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5.18은 북한 소행?

운당 2011. 5. 17. 09:29

5.18은 북한 소행?

1.

서석구(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 반대 운동을 펼치는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대표)가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저질러 김대중 친북정권을 수립하기로 한 대남공작이었다.’고 주장하며 등재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것은 북한특수부대 600명의 소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 대표는 지난 13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북한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들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이라는 탈북자 단체가 있다.’ ‘이들 특수부대(북한)가 광주사태 때 약 600명이 침투했다.’ ‘그들은 북한 독재가 싫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찾아왔고 폭로 내용도 대단히 구체적이고 신뢰할만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유북한군인연합은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로만 구성된 탈북자 단체다. 그러니 더 신빙성이 있다.’

‘이 사람들 증언에 보면 북한의 광주사태 전투사망자 영웅묘지가 천마산 마루 등 여러 군데 있고 광주사태 영웅으로 어버이수령 훈장을 받은 사람이 62명이나 된다.’

‘이들이 김대중 정권 시절에 넘어와서 귀순동기나 이런 걸 철저히 조사하는 과정에서,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김대중 친북정권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대남공작을 얘기하니까 바로 국정원, 보안대, 검찰, 경찰이 너희들 어떻게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 입 밖에 끄집어 내지 마라면서 보안각서를 쓰게 한 것이다.’

또 ‘자기들 숙소에는 한겨레신문밖에 안주더라.’며

‘그래서 남한에는 한겨레신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논조가 북한 노동신문과 비슷해서 크게 쇼크를 받았다.’고 했다.

이어서 서 대표는 ‘서해바다를 통해 큰 배로 해가지고 작은 배로 다 분산해 조로 나눠 침투해 북한 지령대로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했다.’며 ‘갈 때는 산을 탔는데 낮에는 들킬까봐 잠복하고 야간행군을 했다.’고 했다.

손 교수가 ‘600명이 간첩이 내려왔는데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다면 당시 군 책임자는 상당히 문책을 받아야 하는 상황 아니냐.’고 지적하자,

‘당시 군에서 그것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면서도 ‘미국이나 한국이 월남전에서 패배할 정도로 당시 군사적 장비나 기술능력은 현재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라고 했다.

손 교수가 재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하기 이전에 안보를 걱정하신다면 당시 군인사들이나 신군부 인사들을 먼저 문책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순서 아니냐?’고 하자

‘천안함 테러나 연평도 포격같은 북한의 테러가 계속 자행되고 있으니 북한 대남공작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북한의 조국통일사를 보면 광주사태는 김일성 주체사상에 따라 나아가는 광주시민들의 영웅적인 투쟁이라고 얘기한다.’며

‘결국은 북한의 간행물들은 유신독재 철폐, 전두환 군사 파쇼당 타도, 인간백정 우두머리 미국 제국주의 타도, 이것이 5.18 투쟁이라고 이렇게 선전 날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하여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보면 ‘미국이 5.18 학살의 주범이고 엄청난 유언비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다, 황석영, 윤이상이 89년에 월북해 김일성, 김정일 지령을 받아 만든 영화인데 이와 같은 북한의 간행물들과 그들의 주장과 논조가 비슷한 5.18 관련기록을 문화기록유산에 한다는 것은 사실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역설했다.

다시 손 교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 문제로 사형선고까지 받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년형을 받았는데 사법당국에서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이냐’고 묻자

서 대표는 ‘5.18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김영삼 검찰이 수많은 참고인들을 불러 조사해 무혐의 결정을 했다’며 ‘그런데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에서 확정되고 김영삼 검찰 스스로도 무혐의 결정한 것을 5.18특별법을 만들어 가지고 결국은 뒤집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서 ‘5.18특별법이 위헌이냐 합헌이냐 두고 다수의 헌법재판관이 위헌이라고 했는데 위헌에 필요한 정족수가 2/3이기 때문에 그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부득이 합헌이 결정됐다’며 ‘정족수 때문에 그렇지 미국의 대법원은 다수결로 정하기 때문에 만약에 미국의 다수결 논리로 따진다면 이건 위헌이 돼야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미국 레이건 정부가 김대중을 구명해줬는데 5.18 단체들이 끝까지 미국이 5.18 학살의 주범이라고 하는 것도 넌센스’라며 ‘현재 5.18 단체들은 잘못된 정보에 의해가지고 결국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다시 손 교수가 ‘이미 사법적 판단이 난 문제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다’며 ‘등재위원장인 김영진 의원실에 따르면 올 초에 육군본부라든가 정부기록보존소라든가, 국회 사무처, 법원행정처, 주미대사관에서도 기록물 등재동의서를 모두 받았다고 하더라. 그러면 (서 대표 주장은) 지금 이런 기관들에서 결국 잘못 알고 있다(는 것)’며, ‘이른바 북한의 대남공작 때문에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는 불행한 일이라고 하는데 말씀하신 대로라면 등재 추진이라든가 아니면 여기에 동의한 다른 국가기관들이 대남공작에 넘어가고 있다는 얘기’라고 하자,

서 대표는 ‘결과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답했고

손 교수는 “그 말씀에 대해서는 나중에 혹시 또 책임을 지셔야 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렇게 숨이 콱콱 막히는 5,18의 답답한 동문서답이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현실인 셈 아닐까?

