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친구가 생겼어요

운당 2007. 10. 18. 08:52
 

<동화>

친구가 생겼어요

김목

 

 

세상일이란 게 참 이상해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꼬맹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하나가 지난해 나를 가르쳤던 우리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에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쓰시는 책상을 덮은 유리 밑에 사진이 두 장 놓여있었습니다. 한 장은 봄 소풍 가서 찍은 우리 반 단체사진이었습니다.

뭐, 그런 단체 사진 한 장 놓아둔 거 가지고 이상하다고 하느냐고요? 그래요. 그 단체사진 때문에 이상하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 옆의 사진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옆의 사진은 우리 선생님의 젊었을 적, 사진이었습니다. 그 때는 젊은 남자들이 머리를 여자처럼 길렀나 봅니다. 마치 사진 속 베토벤의 머리카락처럼 뭉실뭉실 탐스러운 모습입니다. 그걸 보고 장발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선생님? 이 사진 왜 여기다 놓아두어요?”

내가 여쭈자, 대답이 이랬습니다.

“응, 이 사진을 보면 내 머리카락이 쑥쑥 돋아나온단다.”

그러니까 내가 1학년 때 우리 선생님이 대머리였냐고요? 에이, 거기까진 아니랍니다. 하지만 이마가 훤하긴 했지요. 정말 옛날 사진 속 그 탐스러운 머리카락의 주인이 우리 선생님인가 고개가 갸웃 거려졌거든요. 하지만 사진과 실물, 그 두 얼굴이 똑 닮았으니 똑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야지요.

물론 사진 속 인물이 선생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의심도 해보았지만, 남을 의심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잖아요?

아무튼 선생님은 머리숱이 많았던 자기 모습의 옛날 사진을 보면 머리카락이 돋아난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거 참 이상한 일 아닌가요?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일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일입니다. 그 때는 일학년 때라 날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습니다.

아이 말하려니까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약간 창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 드릴게요. 그 때 나는 받아쓰기를 하면서 한 번도 백점을 못 받았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최고 점수가 20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다람쥐가 알밤을 주웠습니다.”

선생님이 천천히 또록또록 그렇게 불러주십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썼는지 아셔요?

“다라지가 아바으 주어스니다.”

아, 글쎄 그랬다니까요. 그러니 20점만 맞아도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지요.

“너 틀린 거 10번씩 공책에 쓰거라.”

받아쓰기가 끝나면 의례히 나는 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틀린 낱말을 10번씩 더 썼습니다. 그런데도 그 다음 날이 되면 다시 20점에 겨우 턱걸이를 하곤 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내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이상한 일을 지금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와서 또 받아쓰기 시험을 봤습니다. 선생님이 낱말을 불렀습니다.

“은혜 갚은 꿩”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으네 가프 꿩”

그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다시 한 번 써보라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 보는 앞에서 자신 있게 ‘으네 가프 꿩’ 그렇게 썼습니다.

“야, 너 정말 ‘꿩’자를 잘 쓰는 구나.”

그 날 점수는 20점 밖에 못 받았지만 선생님은 엄청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꿩’자를 썼다고 말입니다. 그 때 나로서는 ‘꿩’이란 글자를 잘 썼다고 칭찬받은 일이 이상했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나는 며칠 만에 받아쓰기만 하면 80점 이상씩 받게 되었습니다. ‘꿩’자를 쓴 뒤로 그렇게 받아쓰기 실력이 팍팍 늘어난 것입니다. 마침내 ‘은혜 갚은’도 쓰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어째서 ‘꿩’자를 쓰게 된 뒤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이 이상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떠냐고요?

두 말하면 잔소리고 입이 아프지요. 지금은 어쩌다 90점이고 보통이 백점이랍니다.

그 날도 나는 받아쓰기를 백점 받았습니다. 백점짜리 점수를 자랑스럽게 쳐다보다가 문득 지난 해 생각이 났습니다. 1학년 때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지난 해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1학년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선생님!”

문을 살그머니 열고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어, 너로구나. 오랜만이다.”

선생님이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나는 얼른 선생님 이마부터 쳐다보았습니다. 지난 해 보다 더 환해보였습니다.

