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네 얼굴 똑바로 보지 못하누나. 네 모습도 흐려지는 구나.>
3
그 날도 짙은 구름이 곰산에서 쇠산까지 낮게 드리웠습니다. 달도 없는 밤이어서 칠흙처럼 어둡기만 했습니다.
요란스럽던 풀벌레 소리가 잠시 멎었습니다. 그 때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시퍼런 불꽃이 튀었습니다. 그 불꽃이 불화살에 불길을 당겼습니다.
바람을 가르는 쇳소리를 내며 불화살이 어둠을 갈랐습니다. 불화살이 곰족 마을의 나무지붕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어둡던 곰족 마을이 불빛에 환히 드러났습니다.
“끼이이히야! 끼이햐! 모두 죽여라!”
“쇠족의 원수를 갚아라!”
곰족의 피를 본 쇠족은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인이고 여자고 가리지를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움직이는 것이면 창칼을 휘둘렀습니다.
“둥, 두둥둥, 둥둥!”
이윽고 북 소리가 울렸습니다. 싸움은 끝났습니다.
“자, 이제 가축과 식량을 가져가자!”
동쪽 하늘이 희끄므레 밝아왔습니다. 이제 산과 들의 물체를 눈으로 가려볼 수 있었습니다.
불에 탄 집들은 아직도 검은 연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쇠족 젊은이들이 곰족의 시뻘건 피를 묻힌 채 식량을 찾아냈습니다. 가축 우리에선 가축을 끌어냈습니다.
“원수를 갚았다. 쇠족 만세!”
“끼이햐! 끼이햐!”
사방은 불에 탄 집들입니다. 곰족들의 주검이 발끝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쇠족들은 곰족에게 빼앗은 식량이 좋기만 합니다. 몰고 가는 수십 마리의 가축이 흐뭇하기만 합니다.
“자, 이제 모두들 쇠산으로 돌아가자.”
쇠족들은 피 묻은 손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덩실덩실 승리의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 다음 의기양양하게 쇠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다시 곰족 마을은 조용합니다. 집을 태우던 불길도 잦아져 갑니다. 한줄기 풀썩이는 연기가 이따금 부는 바람에 흔들립니다. 매캐한 냄새가 비릿한 피 냄새를 흐립니다. 지난밤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덮어갑니다.
시간을 흘러 한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의 무거운 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따가운 태양이 곰족 마을 위까지 왔습니다.
“으앙! 으아앙!”
어디선가 실낱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울음 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꼬옥 안고 쓰러졌습니다. 그 어머니의 품안에서 빠져나온 아기였습니다. 어머니의 젖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음모오!”
그 때였습니다. 어디에 숨어서 쇠족의 손길을 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암소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암소는 뚜벅뚜벅 아기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다소곳이 아기 옆에 주저앉았습니다.
“엄마!”
아기는 엉금엉금 암소에게 기어갔습니다.
암소의 젖은 퉁퉁 불어있었습니다. 아기는 암소의 젖을 어머니의 젖처럼 입에 물었습니다. 암소는 그대로 가만있었습니다. 두 눈만 말똥말똥 깜빡거릴 뿐이었습니다.
“자, 가자.”
한참 뒤, 할아버지는 아기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몹시 슬픈 얼굴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암소의 고삐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슬픈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쇠족의 싸움 대장이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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