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만경대에서 달큼 시원 사르르한 얼음보숭이 '왕벌젖 에스키모'를 팔던 평양 아가씨>
<동화>
찹쌀떡과 얼음보숭이
김 목
“사장님! 어제 왔던 분이 또 왔는데요.”
“누구?”
“여기 명함 있습니다.”
‘딱 한잔 생맥주회사’의 김 사장은 비서가 내미는 명함을 받아듭니다.
“이런 사람은 적당히 둘러대서 보내버리라고 했잖아?”
“그럴려고 했습니다만 오늘은 막무가내로 버티어서….”
“알았어. 들여보내. 원, 쯧쯔…. 한 두 사람이 성가시게 해야지.”
김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혀를 끌끌 찹니다.
“안녕하십니까?”
젊은 사람 둘이서 사장실로 들어섭니다.
“어서 오시오.”
김 사장은 그렇게 인사는 받으면서, 두 사람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말도 안 합니다.
하지만 두 젊은이는 괘념치 않고 김 사장 앞자리에 마주앉습니다.
“사장님! 좀 도와 주십시오. 제 3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밥 한끼 값 오천 원이면, 그런 아이들 세 명에게 하루를 먹일 수 있습니다.”
“이거 봐요. 생맥주 한 통 팔아서 얼마나 남는 줄 아시오? 내가 뭐 그냥 땅속에 있는 물 퍼 올려서 맥주 만드는 줄 아나?”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만 마음을 모으면….”
“알았소. 경리과에 연락 해놓을 테니 가져가요.”
김 사장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말을 끊습니다. 두 젊은이를 내쫓듯 손을 휘두릅니다.
“예, 고맙습니다.”
두 젊은이는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꾸벅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때 인터폰이 또 울립니다.
“또 누구야?”
“하늘이입니다.”
“하늘이?”
“예!”
하늘이는 김 사장의 아들입니다. 들어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장실 문이 열립니다.
“무슨 일이냐? 나 곧 회의하러 가야 한다.”
“저도 회의가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해요.”
“그래, 무슨 용건이냐니까.”
“저어, 아빠…”
“그래 무슨 일이냐니까?”
“저어, 이 돈이면 생맥주 통 몇 개 살 수 있어요?”
하늘이가 제 저금통장을 펼쳐서 김 사장 눈앞에 들이댑니다.
“뭣 때문에 그러느냐?”
“아빠 그냥 말씀만 해주세요.”
“두통쯤 살 수 있겠다만….”
“그것 밖에 안 되요? 그래선 안 되는데. 아빠? 이 돈으로 한 십만 명이 마실 수 있게 살 수 는 없을까요? 아빠가 인심 좀 쓰면 안 되나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김 사장의 눈 꼬리가 위로 치켜집니다.
“알았어요. 아빠! 저 그럼 그냥 갈게요.”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소리를 하던 하늘이는 그냥 휑하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저리 쏘다니게 하나? 도대체 하늘이 엄마는 집에서 뭐 하는 거야?’
김 사장은 집으로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 둡니다.
지난 날 김 사장은 어렵고 힘들게 살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공사장의 날품팔이 막일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전화로는 안 되겠어, 오늘 저녁엔 식구들 모두 모아놓고 정신교육을 단단히 시켜야겠어.’
그렇게 맘을 먹고 김 사장은 사장실은 나섭니다.
회의 장소에 도착하니 ‘올깃쫄깃 찹쌀떡회사’의 이 사장, ‘달콤사르르 얼음과자회사’의 유 사장이 먼저 와있습니다. 그밖에도 ‘튼튼 가구회사’며, ‘멋쟁이 의류회사’ 사장들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딱한잔 생맥주’의 김 사장, ‘올깃쫄깃 찹쌀떡’의 이 사장, ‘달콤사르르 얼음과자’의 유 사장은 가깝게 지내는 사이입니다.
“어서 오시오.”
“아, 그간들 별 일 없었나요?”
