산과 광주천에서 찾았으면 한다.

<이 글은 2006년 겨울호 '예술광주'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