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행
삼라만상(森羅萬象) 펼쳐진 나주(羅州) 풍경은 하늘이 내린 비단이려니
노령지맥 줄기가 여러 봉우리를 만들며 남서쪽으로 내려오다가 한 줄기가 담양 가마골에서 흘러온 황룡강에서 멈추니 어등산이고, 한 줄기는 크게 봉우리를 세웠으니 무등산이다.
이제 남도는 들녘이니, 영산강 따라 너른 들 나주평야다. 해질녘 비단으로 만든 산 금성산(錦城山 450.3m)에서 바라보면 나주평야가 미풍에 출렁이는 바다다.
마을에 불이 켜지면 마치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 들판에 별이 가득하고 은하수가 흐른다.
<나주 금성산 전망대 왼쪽>>
신령스런 영암고을을 들리기 전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있고’의 고산(高山)이 지명인가, 그냥 안개가 걸칠만한 높은 산인가? 가 궁금했다. 일테면 고유명사인가, 보통명사인가였다.
그래서 호남과 제주에서 고산이란 지명을 찾아보니, 제주특별자치도 현경면 고산리가 있었고, 전북 완주군 고산면이 있었다.
먼저 완주 고산면에 대해 알아보니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아침 안개의 고을로는 제주보다도 더 호남가 가사에 가까운 고을로 여겨졌다.
하지만, 영암의 아침 안개와 연관 짓기에 조금 무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냥 고산이 높은 산을 지칭하는 거라고 잠정 마무리 지었다.
한반도에서 산허리를 두른 아침 안개가 아름답지 않은 고을이 어디 있을까?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인 완주군 고산면이나, 해무(海霧)가 감싼 제주 고산의 아침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호남가에 나오는 고산의 아침 안개는 여느 시골 마을의 아침 안개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특별히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졌을 거라는 좁은 생각을 했다.
<고창 성송면의 들녘에서 바라본 왼쪽은 구황산 오른쪽은 고산, 두 산 가운데가 장성과 고창의 넘이길>
그러다 고창을 둘러보며 성송면에 들렸을 때다. 성송 고을의 너른 들녘을 감싸듯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두 산이 보였다.
“저기 들판 너머로 멋있는 능선을 이어가는 산 이름이 뭐요?”
“왼쪽으로 보이는 산은 아홉 왕이 나올 명당이 있다는 구황산(九皇山, 500m)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은 고산(高山, 526.7m)이라오.”
산 이름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저 산 이름이 고산이란 거요?”
“그렇다니까요. 아침 안개가 신비스러운 산이지요.”
아침 안개라는 말에 나그네는 깜빡 기절할 뻔 했다.
“아침 안개가 저 고산을 두른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그 땐 한 폭의 그림이지요.”
그리해서 나그네는 고산에 대해 전해오는 얘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정읍 내장산이 입암산을 지나 고창 방장산, 문수산으로 왔다가 구황산을 만난 뒤 고산에 이른다 했다.
고산의 봉우리 이름으로 장군봉이 있고 이웃하여 삼태봉(三台峰), 그리고 들녘에는 음식을 차려놓는 네모난 큰 상처럼 평평한 교자봉(交子峰)이 있다 한다. 삼태는 삼정승을 가리키는 말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한다. 그 삼정승이 임금이 내린 하사주와 함께 교자봉에 한 상 걸게 차려놓고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오는 고산의 장군을 맞이한다는 민담이 있다는 것이다.
서해안 지역은 농산물이며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따라서 해적 등 왜적의 노략질이 극심한 곳이었다. 그 도적을 물리칠 영웅을 기다리는 민중들의 바람이 그런 민담을 만들어냈으리라 여겨진다.
너른 평야를 감싸고 있는 우뚝 솟은 고산은 훌륭하고 인자한 장군으로, 그 장군봉을 바라보는 순탄한 산을 삼태봉으로, 너른 들판을 교자상으로 생각해 세상의 평화를 바랐으리라. 또 어쩌면 백성들의 안위는 아랑곳없이 수탈과 학정에 여념이 없는 탐관오리와 무능하고 치졸한 임금에게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민초들의 바람을 전달하는 것이었으리라.