아직 회의 시작하기 전입니다. 휴게실에서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길 나눕니다.
“살다보니 오늘 별 이상한 소릴 다 들었지요.”
“무슨 소린데 그래요?”
“아, 우리 하늘이가 다짜고짜 제 저금통장을 보여주더니, 한 십만 명이 마실 수 있는 생맥주를 살 수 없겠느냐 하는 거요. 나, 원,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더라고요.”
“뭐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 집 소원이도 그런 이상한 말을 했지요. 내게 저금통장을 보여주더니, ‘이 돈으로 찹쌀떡 몇 개를 살 수 있어요’하고 묻더군요. 그래, 한 칠백 개는 사겠다 했더니, ‘아빠, 한 십만 개 살 수 없을까요?’아, 이러는 거요. 그래서 무엇 때문에 그러냐? 했더니, 그냥 아무 대답도 않고 나가버리더라고요.”
“그것 참 이상하네요. 우리 한별이도 아침에 그런 말을 했지요. 제 저금통장을 보여주더니,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몇 개나 살 수 있겠느냐 묻더라고요. 그래서 칠만 팔천 원 나누기 백 오십 원 해봐라 그랬지요. 그랬더니, ‘그러면 그거 십만 개지요?’ 아, 그러는 거요. 내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했더니,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는데….”
“거참 이상하네요. 한결같이 십만 명, 십만 개라 말하다니.”
“무슨 집히는 일 없나요?”
“사업하다 보니, 어디 애들 일에 신경 쓸 수가 있어야지요.”
세 사장이 그런 이야길 나누고 있을 때입니다.
“아니 저게 누구야? 유 사장 딸 아니요?”
“정말 한별이 같은데요.”
휴게실에 놓여있는 텔레비전 화면입니다. 한별이 얼굴이 크게 보였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오늘 아침부터 계속해서 특집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 업종의 사장들도 그 일 때문에 모였습니다. 대책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에게 우리 민족이 생긴 역사 이래로 가장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남과 북, 북과 남이 마침내 한 민족 한 나라로 통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주일 뒤면, 우리 민족 십만 명이 금강산에 모여서 통일 선언식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잠시 그 통일 선언식에 참석할 우리 아이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기쁨에 들뜬 아나운서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면서 한별이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정말 기뻐요. 빨리 북쪽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 선물은 아이스크림, 아닙니다. 북쪽 친구들은 얼음보숭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부른대요. 저는요. 그 달콤사르르 녹는 얼음보숭이를 북쪽 친구들에게 선물할래요. 십만 개쯤 가지고 갔음 좋겠는데요. 지금은 그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 북쪽 친구들아! 일주일 뒤에 만나자. 안녕!”
“아, 역시 어린이다운 생각입니다. 달콤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 아니 얼음보숭이처럼 우리 민족의 마음도, 이제 지난 세월의 갈등과 단절의 벽을 허물고 서로 돕고 함께 사는 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럼, 또 다른 한 어린이를 만나보겠습니다.”
“아니, 저 아인 또 소원이 아니요?”
“맞아요. 올깃쫄깃 찹쌀떡의 이 사장 딸이네요.”
“그 옆에 서 있는 아이는 딱한잔 생맥주의 김 사장 아들 하늘이고 말이요.”
‘딱한잔 생맥주’의 김 사장, ‘올깃쫄깃 찹쌀떡’의 이 사장, ‘달콤사르르 얼음과자’의 유 사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회의장 휴게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눈길도 텔레비전으로 모아졌습니다.
“예, 우리 모두는 지금 북쪽 친구들하고 만나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출 거예요. 지금 그 연습을 하고 있고요. 저하고 여기 하늘이도요, 선물을 준비했어요. 저는요, 찹쌀떡을 사 가지고 갈 거고요. 하늘이는 히히! 웃지 마세요.”
소원이가 계면쩍은 듯 싱긋 웃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뭐냐면 말예요. 생맥주래요.”
