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삿갓을 만난다.
김삿갓!
우리는 이름보다도 그를 ‘김삿갓’(金笠) 또는 ‘삿갓 선생’이라고 부른다.
누구든지 삿갓을 쓰고 가면 얼굴이 잘 안 보이니까, ‘여보시오, 삿갓 선생!’ 그렇게 삿갓칭호로 불리게 되겠지만, 김삿갓은 그런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이다. 그것도 삿갓 선생이란 어휘에 그분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서 느껴지는 특별명사이다.
삿갓 선생은 1807년 3월 13일 순조 7년에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그를 부르는 숱한 이름 중에서 어릴 때 이름은 병연(炳淵), 어른이 되어서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가 그를 대표한다. 5살 때인 1811년 그의 조부인 선천부사 김익순이 홍경래 난에 연루되면서 역적 집안이 되고 멸문지화라는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 둘러싸인다.
가복인 김성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뒤, 7살 무렵에 경기도 가평, 여주를 거쳐 9세에 강원도 영월로 들어간다.
가문의 복권을 꿈꾸는 어머니의 정성 속에서 타고난 재능으로 학문에 열중하던 중 20세에 결혼을 하고 장남인 학균을 얻는다. 더하여 영월군의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는 경사가 겹친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게 화근이 되어 그가 한양으로 떠나게 될 줄을! 그리고 2년여의 한양 생활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둘째인 익균을 얻은 뒤, 25살의 나이로 금강산으로 또 여행을 떠나야만 했고, 그게 가족들과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을?
그는 그렇게 평생을 구름처럼 떠돌며 보내다가 1863년 철종 14년 3월 29일 57세를 일기로 전남 화순의 동복 땅에서 눈을 감았다.
이상이 그를 말하는 대략적인 삶의 궤적이다.
그가 살고 간 시대는 참으로 험난한 시절이었다. 영정조의 치세를 마감한 순조, 헌종, 철종 시대는 조선조 말의 혼란과 혼탁이 판을 치는 시기였다. 3백 명이 넘는 천주교인의 순교를 불러온 종교탄압, 경남 진주의 대규모 농민항쟁을 비롯하여 도성궁궐의 코앞에서도 일어난 각 지역의 크고 작은 농민봉기, 그 중 홍경래 민중봉기는 십 수 년의 준비를 걸쳐 일어나 국기를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었다.
그 혼란과 혼탁은 백성들의 몫이 아니었다. 무능한 임금, 외척의 세도정치와 허수아비 왕권을 농락하는 벼슬아치들의 문란으로 그 폐해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조선의 팔도강산은 농민의 원망과 한숨으로 가득하고 거리에는 굶어죽는 자, 도둑과 거지가 들끓었으니, 집을 뛰쳐나온 농민은 도둑이 되고 그의 아이들과 아내는 거지가 되었다.
농민보다도 양반의 수가 더 많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과거를 보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니, 세상은 그야말로 부정부패를 통한 한탕주위와 입신출세주의가 판을 쳤다.
그 혼란과 혼탁한 시대에 삿갓 선생은 삿갓을 눌러쓰고 지팡이 한 자루에 의지한 체 세상을 떠돌았다. 흰 구름처럼,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물결 따라 흘러가는 꽃잎처럼 정처 없는 나그네였다.
그러나 비록 삿갓에 얼굴을 감추고, 이름과 성도 감추고, 한 끼의 밥을 걱정하는 신세였지만, 세상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자연을 사랑했다.
그에게 무엇이 그런 힘과 용기를 갖게 했을까?
그에게는 쉼 없이 끓어오르는 시심이 있었다. 솟구쳐오는, 토해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길이를 알 수 없는 깊고 뜨거운 시심이었다. 그것은 해맑은 서정이고 삶에 대한 열정이었으며, 자연과 인간 세상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었다. 신은 그에게 기구한 운명을 준 대신 천부적 재능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그를 풍자와 방랑의 시인이라고 폄하하여 부르곤 한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당시의 세상은 원망과 한탄으로 가득 차 풍자와 조소, 조롱이 필요한 때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었지, 삿갓 선생의 책임은 아니다.
그는 정말 영월의 백일장에서 할아버지를 꾸짖는 시를 썼을까? 그게 원인이 되어 삿갓을 쓰고 집을 나섰을까?
