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운동천 이담로 뽕나무
월출산이 영암의 산이냐, 강진의 산이냐? 영암에서 아름답냐, 강진에서 더 아름답냐? 는 말은 그저 월출산의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말이나 글로써 다할 수 없음이다. 그뿐인가? 천황봉에서 사해를 눈에 두면 지리산 끝자락과 바다 건너 한라산이니 바로 제황의 위엄이다.
백두대간의 돛대인 지리산에서 광주의 무등산과 순천의 조계산, 그리고 영암의 월출산을 이어보면 마치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또 지리산이 머리이고 무등산과 조계산이 두 젖무덤이니, 당연히 월출산은 두 젖이 키운 용이다. 이 용이 달을 여의주로 입에 물고 한반도 남서해에서 대양을 향해 날아오른다. 더하여 월출산은 달을 낳는 산이고 달이 오르는 산이다. 맑거나 운무가 흐르고 구름이 가려도, 비 흩뿌리고 눈 날려도, 봄, 여름, 갈 겨울, 어느 때에도 달을 낳는다. 산과 들, 못과 강에 마음과 눈길이 닿으면 달이 오른다. 그렇게 누구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기기묘묘한 산자락을 사방 백 리가 툭 트인 들판 위에 얹어 놓았다.
이 산 남쪽 구지봉이 마치 무명베를 길게 늘어놓은 듯 우아하게 물줄기를 펼치니 바로 금릉(金陵) 경포대(鏡布臺)이다.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 되었고, 이 물이 만든 산 아래 남쪽 너른 터의 절은 ‘월남사’이다. 이 고려 사찰의 빈터에 지금은 석공이 돌이 된 아내로 만들었다는 삼층석탑만 동그마니 남았다. 이 탑과 이어지는 월출산 옥판봉에 눈길이 닿으면 그저 ‘아!’ 소리에 숨이 잠시 멎는다. 채우는 게 소소한 보람이면 비움은 장엄함이고 승화되어 거룩함이다. 여기 텅 비어 넉넉한 월남사지의 삼층석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지침이다.
또 경포대 맑은 물이 산 아래의 녹차를 키워 1천 년의 전통을 이으니 ‘옥판차’이다. 더하여 호남 제일의 풍광 별서정원 백운동천을 만들었다. 백운동은 ‘흐르는 물이 다시 운무가 되는 마을’이니, 가히 신선이 인간과 함께 하는 곳이다.
이곳의 백운동천은 조선 중기 이담로(1627~1701)의 별서정원이다. 금릉의 물이 그냥 안개와 구름이 되는 게 아쉬워 계곡에 정자를 앉힌 것이다. 이곳의 꽃과 나무와 집, 병풍으로 두른 옥판봉은 보는 대로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은 눈길을 옮기는 대로 살아서 움직인다.
강진 유배 5년이던 1812년 9월 12일이다. 쉰 살의 정약용은 스물여섯 살의 초의 등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둘러보고 백운동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때 정약용은 초의에게 ‘백운동도’와 ‘다산초당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은 시문을 지어 20쪽짜리 ‘백운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담로의 고증손자인 이덕휘에게 주었다. 이 백운첩이 2001년 강진의 원주 이씨 문중에서 발견되고 백운동천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백운동도 속 12경은 ‘옥판봉’이 끌어오는 월출, 한겨울의 동백꽃 ‘산다경’, 홍매 100그루의 향기 ‘백매오’, 단풍 계곡의 물방울 ‘홍옥폭’. 여섯 구비 물 위의 술잔 ‘유상곡수’, 푸른 절벽 붉은 글씨 ‘창하벽’, 늘푸른 용 비늘 솔 ‘정유강’, 모란 꽃담 ‘모란체’, 고즈넉한 작은 방 ‘취미선방’, 붉은 단풍 가림막 ‘풍단’, 신선이 머무는 ‘정선대’, 울울창창 왕대 숲 ‘운당원’이다.
여기 한 그루 뽕나무가 여섯 구비 유상곡수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다. 누에를 만나 비단이 되고, 입 궁금한 아이들 입술을 검게 물들이는 오디나무이다. 그 오디뽕나무가 이 험한 세상에서 허리 꼿꼿이 눈 부라리지 않고 흐르는 술잔을 건져 두 손 모아 공손히 길손에게 올린다.
여기서 오디뽕나무가 권하는 술 한 잔을 마시고도 아쉬우면 달 아래 월하마을에 들리면 된다. 이곳 ‘월출산방’은 ‘공수래 끽다거’이니 ‘빈손으로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도예가 강승원 주인장의 옥판차를 마시면 여기 사람은 다 인간이자 신선이구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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