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 3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 소나무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 소나무 해남 땅끝항과 남성항이나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에 오르면 다도해의 푸른 보석인 노화, 소안, 보길도 등 세 섬에 안겨볼 수 있다. 물론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이 세 섬과 얼싸덜싸 함께하는 뭍 섬을 팔 벌려 안아볼 수도 있다. 보길도는 그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 같아서 어원인 ‘보고래 섬’에서 얻었다. 윤선도(1587~1671)의 원림이 있는 마을 이름 부용동은 반쯤 핀 연꽃과도 같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곳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이 푸른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연꽃송이 꽃잎인 것이다. 어찌 보면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며 정치적 부침을 거듭한 윤선도 역시 물결치는 바다의 연꽃송이 같은 삶을 살았다. 인조 14년(1636) 12월이다. 병자호란에 인조는 ..

초록비 녹우당의 초록빛 은행나무

초록비 녹우당의 초록빛 은행나무 초록비가 내리고 초록으로 물든 녹우당(綠雨堂)에서는 스쳐 가는 바람도 초록색이다. 또 이곳 해남 윤씨 고택의 유적·유물을 통해 한 시대의 일이 쌓여 역사가 됨을 알게 된다. 여기 연동마을의 녹우당은 1501년 윤선도의 4대 조부 윤효정(1476∼1543)이 도강 김씨와 탐진 최씨들이 살던 곳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집을 짓고 살면서 2차례의 화재가 있었다. 어느 날 윤효정의 꿈에 하얀 옷의 노인이 ‘지금의 자리는 산강수약(山强水弱)하니 자리를 옮기고 현재의 터는 못을 만들어 흰 연꽃을 심으라’고 했다. 이에 집을 옮기고 연못을 만들자 화재가 없었으며, 백련동(白蓮洞)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백련지는 그렇게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 이치로 만들어졌는데, 네..

진도 굴포리 윤선도 소나무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는 진도의 남서쪽이다. 여기에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가 있으니, 원둑이라고 하는 굴포리 간척지의 윤선도 제방이다. 윤선도가 60세 때인 1646년이다. 이 무렵 인조 때 전라도관찰사,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가 진도에 유배되었다. 윤선도 역시 이 무렵 진도에서 ‘화이정승 삼수(和李政丞 三首)’라는 시에 ‘이경여(李敬輿)가 진도에 있는 병술년(1646)’이라 썼다. 이를 근거로 여기 간척지 축조 시기를 윤선도가 완도 보길도와 진도를 오가던 1640년부터 1660년 사이로 추정한다. 또 1646년 무렵 윤선도는 이곳 굴포리 처자 경주 설씨와 혼인했고, 1남 2녀를 낳았다. 그렇게 윤선도는 간척사업을 통해 완도군 노화읍 석중리에 130여 정보,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200여 정보의 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