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모정 임제 팽나무
임제는 조선의 대문호다. 조선이 북방민족의 기개를 살려 옛 고구려, 나아가 고조선의 강역을 되찾고 또 더 나아가 중원을 석권하여 패자까지 되었다면 임제 문학은 더욱 빛나는 별이었을 것이다.
그 임제를 말하는 글 둘이 있다. 첫째는 물곡사(勿哭辭)이니 ‘사이팔만개호칭제(四夷八蠻 皆呼稱帝)/ 유독조선입주중국(唯獨朝鮮 入主中國)/ 아생하위아사하위(我生何爲 我死何爲)/ 물곡(勿哭)’이다. 이는 ‘중국을 둘러싼 여러 나라가 모두 제국이라 하는데, 오직 조선만 중국을 주인으로 삼고 있다. 이런 나약한 나라에서 삶과 죽음이 무슨 한이 되겠느냐, 울지 마라’ 이다.
그러니까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사대에 빠져 당당하지 못한 왕과 사대부를 싸잡아서 나무라는 글이다. 또 이 호통은 뼛속까지 친일, 친미에 빠져있는 정치, 기업, 학자, 종교, 교육, 문화 모리배에겐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는 임제가 조선을 이(夷)로 폄훼하고 비하했다지만, 이 물곡사 어디에 우리를 오랑캐라고 했는가? 우리의 동이는 큰 활을 쏘는 동쪽 나라이고, 오랑캐는 각 나라의 입장일 뿐이다. 우리가 같은 북방민족인 만주족, 몽골족을 오랑캐라고 불렀고, 당연히 중국도 오랑캐였다. 이 오랑캐 이(夷)는 자국을 넘보는 이웃 나라를 낮추는 말이다. 중국이 조선을 오랑캐라고 한 것은 ‘맞고’, 우리가 중국을 오랑캐라고 한 것은 ‘틀리다’는 것은 그저 사시의 노예근성이다.
두 번째는 개성의 여류 문인이자 기녀로 알려진 황진이 무덤에서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을 어듸 두고 백골만 무쳣나니/ 잔 잡아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라는 시이다. 임제는 1576년 28세에 생원시와 진사시, 이듬해에 문과 1위로 급제하였다. 그리고 흥양현감을 거쳐 정6품 무관인 서북도 병마평사가 되어 임지로 가던 길이다. 현재 북한 장단현 남정현 고개의 황진이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영웅호걸이며 절세가인도 한 번 가면 그만이라는 시 한 수를 읊었다. 그런데 이를 안 조선 조정은 사대부인 임제가 기녀에게 술을 올리고 기리는 시를 지었다며 탄핵하고 파직하였다.
황진이는 1506년에 태어나 1567년에 세상을 떴고, 임제는 1549년에 태어나 1587년에 세상을 떴다. 황진이가 임제보다 43살 많고, 임제가 황진이를 찾은 때는 황진이 사후 10여 년 뒤이고 30세 무렵이니 젊음이 넘치는 시기이다.
황진이의 기명은 명월이며 시서화에 모두 빼어났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사흘이나 집안에 향내가 진동했던 절세미인이었다. 또 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민초의 추앙을 받았고, 1611년 허균이 ‘성소부부고’에 처음 기록을 남겼다.
황진이가 기녀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녀는 문인이다. 후배 문인이 세상을 울리는 작품을 남긴 선배의 무덤에 술잔을 올리고 시를 읊은 게 무슨 잘못인가? 탄핵과 삭직의 기준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 불가이다. 도덕이라면 우습고, 권위라면 졸렬하고, 질투라면 좀스럽다.
어느 날 황진이 무덤 앞에 작은 샘이 생겨 물이 조금씩 솟았다고 한다. 목마른 나그네가 그 두 바위 사이의 샘물에 엎드려 물을 마셨다고 한다. 그런 헛 얘기가 괜스레 생긴 게 아니다.
아무튼, 그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나주 회진에서 영산강을 내려다보는 ‘영모정’은 임제가 여러 문우와 교우하며 시를 읊고, 세상 유람의 전초기지로 삼은 곳이다. 이곳의 4백 살이 넘는 아름드리나무들을 보며 그래 ‘울지 말자, 남 탓도 하지 말자’ 한다. 어차피 모두가 세월 속에 한 줌 재로 사라질 테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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