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여행기

여름 쌍계사

운당 2016. 8. 6. 07:23

여름 쌍계사

 

염천, 성하지절, 삼복더위, 땡볕 등 한 더위를 견디기 힘드니 여름은 말도 많다.

이 중 염천(炎天)은 불꽃 하늘, 불타는 하늘이니 말 그대로 용광로에 앉아 있음직한 한 더위에 대한 표현이다.

 

봄이면 벚꽃이 계곡물에 꽃눈을 흩날리는 아름다운 곳이 쌍계사 계곡이다.

이 염천에 더위를 견디고자 쌍계사를 찾았다.

그런데 쌍계사를 알리는 계자가 계()와 계()로 쓰여 있어서 처음엔 절이 둘 있나 보다 하고 헷갈렸다.

하지만 이내 두 계곡이 만나는 걸 보고 지은 절 이름이라, 시내 계자도 두 글자를 두루 쓰는구나 하고 웃었다.

 

이렇듯 쌍계사는 남북조 시대인 신라 성덕왕 21(722)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和尙)이 창건했고, 문성왕 2(840)에 중국에서 선종(禪宗)의 법맥(法脈)을 이어 귀국한 혜소 진감선사(慧昭 眞鑑禪師, 774~850)가 중창(重創)하여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한다.

그 뒤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정강왕(定康王, 886887)이 쌍계사(雙磎寺)로 고쳤다 한다.

그리고 벽암선사(碧巖禪師, 15751660)가 임진왜란 때 불을 피하지 못한 절을 인조 10(1632)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한 더위에 호강이라!

쌍계사 가까이 리조트에 들어서니 불현 듯 여름이 없어진다. 눈앞엔 시원한 쌍계 계곡과 짙푸른 산야뿐이다.

하지만 어찌 에어컨 밑에만 있을 손가? 더위가 조금 가셨거니 하고 쌍계사로 올랐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던가?

한 더위라 절집을 찾는 사람도 드물다. 카메라도 들고 가기 귀찮아 그냥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데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과 모자를 단정히 쓴 여인의 뒷모습이 주변과 잘 어울린다.

이것도 나이 듦인가? 젊은 사람을 보면 아름답게만 보인다.

 

허나 일주문을 들어서니 너른 절집에 사람 보기가 힘들다.

이곳 쌍계사 절집은 그 가람배치가 마치 극락에 오르는 길 같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 한 줄로 이어지고 집채만 한 암석의 마애부처님까지 뵙고 구층 석탑을 지나 대웅전에 이른다.

 

그렇게 극락정토 대웅전을 눈앞에 두는데, 웬 커다란 석비가 반긴다. 진감선사대공탑비라 한다.

역시 진감선사님이시다. 석비를 이고 있는 거북이가 살아있다. 마주보는 거북이의 눈빛은 세상의 무거움을 가볍게 하는 자비로움이고 평화다.

이어 화엄전, 나한전, 삼성각, 적묵당, 범종루 등을 차례로 둘러보고 닫혀있는 금당까지 지나쳐 다시 쌍계사 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맑은 쌍계 물에 피라미들이 떼를 이뤄 놀고 있다. 큰 애는 손바닥 길이다.

잠시 그 애들 가까이 다가가 물을 튕기다 지는 해를 담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쌍계사는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 길에 들렸던 곳이다. 하지만 그간 세월이 얼마인가? 어렴풋이도 기억엔 없고, 어떤 노스님이 주신 녹차 한 잔을 우연찮게 얻어 마신 기억만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냉장고에 있는 맥주병을 꺼내 거품이 잔뜩 일게 따른 뒤, 입술에 그 거품을 묻혀가며 맛나게 한 잔 마신다.

 

염천인들 제가 어쩌랴?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힘들 때면 떠올리는 경구다. 그러니 이 염천도 지나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2016년 삼복지절, 불꽃더위를 아름다운 쌍계 계곡에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