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피처럼 붉은 꽃잎. 그 아름답던 네 몸 땅바닥에 뉘였구나.>
<동화>
쇠족과 곰족
김 목
(1)
은하수가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며 흐릅니다. 북쪽의 곰산 봉우리에서 남쪽의 쇠산 골짜기까지 기일게 물길처럼 이었습니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하늘의 다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캄캄한 밤입니다. 반짝이는 별도, 은하수도 보이지 않습니다. 검은 구름이 곰산 봉우리에서 쇠산 골짜기로 내려와 하늘을 가득 덮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갔습니다. 풀벌레 소리만 요란스러웠습니다. 한 순간 풀벌레 소리가 뚝 멎었습니다.
“탁, 타다닥, 탁!”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두 돌멩이가 부딪치자, 시퍼런 불씨가 툭툭 튀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혀를 날름거리는 불꽃송이가 되었습니다.
그 불꽃송이가 흰 연기를 내며 날아갔습니다. 은하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입니다.
“끼이이히야! 끼이햐!”
“쇠족을 모두 죽여라!”
요란한 함성 소리가 터졌습니다. 어둠 한쪽이 불쑥 무너지는가 싶더니, 쇠족 마을로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조금 전에 흰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간 건 불화살이었습니다. 그 불화살이 마른풀로 덮은 지붕 위에 꽂혔습니다. 불화살의 불꽃은 이내 큰 불꽃이 되었습니다. 삽시간에 지붕 하나를 다 태우고 이웃집 지붕으로 옮겨갔습니다.
쇠족 사람들은 한참 깊은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게 되었을 때는 온 마을이 불바다였습니다.
함성을 지르며 홍수처럼 밀려온 사람들은 곰족이었습니다. 등에는 활과 화살을 짊어졌고, 손에는 도끼며, 창과 칼을 들었습니다.
곰족은 그 도끼와 창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불빛에 도끼날,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사람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비명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습니다.
화살이 쇳소리를 내며 날아갔습니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고꾸라져 나무토막처럼 땅바닥을 굴렀습니다.
“끼이이히야! 끼이햐! 모두 죽여라!”
곰족은 마치 미친 사람들 같았습니다. 노인이고 여자고 가리지를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둥, 두둥둥, 둥둥!”
이윽고 북 소리가 울렸습니다. 이제 그만 싸움을 멈추라는 신호입니다.
“자, 이제 가축과 식량을 모두 옮겨라!”
온 몸에 시뻘건 피를 묻힌 곰족의 우두머리가 명령을 내렸습니다.
동쪽 하늘부터 희끄므레 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산과 들, 나무와 바위, 움직이는 물체를 눈으로 가려볼 수가 있었습니다.
불에 탄 집들은 아직도 검은 연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곰족들은 그런 집들을 뒤져서 식량을 찾아냈습니다. 가축 우리를 열어 수 십 마리의 가축을 끌어냈습니다.
“우리는 이겼다. 곰족 만세!”
“끼이햐! 끼이햐!”
사방은 불에 탄 집들입니다. 쇠족들의 주검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곰족들은 등에 잔뜩 짊어진 식량이 좋기만 합니다. 눈앞에 가득한 수십 마리의 가축이 즐겁기만 합니다.
“자, 이제 모두들 곰산으로 돌아가자.”
곰족들은 피 묻은 손을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한바탕 덩실덩실 승리의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 다음 곰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다시 쇠족 마을은 조용합니다. 집을 태우던 불길도 잦아졌습니다. 이따금 부는 바람이 한줄기 연기를 풀썩일 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매캐한 연기 냄새에 비릿한 피 냄새가 섞입니다. 지난밤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시간을 흘러 한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의 무거운 구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따가운 태양이 쇠족 마을 위까지 왔습니다.
“으앙! 으아앙!”
어디선가 실낱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울음 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꼬옥 안고 쓰러졌습니다. 그 어머니의 품안에서 빠져나온 아기였습니다. 어머니의 젖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음모오!”
그 때였습니다. 커다란 암소였습니다. 숲 속에서 암 소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어디에서 곰족의 손길을 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커다란 암소가 뚜벅뚜벅 아기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큰 눈을 깜박이며 말똥말똥 아기를 쳐다보았습니다.
“엄마!”
아기는 엎어질 듯 엎어질 듯 겨우 일어났습니다. 쓰러질 듯, 말 듯 뒤뚱거리며 암소에게 다가갔습니다.
암소의 젖은 퉁퉁 불어있었습니다. 아기는 그 암소의 젖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습니다. 암소는 그대로 가만 서있었습니다. 두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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