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신풍루 삼정승 느티나무
조선 22대 왕 정조는 보위에 오르자, 아버지가 묻힌 양주 남쪽 배봉산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했다. 또 행궁인 화성을 현륭원 북쪽 팔달산에 지었다.
이 화성은 정약용이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새로운 기술로 1794년 1월에 시작하여 1796년 8월에 완공하였다. 이의 일을 봉조하, 김종수 등이 정리하니 10권 10책의 화성성역의궤이다,
이 책은 각종 공사법, 수성과 공략의 무기와 대응, 공사 기자재의 모습과 사용법, 관청의 명칭과 관원 이름, 정조의 윤음 및 각종 지시전달문과 보고문, 물품의 종류와 수량 등까지 담고 있다. 심지어 건물 격자의 모양, 축성 재료가 어느 지방 것인가? 석수 642명, 목수 335명 및 기타 일반 백성들의 이름 등 2년 8개월의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적혀있는 축조일지이다.
1795년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정조는 문무백관, 가족과 함께 화성에 갔다. 이때의 기록인 ‘화성원행반차도’가 또 있다. 여기서도 1,779명의 사람, 779필의 말, 당시의 의복이나 가마 등을 눈앞의 모습처럼 볼 수 있다.
당시 현륭원은 이제 융건릉이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장조(사도세자)와 현경왕후의 융릉, 10살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의 건릉으로 이를 합쳐 융건릉이다. 융릉의 이름이 영우원, 현륭원이었던 것은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세자와 세자빈,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의 부모 무덤은 원이기 때문이다. 또 주인은 모르나 유물 가치가 있으면 총, 오래된 유적지는 고분이다. 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무덤을 그냥 묘라고 해도 괜찮다.
여기 화성은 중국 요 임금의 화봉삼축에서 얻은 이름이다. 요 임금이 화 지방을 순행할 때 그곳 벼슬아치인 봉인이 장수, 부, 다남 등 세 번 임금을 축복했다. 정조는 이곳 화산의 화(花)와 화봉삼축의 화(華)가 같은 꽃 화라며 성의 이름을 화성이라 했다.
옛 도읍지나 국왕의 행궁이 있던 곳, 군사 요지에는 유수부를 두었고 책임자를 유수라 했다. 조선의 대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혼자 힘으로 저술한 서유구도 이곳 화성유수였다. 서유구는 재임(1836~1837) 2년여의 일상과 공무를 기록했으니, 화영일록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도난으로 일본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있으니, 이곳 민간인 삶의 모습까지 생생히 담긴 이 관직일기 하나 지키지 못함도 조선의 몰락은 우연이 아닌 필연의 결과이다.
여기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에 삼정승을 의미하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품(品)자 모습으로 서 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삼괴(三槐)’ 유적이다. 삼괴는 궁궐 뜰에 괴목인 세 그루의 회화나무나 느티나무를 심고 삼정승을 의미하는 말이다.
온천지인 온양에 역대 왕들의 휴양을 위한 초수행궁이 있었다. 사도세자가 이곳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고 영괴대라 했다. 이 일을 정약용에게 들은 정조는 아버지를 기려 화성행궁 정문 앞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하지만 이 일은 기록에 없고, 나무 수령과 행궁 건축 시기와도 차이가 있다. 그러더라도 예전에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이다. 아무튼, 이 품자를 이룬 삼정승 나무의 존재는 하늘의 신묘한 뜻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정조가 쌀죽을 쒀 맛을 본 뒤 굶주린 백성에게 손수 나눠주고, 행궁을 훼손하던 일제의 만행, 수원 권번의 의기 김향화 등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바로 옆 경찰서로 끌려가던 모습도 가까이 지켜봤던 삼정승 느티나무이다. 부디 오래오래 살았으면 한다. 시멘트 등 환경공해와 수원 고갈 등 무관심으로 이 느티나무가 해를 입는다면 이 역시 서유구의 화영일록처럼 시대의 몰락이 필연이라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삼가 삼정승 느티나무 세 그루 앞에 허리를 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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