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동유럽 기행시 12

운당 2007. 10. 8. 06:20

12. 사포

 

사포는 미술시간에 나무공작을 다듬는

모래헝겊이 아니다

우리도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했잖아

정치하는 이완용 같은 인간만

일제의 앞잡이인줄 알았는데

시 썼던 서정주 같은 인간도

일제의 앞잡이였잖아.

 

그 때 같은 동족을 감시하고

거드름 피우며 학대하고

일정(일제)에 밀고하고

고춧가루물 코에 붓고 불인두로 지지는

고문까지 당하게 했잖아.

할머니가 되어도 누나인 기미년 삼월 일일

유관순 누나의 대한독립 만세!

열여섯 살 누나를

왜놈들이 톱으로 토막을 냈다고

초등학교 때 들었어.

그 때 작은 주먹 불끈 쥔 채

얼마나 분노에 떨었는지 몰라.

 

그 인간들 이름이 밀정이었어

알아? 앞잡이!

 

바로 아유쉬비츠에서, 수용소에서

같은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선

동료를 감시하고 밀고하고

발로 차고

아침엔 썩은 채소로 끓인 멀건 죽 한 국자

점심은 말라비틀어진 빵 한 조각

아르바이트 마이트 프리라고 잘 알잖아?

저녁까지 살아있으면

다시 썩은 채소 죽 한 국자 줬지

그것도 먹는 꼴 못 봐

머리끄댕이 잡아 발로 짓밟으며 뺏어 먹은

독일군의 앞잡이, 밀정을

사포라고 했어

 

본때기란 말 알지?

사포들이 밀고한 수용자를

사형장의 벽 앞에 세웠어

죽음의 벽이라 부르는 사형장은

수용소 10동과 11동 사이였지

사포가 있는 11동 수용소 창문은

판자로 막지 않았지.

사형장에 갈 일 없는 사포들에겐

사형집행이 구경꺼리였으니까

하지만 10동 수용자들이 있는 창문은

검은 판자로 막았어.

죽음의 벽 앞

사형수들의 총살형을 볼 수 없게 했지.

왜 그랬냐구?

차마 죽는 모습을 어찌 보게 해?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랬다구?

뭐, 배려심? 좋아하고 있네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야.

죽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귀로만 들어야

총소리, 비명소리만 들어야

공포심이 더 크대나, 어쩐대나

 

사포!

사포는 미술시간 나무공작 시간에

나무를 매끄럽게 다듬는

모래 헝겊이 아니야

줄무늬 죄수복을 입고

아유쉬비츠 수용소에 있었지만

나무를 다듬어 매끄럽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어

동족을 밀고하고, 감시하고

썩은 채소죽까지도 뺏어먹는

인간 백정이었어.

 

이 땅의 노동자를 감시하고, 가두고

주먹을 앵기고,

밥그릇을 뺏어가는 자들,

그들이야 사포까지는 아니겠지?

이제는 줄무늬 옷도 죄수복이 아니고

환자복이니까 말야

그렇게 줄무늬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그들 이름은 판검사들도

굽신거리는 재벌이라구.

그것도 ‘위대한’ 꾸며주는 말이

재벌 앞에 붙는다니까.

 

내 말이 틀렸어?

 

토할 것처럼 매스껍고 어지럽던 ‘아유쉬비츠’ 수용소를 돌아나오니 하늘은 마냥 푸르르다. 폴란드 날씨는 변덕이 무척이나 심하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인 오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다고 했다. 맑고 푸른 날씨가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아유쉬비츠를 출발 2시간 넘게 달려 우리는 ‘비슈라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 ‘크라쿠프시’에 도착하였다.

아유쉬비츠에선 그리 넓지 않던 비슈라강이 여기서는 잿빛얼굴로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그 강변 암석 위에 세워진 바벨성은 이름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 장엄했다.

마침 성모승천일을 앞두고 시내의 교통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내를 지나치며 ‘야겔리스키’ 대학 앞을 지났는데, 이 대학이 내일 들릴 소금광산의 노동자들을 교육 시킨 대학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광부와 노동자 동상이 정문의 상징물로 세워져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바로 이 대학 동문이라고 했다.

<수용소 입구 전경. 왼쪽 길은 가스실, 오른쪽이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고 하는 정문이다>

<죽음의 벽 앞에서 그들을 기리는 관광객들>

<가스실로 들어갈 차례를 공포심 없이 기다리는 관광객들>

<이제 죽음의 철조망 밖으로 나왔다>

<철조망을 사이로 삶과 죽음이 나뉘어졌던 아유쉬비츠 수용소>

<희생자들에게 명복과 평화를 빌었다>

<비슈라강이 흐르는 크라쿠프시의 바벨성-자유다!>

<비슈라 강변을 산책하며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

<비슈라 강변에 거북선 모양의 배가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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