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25)

운당 2014. 9. 1. 06:22

9. 설문대 할망

 

그렇게 쥐와 닭은 태풍 볼라벤 덕분에 우리 발톱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

세찬 날개 짓으로 바람을 일으켜 2012년의 쥐와 닭 모습을 보여주던 백록담 까마귀는 다음과 같이 얘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휴지조각처럼 바람에 날아가 버렸지.”

그러니까, 우리가 본 쥐와 닭이 2012년의 쥐와 닭이란 거야?”

그렇다니까. 너희가 오마도에서 뒤따라 온 건 2012년의 쥐와 닭이야?”

“1964년의 고흥 땅 오마도와 2012년의 제주도가 이어진 거구나.”

지금 너희들은 과거와 미래를 훌훌 오고가고, 넘나들고 있는 거야. 그렇게 시간과 공간 여행을 하는 셈이지.”

그렇담 쥐와 닭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 백록담 까마귀들이 날마다 제주도 곳곳을 살펴보고 있어. 하지만 쥐와 닭은 태풍 볼라벤에 날려간 뒤로는 보이질 않았어. 그러다 너희에게 그것들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쉬기도 답답해졌어. 또 다시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 해서 말이야.”

우린 쥐와 닭이 제주도에 간다기에 뒤따라 왔는데.”

구름이와 세민이는 풀이 죽어 얼굴이 어두웠다.

고흥 오마도에서 뒤따라 온 쥐와 닭이 2012년의 쥐와 닭이었다. 그렇다면 그 쥐와 닭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때다. 백록담 까마귀가 날개를 파닥이며 말했다.

! 좋은 수가 있다. 설문대 할망에게 여쭤보면 알거야.”

설문대 할망?”

! 설문대 할망은 우리 제주섬을 만든 분이야.

오래 오래 전, 설문대 할망이 있었다. 이 설문대 할망이 하늘에 살다가 뭍으로 내려왔다.

설문대 할망은 키가 컸다. 그래서 너른 바다에다 살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문대 할망은 뭍의 흙을 치마폭에 담아와 섬을 만들기 시작했다. 몇 차례 흙을 날라 온 뒤, 마지막으로 한 무더기 뭉텅 가져와 한라산을 만들었다.

그런데 설문대 할망이 치마폭의 터진 구멍으로 흙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그 흘린 흙은 둥그스럼 올록볼록 작은 산무더기가 되었다. 지금 제주도 360여개의 오름들은 그 치마폭에서 흘러나온 흙이다.

그렇게 한라산을 비롯하여 올망졸망한 오름, 군데군데 꼬막섬의 아름다운 제주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설문대 할망의 키가 워낙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한 발은 성산일출봉에, 또 한발은 바다 앞 관탈섬에 걸쳐졌다. 그래서 빨래를 할 때도 한라산 꼭대기를 방석삼아 앉아서 관탈섬에 빨랫감을 놓아야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