 

2.

이어서 5.18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내보교란작전을 수행했다는 탈북자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의 증언이다.

문 : 5.18광주항쟁 당시 북한특수전부대원들이 몇 명이나 투입됐는지 아는가?

답 :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600명 정도 됐을 것이다. 서해안 남포에서 ‘뜨락선’이라는 고깃배로 원양어선을 타고 내려왔다. 황해남도 신천에 있는 복수여단이라고 있다. 이 여단은 상당히 유명한 부대다. 이 부대는 인민무력부 소속이 아니다. 별도의 특수 여단인데 정말 고강도 훈련만 받는 부대이다. 이 부대에서 1개 대대가 차출되어 서해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 특전사부대들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차출한 300명 정도는 별개로 함경남도 신포 동해안으로 마양도라는 잠수함기지에서 내려왔다.

문 : 동해와 서해로 양쪽으로 내려왔다는 말인가?

답 : 동해 쪽으로 내려온 특수부대원들은 하루 만에 내려온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엔 서해 남포에서 잠입한 부대원들이 좀 더 빨리 내려왔을 것이다.

문 : 5.18광주항쟁 때 투입되었다가 살아 돌아간 북한군은 몇 명인지 알고 있나?

답 : 그것은 일반적으로 집계하지는 못한다. 우리 대대(임천용 대표가 복무했던 특수부대)에서 총 7명 내려왔다고 들었다. 4명 죽고 3명이 올라갔다. 4명이 다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함장관이가 포함돼 있다. 북한에서 죽었다는 사람은 함장관이 딱 하나 나왔는데 나머지 3명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문 : 살아 돌아간 특수부대원들에게는 어떤 대우가 주어졌는가?

답 :공화국의 영웅 대우 받는다. 북한에서 공화군 영웅을 발표하는 절차가 있다. 남조선에 내려와서 싸우다 죽었거나 돌아가 영웅이 된 사람들은 주로 아침 뉴스로 많이 발표한다. 방송으로 발표하는데 공화국 영웅 명칭은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발표한다.

북한 내에서 남을 위해서 수류탄을 끌어안고 죽거나 남을 위해서 총에 맞아 죽으면 방송에서 엄청 떠든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죽은 사람들은 공식적 발표를 안 한다. 그냥 문서상으로 끝낸다. 남조선에 나가서 공화국 영웅 됐다고(방송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공화국 영웅이 된)의 집이나 문서상으로 공화국 영웅으로 나온다.

(광주 항쟁 당시) 내려왔다가 정확히 몇 명 살아 돌아갔는지에 대한 집계는 다 틀리다. 복수여단 부대원들은 3분의 2도 되나마나 하게 돌아왔다. 타 특수부대에서 모집된 쪽은 절반이나 살아 돌아갔을 정도다. 최종적인 집계는 있을 것이다. 대남사업을 관리했던 이하일은 파악했을 것이다.

문 :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는 어떤 경로로 돌아갔나?

답 : 돌아갈 때는 거의 3차에 걸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큰 무리는 먼저 서해안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공해상에 이하일이가 떠있었다. 배에서 현장지휘 했으니까. 60-70명 정도 강원도 중부전선을 타고 넘었다.

이 사실은 우리 부대 쪽에서는 인지를 못했는데 중부전선을 넘어 갔다는 것은 타 부대에서 북한군 1군단에 있던 부대원들이 자기네 부대원들의 말을 인용해서 나온 것이다. 중부전선을 넘어간 특수부대원들은 1차로 배로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로 광주봉기가 끝난 뒤 육로로 빠져나간 것이 가능했다.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3.

평소에 존경하는 분이 위 내용의 글을 메일로 보내주셨다. 마침 신문을 펼쳐드니(2011년 5월 17일) 역시 5.18을 북한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행사(2011년 1월 6일 신년교례회)에 이재오, 원희룡 등이 참석했다고 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뭣 때문인지 알 필요는 없지만, 5.18을 다시 맞으며 착잡한 심정으로 글을 옮겨 싣는다.

 

4.

 

이 젊은이들을 죽인 게 북한군 소행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