“아니, 그럼 이번에 북쪽 친구들과 만나면 함께 생맥주를 마시게 되나요?”
아나운서가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아니요. 그 생맥주는 북쪽 친구들의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이어요.”
“아, 그렇습니까? 참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마이크를 스튜디오로 넘기겠습니다. 지금까지 남과 북, 북과 남의 통일 선언식에 참석할 어린이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화면이 바뀌는 걸 보며 세 사장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비로소 십만 명이니, 십만 개니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보시오, 김 사장! 이런 때 돈 좀 써요. 아, 십만 명이 마실 생맥주 통을 트럭에 가득 싣고 가서 아들이랑 함께 통일을 축하하면 얼마나 멋진 일이요. 십만 명이 술잔을 높이 치켜들고 ‘남북통일만세! 북남통일만세!’를 외쳐 부른다. 아, 생각만 해도 꿈결같이 기분이 좋잖아요?”
“그러게 말이요. 이 사장도 찹쌀떡 십만 개를 싣고 가시고 말이요.”
“그럼 유 사장은 아이스크림, 아니 얼음보숭이를 십만 개 싣고 가야겠지요.”
“그래요. 우리들도 조금씩 보탤 터이니 그리들 해봐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고, 멋진 일이요?”
사람들은 모두들 꿈을 꾸는 듯한 얼굴을 했습니다.
“이거 보시오. 모두들 미쳤어요? 십만 명이 생맥주를 마시려면 돈이 얼만 줄 알아요? 쓸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회의나 해요.”
‘딱한잔 생맥주’의 김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화를 벌컥 내더니, 회의장 안으로 들어 가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두런두런 일어나 회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일주일 뒤입니다.
달콤사르르 얼음과자회사 앞입니다. 아이스크림, 아니 얼음보숭이 십만 개를 실은 트럭 옆에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있습니다.
“고마워요, 엄마!”
한별이가 달콤사르르 얼음과자회사의 사장이기도 한 엄마를 끌어안습니다.
“애, 엄마보다도 단 일주일만에 특별히 통일 얼음보숭이 십만 개를 만드느라, 밤낮 없이 수고한 회사 식구들에게 고맙단 인사를 해라.”
“아저씨, 아줌마들 고맙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통일 만세다. 우리 달콤사르르 얼음과자회사 만세다.”
그럴즈음입니다.
저쪽에서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서서히 나타났습니다.
“사장님! ‘올깃쫄깃 찹쌀떡회사’ 차입니다.”
차가 멎자, 소원이가 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올깃쫄깃 찹쌀떡회사’의 이 사장도 활짝 웃으며 뒤따라 내렸습니다.
“한별아!”
“응, 소원아!”
한별이와 소원이는 반갑게 손을 마주잡았습니다.
“하늘이도 우리와 함께 가면 좋은데.”
“그러게 말야. 우리 아빠와 네 엄마가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았대.”
‘딱한잔 생맥주회사’ 김 사장의 욕심 많은 얼굴과, 하늘이의 실망스런 얼굴이 잠시 겹쳐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입니다.
한별이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습니다. 북쪽 친구들과 얼음보숭이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조차 달콤하고 시원합니다. 소원이도 그렇습니다. 아빠 회사에서 만드는 찹쌀떡은 정말 맛있습니다. 북쪽 친구들이 좋아할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자, 출발!”
얼음보숭이와 찹쌀떡을 가득 실은 트럭이 서서히 출발 할 때입니다.
유 사장의 손전화기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거 봐요, 당신들만 가면 안 되지요. 잔치에는 뭐니뭐니해도 술이 있어야 하는 거요. 여기 십만 명이 실컷 마시고도 남을 ‘딱한잔 생맥주’가 가고 있으니 한번 뒤를 돌아보시오.”
전화를 받으며 유 사장은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저만큼 생맥주를 가득 실은 커다란 냉동차량이 보였습니다. 그 위로는 티 끝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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