그는 과연 평생을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가 쓴 시들은 모두 그의 작품일까? 그는 과연 세상이 원망스러워 세태를 풍자하고 조소하고 조롱하기 위해 시를 썼을까?
그는 왜 벼슬길을 포기하고, 찾아온 벼슬 기회도 마다하고 평생을 떠돌이로 지냈을까?
그는 왜 무엇 때문에 화순 동복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그에 대한 의문은 많다.
사과나무가 있다. 햇살 좋은 가을 날 아침 발그스레 익어가는 사과를 본다.
잘 익은 싱싱하고 싱그러운 사과 한 알, 그건 사과나무와 자연의 합작품이다.
그렇다. 우리도 삿갓 선생의 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의 시는 선생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모여서 이루어진 한 알의 싱싱하고 싱그러운 열매이다.
그는 미국의 월트 휫트먼, 일본의 석천탁목과 더불어 세계의 3대 혁명시인이라고 한다. 기존의 형식과 규범을 탈피하여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로 시의 지평을 넓힌데 대한 정당한 평가일 거다.
다시 자문하건데 과연 삿갓 선생의 그러한 힘과 능력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그의 행적과 삶을 부분, 부분 꿰어 맞춰야 하기에 여러 가지 의문이 있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생을 다한 말년의 행적에 대해서는 더 큰 의문으로 가려진다.
이태백이 달을 건지기 위해 술김에 동정호의 맑은 물에 손을 내밀었다가 실족사 했다고 꾸며대는 고사는 그나마 설득력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삿갓 선생은 그게 아니다.
일제에 아부하고 친일했던 한 시인은 화려했던 생을 마감하기가 아까웠든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한다. 군사독재의 칼날아래서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피울음을 토했던 한 시인은 병고의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 역시 천부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마지막 생이 다가옴을 영감으로 알았을 거다. 그리고 스스로 그 마지막 장소를 선택했을 거다.
그의 나이 50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찾았던 전라도 땅, 그리고 마지막 생을 마감한 종명지 화순 동복, 그러나 마지막 몇 년의 그의 행적은 비밀에 가려져 있다.
그러기에 그가 세상을 버린 종명지에서 그의 삶과 시를 바라봄으로써 그러한 의문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한다.
그건 또 삿갓 선생의 잘못 알려진 삶과 시의 세계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의 영혼과 육신을 싸고돌며 평생을 함께한 그의 시와 시심의 본질은 분명하다. 한 가닥 해맑은 서정, 삶의 열정이었던 그의 시와 시심의 본질을 우리는 삿갓 선생이 발걸음을 멈춘, 말년의 삶과 행적이 있는 그의 종명지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삿갓 선생이 그의 마지막 생을 보낸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 마을 입구의 표지석. 오른쪽 정자(망미대)가 있는 곳은 삿갓 선생이 이따금 시상을 가다듬은 곳이다>
<삿갓 선생인 머물 당시에는 정자가 없었고, 바위 굴만 있었다, 구암 마을은 굴바위-굴암-구암인 듯 싶다.>
<망미대는 삿갓 선생이 머물던 집의 후손이 굴바위벽에 새긴 望美臺라는 글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암의 모습>
<이 정자는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삿갓 선생이 머물 당시에는 없었다. 삿갓 선생은 이곳에서 '약캐러 가는 길에 이끼가 붉구나...' 하는 시를 썼다.>
<망미대라는 명칭에는 구한말 임금을 걱정하는 선비의 심정이 들어있다.>
<굴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아무튼 이곳에서 햇빛과 비를 피하며 시를 짓고, 글공부를 했다고 한다.>
<삿갓 선생이 머물었던 집의 후손이 바위벽에 새긴 망미대>
<망미대를 올려다 본 모습>
<망미대에서 바라본 동복면 소재지와 옹성산, 울퉁불퉁 솟은 항아리 모양의 바위가 마치 공룡인듯, 갈기를 세워 달리는 말의 형상이다>
<구암 마을의 너른 들, 이 넉넉한 인심이 방랑에 지친 선생을 따뜻이 안아주었으리라.>
<논 사이로 보이는 반듯한 둑길이 끝나는 곳, 바로 왼쪽의 낮은 동산이 삿갓 선생이 3년여를 누워있던 초분지다>
<망미대 왼쪽은 동복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숲마을이다. 사진 오른쪽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길가의 작은 돌비석이 바로 삿갓 선생 종명지를 알리는 표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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