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원 춘향 버드나무
춘향은 봄의 향기이니 향기로운 봄이다. 민들레건, 장다리건 눈 감으면 그 봄꽃 향기에 나풀나풀 나비가 난다. 남원은 봄의 고을이다. 그 남원 광한루원의 꽃과 나비는 또 춘향이다.
월매는 남원부의 관기로 한여름이면 여뀌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요천가에 살았다. 1595년 딸을 낳아 옥녀라 했다. 옥구슬처럼 예쁜 옥녀는 1610년 15살에 계례를 치르고 춘향이라는 자를 받았다. 봄의 향기이자 향기로운 봄의 처자 춘향은 어머니를 따라 관기로 입적되었다.
그 해 단옷날이다. 요천강 강가 능수버들에 그네가 걸렸다. 춘향과 몸종인 향단이는 요천강으로 나갔다. 그네 위 춘향이의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니 올라갈 땐 제비요, 내려올 땐 나비였다. 이때 춘향의 모습을 지켜보는 소년은 남원부사 성안의의 셋째 아들 성이성이었다.
춘향과 성이성의 첫 만남은 첫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지체 높은 부사의 아들과 천기 춘향의 사랑은 뭇 사람의 부러움이고 즐거움이었다. 허나 사랑 얘기는 무한이지만, 사랑은 유한이다. 1611년 겨울이 가시지 않은 2월, 성안의는 광주 목사가 되었으니 성이성과 춘향의 사랑도 작별의 시간이었다. 남원 사매면 월평리 오리정이 그날의 이별 장소이다.
그리고 성이성의 사랑은 바람결에라도 듣고 싶은 애절함이 되었다. 하지만 춘향은 사랑의 맹세가 한낱 뜬구름이더라도 죽는 날까지 성이성을 기다리며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춘향과 성이성이 이별한 1611년은 광해 3년이다. 이 해에 남원은 무슨 연유인지 4명의 부사가 교체되었으니,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 7월 윤유기, 9월 정문부, 12월은 이충양이다. 또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했다. 춘향은 지리산 구룡계곡으로 몸을 피했으나, 천하는 넓어도 작은 몸을 오래 숨길 수는 없었다. 선택은 죽음밖에 없었으니….
어느 날 싸늘하게 식은 춘향 머리맡에는 성이성이 사랑의 정표로 준 하얀 비단 손수건만 곱게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춘향을 묻어 ‘성옥녀지묘’라 석비로 사랑을 기리며 눈물을 훔쳤다.
남원은 춘향과 성이성의 얘기로 분분했다. 그 분분한 얘기가 노래가 되고, 굿판이 되고, 민담이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양반을 능멸하고 미풍양속을 헤치는 일이라며 각종 행위를 금지 시켰다. 하지만 누가 막으랴? 막으면 더 확산하는 게 소문이다. 사람들은 성이성을 이몽룡으로, 춘향을 성춘향으로 바꾸어 노래, 연극, 얘기를 계속했다.
1637년이다. 성이성은 남원에 들러 옛 스승에게 춘향에 대해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 1647년이다. 한겨울에 성이성은 또 남원에 왔지만, 옛 스승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늙은 기녀 ‘여진’을 만나 지난 얘기를 나누고 일기를 남겼다.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 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소년 시절의 일을 생각하며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서 소년 시절의 일은 첫사랑이고, 또 그 첫사랑은 춘향이 아니겠는가?
이 춘향의 사랑 얘기가 있어 남원의 광한루원은 한겨울에 찾아도 봄이다. 1582년, 여기 광한루원에 남원 부사 장의국이 연못과 오작교를 만들고 버드나무를 심었다. 이 버드나무는 춘향과 성이성의 사랑을 알고 있으리라. 어쩌면 단옷날, 이 버드나무에도 그네가 걸렸을 것이다,
정유재란에 1만여 남원부민이 학살되고, 한 줌 재가 돼버린 광한루원이다. 그 화마를 견디고 살아남은 버드나무이다. 그런데 이 버드나무 바로 곁 춘향사당의 춘향 영정은 ‘쓰루야마 마사시노기’로 창씨개명한 김은호가 그렸다. 그 친일화가의 춘향인지, 논개인지 구분도 안 되는 그림은 늦었지만 2020년 치워졌다. 이제 만인의 사랑으로 다시 새 영정을 모시면 또 그게 사랑, 의로움, 봄 향기, 향기 봄의 고을 남원이 사랑의 고을로 오래도록 사랑받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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