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으로 뻗은 소백산맥이 삼한 시대의 무주를 동쪽은 변한, 서쪽은 마한으로 만들었다. 이곳 무주 선인봉 끝자락 남대천과 원당천이 만나는 곳에 모자를 닮은 바위 석모대가 있는 석모산이 있다. 마치 거북이가 두 물줄기의 물을 마시는 듯한 이 석모산의 잘록한 목부분에 높이 3m, 길이 10m의 바위굴이 있으니, ‘나제통문’으로 무주 33경의 제1경이다.
‘통일문으로 불리는 나제통문은 설천면 두남마을과 소촌리 이남마을 사이의 암벽을 뚫은 통문이다, 설천은 옛날 신라와 백제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나라가 국경 병참기지로 삼아 동서문화가 교류되던 관문이었다. 이렇듯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풍속과 문물이 판이한 지역인만큼 지금도 언어와 풍습 등 특색을 간직해 설천 장날에 사투리만으로 무주와 무풍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신리와 백제가 국경을 이뤘던 역사의 통로 라제통문. 이 문을 기점으로 동쪽은 신라 땅이었고, 서쪽은 백제 땅으로 나뉘었다. 삼국시대 격전장이기도 했던 라제통문은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바친 국경선이기도 했다. 이처럼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맞대고 넘나들던 곳이니 전라도와 경상도가 이곳을 경계로 나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오해다. 경계의 상징인 이곳에는 사실 수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그 비밀은 바로 라제통문이라는 명칭에 담겨있다. 글자 그대로 신라와 백제가 서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나제통문을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고 왜 라제통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안내판의 지난 시절 내용들이다.
그리고 최근의 안내판이다.
또 김유신 장군이 지나가서 ‘통일문’이고, 더하여 왜란 7년 전쟁 때 이여송도 이곳에 왔다고 한다. 이여송은 석모산이 명산임을 알고 칼로 바위를 내리쳤다. 바위에서 붉은 피가 흘렀고, 그 피 냄새에 파리가 모여 소를 이루었다. ‘승소(蠅所)’ 즉 ‘파리소’라는 글자가 지금도 바위에 있으니, 아픈 역사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또 부근 야산의 이름 없는 3백여 기의 옛 무덤은 당시 전투에서 숨진 신라와 백제 군사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참으로 잘 짜여진 각본이다.
아무튼, 지난 시절 이곳 안내판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우습다. 천여 년 교류의 관문이었는데, 언어와 풍습이 왜 다른가? 그 이유와 논리에 설득력이 없다. 언어와 풍습이 다르다는 것은 교류가 쉽지 않았다는 반증인데, 이곳은 천여년 교류의 관문 아닌가?
그러니까 이 나제통문은 이름부터 잘못되었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쯤이었겠지만, 이곳의 원래 지명이 기니미이니 ‘기니미굴’이다. 따라서 신라와 백제의 국경 병참기지 주장도 근거가 없고, 이여송의 승소, 김유신의 통일문도 허구다. ‘기니미굴’보다 ‘라제통문’이 수학여행이며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멋진 이름 아니겠는가? 옛 신라 사람은 승자의 자부심으로, 백제 사람은 패자의 애절함으로 찾아올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어찌 정답인 기니미가 오답인 나제통문을 이길 것인가?
그리고 이곳 바위의 글자는 학이 있는 연못이라는 담학(潭鶴)이다. 그 담학이 파리소인 승소라니 파리가 웃을 일이다.
또 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나제통문의 설명은 한마디로 왜곡일 뿐이다. 옛날에 무주에서 경상도로 가려면, 여기서 15㎞쯤 동남쪽의 덕산재를 넘었다. 이 나제통문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 무주 금광 개발을 위해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를 내면서 우마차 용도로 조잡하게 뚫은 굴이다. 부끄럽지만 ‘왜수탈굴’이다.
그럼에도 ‘좋은 것이 좋고’,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거짓이 스멀스멀 끼어들어 참이 되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1962년 4월 20일 구천동 33경이 당시 교통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10대 관광지에 선정되었다. 이를 주관한 사람은 당시 육군 대령 김남관이다. 구천동 들머리에 김남관을 기리는 공적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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