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 기행>
매화 향기를 찾아서
봄이 한꺼번에 왔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조팝, 히어리, 산수유, 매화, 벚꽃 등이 한꺼번에 피어난 것이다. 산 벚꽃까지 합세했으니 그야말로 꽃대궐을 차린 셈이다.
봄비가 내리고 기온이 올라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 한꺼번에 피어나니 보기는 좋지만, 봄날이 또 훌쩍 한꺼번에 가버릴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하릴없이 봄꽃을 즐기는 여유를 갖고서 무슨 욕심이랴?
이 봄날에 생업에 땀 흘리는 분들, 병상에 누워있는 분들께 괜스레 미안할 뿐이다.
아무튼 봄날 매화 향기를 찾아 간다.
순천 조계산(曹溪山884m)이 품고 있는 가볼만한 절집은 셋이다. 송광사(松廣寺), 천자암(天子庵), 그리고 선암사(仙巖寺)다.
선암사는 조계산 동남쪽 방향이어서 떨기나무 숲으로 이른 봄 햇살이 깊숙이 들어와 다른 산속보다 매화가 조금 일찍 개화한다.
이 선암사의 매화는 수령이 6백여 살이고 20여 그루가 절집 고샅길 담장을 끼고 사이좋게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봄볕을 밟아 맨 위쪽 절집에 이르면 선경(仙境)에 선암매(仙巖梅)가 화사하게, 그러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 새소리까지 담고 고즈넉이 서있다. 아마도 인간이 자연에 버금가게 그린 가장 멋진 그림이리라.
바라보니 숨 막힐 듯 아름답다. 향기롭다. 6백 살 노수(老樹)를 열아홉 처녀 대하듯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다.
잠시지만 아득하고 긴 세월이 살아서 온 몸을 흔들고 깨운다. 머리가 맑아지니 생각도 자유롭다.
세상사 덧없노라. 평화와 행복은 마음에 있느니라. 새 생명의 씨앗을 싣고 오는 봄바람이 여린 풀잎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하늘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2014년 봄 사월 첫날, 조금 늦어 보지 못한 만개한 선암매의 자태를 내년에는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저만큼 아래쪽 늘어진 능수 벚을 찾아간다.
작은 연못에 꽃가지를 늘어뜨리고 속인의 마음을 낚는 능수 벚나무를 또 한동안 넋 잃고 바라보다 절집을 돌아 나온다.
선암사. 견문이 짧지만 지금껏 돌아 본 절집에서 이 선암사 경내만큼 멋들어진 나무들이 많은 곳을 본적이 없다.
한국의 3대 절집이 승보(僧寶) 송광사, 법보(法寶) 해인사, 불보(佛寶) 통도사라고 하지만, 이 선암사를 화보(花寶)라 부르고 싶다.
또 선암사의 멋은 신선이 될 수 있는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다.
숙종 39년(1713)년에 축조된 보물 제 400호 승선교는 무지개다리다. 아마도 이보다 더 아름답고 큰 무지개다리가 국내에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 그대로 신선이 오르는 다리다. 이 다리를 지나면 강선루가 있다. 신선이 내려온다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신선이 내려와 이 누(樓)에서 놀다가 승선교에서 하늘로 다시 오르는 것이다.
신선이 또 뭐 별건가? 누구나 이곳 선암사에 오면 신선이 될 수 있다. 다만 승선교에서 하늘로 오르지 말고 자기 집을 잘 찾아 가면 된다.
6백년 풍파를 안으로 삼켜 정제된 향기로 다시 세상의 풍파를 다스리는 선암매와 늘어진 능수 벚에 한동안 취하니 진정 신선이 부럽지 않다.
이제 올 봄은 갔으니, 내년 봄에 다시 건강하게 선암사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기원으로 덧없이 가는 봄 고이 보내 드리련다.
<선암사 대웅전 현판 글씨를 김조순이 썼다. 본관 안동 김씨, 김조순(金祖淳). 1765년에 태어났고, 세도정치의 문을 연 장본인이다. 그렇게 19세기 조선의 권력을 장악하여 왕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휘두르며 가문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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