실제로 구황산 서쪽 성송면 하고리 삼태마을 뒷산 삼태봉은 신라 무송현 때 3정승인 윤(尹), 유(庾), 하(河)씨 성을 가진 삼정승(三政丞)이 태어난 명당이라 한다. 또 구황산 명당에 묘를 쓰면 9대에 걸쳐 임금이 나온다는 풍수지리로 지금도 지관들이 들락거린다 한다.
고산에는 후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산산성(약 4.1km)이 있는데 이곳에도 전설이 어려 있다.
고창에서 바라봤을 때 앞쪽의 산인 고산(526.7m)은 동생산이요, 뒤쪽의 산인 고성산(高城山 546.3m)은 형님산이다.
어느 날 두 형제가 각각의 산에 성(城)을 쌓기로 했다. 늦게 성을 쌓으면 가차없이 죽이기로 무서운 약속을 했다. 이윽고 먼저 축성을 마친 형이 약속한 장소에 늦게 도착한 동생을 죽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생은 견고한 성과 함께 명천수(明天水)라는 우물까지 파 놓은 것 아닌가? 그러느라 늦었던 것이다.
자기보다 동생이 먼저 성을 쌓았다는 걸 안 형은 동생의 무덤이 있는 가랫재에서 자결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성이 지금 고산에 남아있는 산성이다. 이 산성이 꼭 있어야만 했던 필요성, 또 성을 쌓으면서 민초들의 고통과 인명 피해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슬픈 이야기다. 아울러 매사에 신중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런 민담까지 품은 고산(高山526.7m)은 전북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 산수리와 전남 장성군과 영광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1000m급에 뒤지지 않은 시야와 풍광을 자랑한다.
예전 성송이 무장현에 속했을 때 무장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 해서 고산이라 했다. 고산의 북서쪽 물줄기는 조산저수지, 대산천, 인천강이 되어 줄포만에 닿아 서해가 되고, 남쪽 물줄기는 평림천을 통해 장성, 나주를 지나 영산강에 합류 목포 앞바다까지 흘러간다.
고산은 그렇게 고창 들녘을 품에 안고 인천강과 영산강에 물을 나누어 흘러 보내는 분수령이다. 그 땅에 기대어 사는 민초들에게 신령스런 산이요, 거들먹거리는 벼슬아치보다 무능한 임금보다 더 추앙을 받는 산이었다.
<고산 산성과 정상, 길처럼 보이는 것이 토산성 유적이다>
고창 고을을 둘러보고 나주로 가는 길에 그 고산에 오른다.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있다.’라고 노래한 신령스런 월출산을 두른 안개와 이곳 고산의 아침 안개는 형제다.
고산은 장성군, 고창군, 영광군의 3개 군의 접경에 있는 산으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주변이 평야인 관계로 시야가 넓고 풍광이 수려하다. 아침 안개가 고산 허리를 두르면 산봉우리는 둥둥 떠서 신선이 사는 천상이 된다.
고산을 올라 이곳이 과거에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를 살펴보려면 고창군 대산면 석현마을이 등산로 입구다. 1봉인 각시봉, 2봉인 깃대봉, 3봉인 띠구리봉, 4봉인 촛대봉을 지나면 고산 정상이다. 내려올 때는 촛대봉, 가래재, 상금마을 쪽으로 내려와 고인돌을 둘러보면 된다. 거리가 7.1㎞이며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또 고산 정상에서 장군봉, 옥녀봉, 성송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오기도 하는데 이곳은 7.6㎞이며 4시간여 걸린다.