‘이그, 이마가 더 환해지셨네. 아무리 젊을 적, 사진을 봐도 효험이 없나봐.’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선생님 책상 위를 슬쩍 살폈습니다. 그 탐스러운 머리카락의 젊은이, 선생님 사진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히히히 선생님, 정말 웃겨.’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잘 참았습니다.

“그래, 요즈음도 받아쓰기 잘 하냐?”

“예! 오늘도 백점 받았어요.”

나는 받아쓰기 공책을 자랑스럽게 보여드렸습니다.

“음, 잘했다.”

선생님은 기분이 좋은지, 책상 서랍에서 사탕을 꺼내 주었습니다.

“선생님! 저 날마다 놀러 와도 돼요? 여기서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싶어요.”

나는 갑작스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교실에 와서 공부를 하면 머리에 쑥쑥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암, 그래라. 언제든지 와서 책도 읽고 숙제도 하고 그러렴.”

선생님은 내 말에 흔쾌히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날마다 선생님 교실에 갔습니다.

“선생님! 이거 엄마가 주셨어요. 잡숴 보세요.”

어쩔 땐 엄마가 선생님 드리라고 과일도 주셨습니다. 날마다 공부 끝나고 1학년 때 선생님 교실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하자, 엄마는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응, 고맙다. 너도 이거 먹어라.”

선생님께서도 사탕도 주시고, 어쩔 땐 제과점 빵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거 어쩝니까? 내가요, 지난주부터 한 주일도 더 넘게 1학년 때 선생님 교실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그게 말이죠. 내게 새 친구가 생겼거든요. 그 친구랑 놀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함께 읽느라고 1학년 때 선생님 교실에 가지를 못한 것입니다.

“너, 요즈음도 1학년 선생님 교실에 가느냐?”

오늘 아침에 밥을 먹을 때 엄마가 물었습니다.

“요즈음 가지 못했어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다가 문득 선생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새 친구를 데리고 가서 소개도 해드려야지.’

나는 그렇게 맘을 먹고 집을 나오면서 눈에 띄는 아빠의 ‘새로나 머리로션’ 한 개를 집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이 ‘새로나 머리로션’ 기가 막히게 좋은 거다. 꾸준히 바르면 새 머리카락이 나온다는 거야.”

아빠가 사가지고 와서 자랑을 한 ‘새로나 머리로션’입니다. 다섯 개나 사가지고 오셨는데 내가 그 중 한 개를 슬쩍한 것입니다.

그 날 오후 공부가 끝나고 나는 새 친구를 데리고 1학년 때 선생님 교실로 갔습니다.

“선생님! 저예요.”

“응,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지?”

“예! 선생님. 저 친구가 생겼어요.”

나는 문 밖에 서있는 친구를 교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으로 불렀습니다.

“응, 아주 귀엽고 예쁜 친구가 생겼구나. 그래 이름이 뭐지?”

“수경이요. 서수경이요.”

“서수경이? 이름도 참 예쁘구나. 그래, 둘이서 사이좋게 노느라고 내게 오는 것도 그만뒀구나. 하지만 좋은 일이다. 좋은 친구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지.”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책상 서랍에서 맛있는 사탕을 꺼내주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선물이어요.”

나는 아빠의 ‘새로나 머리로션’을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하하하! 머리카락이 새로 나오는 로션이라! 하하하!”

선생님은 자기 이마를 만져보면서 뭐가 우스운지 껄껄껄 웃었습니다. 얼핏 보니 책상 위의 젊었을 적 선생님 사진도 입을 크게 벌리고 껄껄껄 따라 웃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입니다.

“선생님! 제가요. 요즈음에는 친구랑 함께 놀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거든요. 그래서 바빠요.  앞으로 선생님께 자주 못 올 거예요.”

“암,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놀면 더 좋지. 그래도 이따금 놀러오렴. 예쁜 여자 친구랑 말이다. 언제든지 환영할 테니까.”

“예, 선생님!”

나와 친구는 인사를 꾸벅 드리고 교실을 나왔습니다.

“1학년 때 선생님 좋지?”

나오면서 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응!”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잡고 있는 친구의 손에 쬐금 더 힘을 주었습니다.

이제 내 눈 앞에는 내 친구만 있습니다. 친구하고 노는 게 제일 좋습니다. 1학년 때 선생님 교실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졌습니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2007,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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