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종로초등학교 최제우 회화나무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신이 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신이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신이 된다. 임진왜란 뒤 왜 열도를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나기 전날이다. 가문의 사찰에서 불상 하나가 사라졌고, 아이가 태어나자 그 사라진 부처의 화신이라 했다. 당시 이들 왜를 섬멸한 이순신은 돌아가신 뒤, 백성들의 신이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러름은 높고 깊어진다.
살아서 신이 된 동학의 교주 최제우는 1824년 조선 순조 24년에 경주에서 최옥의 서자로 태어났다. 6세에 어머니, 16세에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13세에 울산에서 박씨와 가정을 꾸렸으나, 16세에 부인을 잃었다.
당시 조선의 세도정치는 사회기강을 무너뜨렸다. 흉년과 기근, 호열자까지 겹치니, 농민 반란이 되었다. 또 천주교의 전래와 참혹한 탄압은 몸과 마음이 기댈 곳까지 빼앗았다. 이에 최제우는 천주교를 서학이라 여기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860년 4월 어느 날이다. 최제우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며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때 천지가 진동하며 상제 ‘한울’의 음성이 들렸다. 이때 한울은 최제우에게 병을 고치는 영부(靈符)와 세상을 다스리는 조화(造化)를 주었다. 이에 최제우는 이름 제선(濟宣)을 ‘세상의 미욱한 백성을 건진다’는 제우(濟愚)로 바꾸고 동학을 열었으니, 바로 살아있는 신이 된 것이다.
동학은 화랑도 등 우리 고유 사상에 유불선의 교리를 더한 종교였다. 바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사람을 한울처럼 섬겨라.’,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널리 민중을 구제하라.’라고 가르쳤다.
이는 유교의 전통사상과 신분계급제인 전제정치를 위협하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그리고 동학의 교세가 영남에서 호남으로 퍼져 나가자, 왕권은 크게 당황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며 최제우의 체포령을 내렸다.
1863년 철종 14년인 12월 9일 아침이다. 수제자인 해월이 찾아와 잠시 피할 것을 요청했으나 최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밤이 되자 손님이 올 거라며 촛불로 길을 환히 밝혔다. 아니나 다를까 선전관 정운규와 나졸 오륙십 명이 들이닥쳤고, 최제우는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영천에 이르렀을 때다. 나졸 하나가 최제우에게 불경스레 대하자, 그를 태운 말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선전관이 잘못을 사과하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행렬이 한양 30리인 과천에 이르러 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최제우가 북쪽을 보고 통곡을 했다. 선전관이 그 까닭을 묻자, 기다려 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이때 한양 쪽에서 또 다른 선전관이 오더니, 철종이 승하하였으니 최제우를 대구 감영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최제우는 1864년 1월 6일 다시 대구 감영으로 왔다. 그리고 3월 10일 오후 1시 30분경 형장인 남문 밖 아미산 아래 관덕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최제우를 가두었던 대구 감영은 지금 대구중앙초등학교이다. 당시 대구 감영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최재우가 갇혀있던 옥방 옆이었다. 그날 형장으로 가던 최제우가 회화나무를 바라보다 밑둥치를 쓰다듬어 주자, 순간 ‘우수수’ 나뭇잎이 소리를 내고 ‘후드득’ 수액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대구 감영의 회화나무는 살아서 신이 되었던 최제우를 잠시나마 모셨다. 그리고 오늘은 대구중앙초등학교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모신다. 그 회화나무를 바라보며 더 이상 무지막지한 불통 권력, 불의와 부정이 없는, 만민이 평등한 인내천의 세상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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