<고산 봉우리>
그러나 되도록 고산 아랫마을 상금리로 내려와 크고 작은 남방식 돌무덤을 둘러보았으면 한다. 약3,000년 전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로 무려 200여기가 널려있다. 그렇게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들을 뵙고 자손만대의 영화를 빌어보자. 이웃 구황산이 9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명당이니 한 자리쯤 점지해 달라고 기원을 해보시라.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고산 아래 상금리 고인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라북도 완주군의 고산면이 맘에 걸린다. 조용하면서도 빼어난 고을이 바로 고산면이라는 거다. 인심도 풍광도, 그리고 아기자기한 산봉우리들이 둘러싼 분지형 고을의 아침 안개 역시 환상적이라 한다.
그래서 얼마 전 한겨례 신문(2012.10.04)에 실린 고산면농협 국영석 조합장과 농협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다.
국 조합장의 인터뷰 기사 일부다.
‘집이 어려워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도 제 사고가 열려 있잖아요. 17살 때 고산성당에 계시던 문규현 신부님을 만나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눈을 뜨게 됐어요.’
문규현 신부님이면 지금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 해적들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동생이시다. 평양에 다녀와 감옥생활을 하신 분 아니신가? 기사를 읽으며 더 반가웠다.
2005년 국 조합장이 취임하면서 관리 대상이던 고산농협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했다. 당시 142억 원에 불과하던 경제사업 규모가 지난해엔 513억 원으로 3배 이상 불어나고, 직원도 36명에서 75명으로 늘어났다. 친환경농업단지는 154㏊에서 500㏊로 3배 이상 확대됐다. 전국의 면단위 농협으로는 견줄 상대가 아예 없다고 한다.
‘이제 고산에서는 농협 놈들이라는 소리가 사라졌어요.’
국 조합장은 도시의 농협들과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하면, 전체 농가의 소득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도시 농협이 시골 농협과 협력해 직거래 매장을 여는 겁니다. 몬드라곤(스페인)에서도 250개 기업이 철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잘 새겨야 합니다.’
국 조합장의 협동조합 운동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우리 농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산농촌문화상의 21회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고산농협 국영석 조합장, 한겨레 신문에서 빌려옴>
진짜 왔다고 아자! 아자! 다.
이렇게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우리 농산어촌이 잘 살아야 나라가 튼튼, 민주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말로만 과거를 사과하고, 입으로만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세태에서 이 고산농협은 모범적 사례임이 분명하다. 긴 말이 무삼 필요하랴? 제 몫 챙기기에 눈이 먼 정치인, 골목가게까지 챙기는 악덕 재벌들,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추종자들은 고산농협 국 조합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회초리 맞아가며 배울 일이다. 이뤄질리 없는 뜬 구름 같은 소망이지만 말이다.
<고산 농협 국 조합장에게 배울 인간들 중 일부>
그렇다. 백성이 잘 살아야 좋은 나라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치부를 위해 장물로 얻은 재산을 다시 도둑질로 자식에게 빼돌리는 정치가와 재벌들이 있는 한 그 희망은 요원하다. 그것은 분단된 우리의 현실에서 남과 북에 똑같이 적용되는 잣대다.
동일노동 동일 임금이 적용되고, 능력에 따라 이익이 고루 나눠지는 상생과 소통, 나눔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산농협 국 조합장이 농민들과 함께 하는 그 정신이 이 시대의 표상이 되어 아침 안개처럼 온 세상을 둘렀으면 한다.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를 두를 안개는 바로 그런 안개였구나. 고산 농협이 바로 신령스런 안개가 되어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꿈과 희망이었음을 깨닫고 맘 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환희가 샘솟았다.
아무튼 호남가 기행을 하며 우리 사람이 발붙여 사는 곳이 땅이고 그 땅이 가르치는 이치와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함을 새삼 다시 배운다. 제주의 고산, 전북의 고산, 고창의 고산이 다 같은 고산이고, 또 그 고산이 나누는 아침 안개를 두르면 우리 땅 모두가 고산 아니겠느냐?
<고성산>
<구황산, 일명 돈 아닌 사람 로또산, 아홉 임금이 나올 명당이 있는 산>
<제주 고산리 해안, 빌려온 사진>
그렇게 뜻하지 않게 호남가의 가사에 나오는 고산의 아침 안개의 참 의미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나주 풍경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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