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수루 조선 수군 느티나무
통영항에서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타면 동쪽은 거제도이고, 서쪽은 통영의 안산인 미륵산이다. 이 뱃길의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마저 잊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기에 항구와 바다와 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려면 이 통영의 뱃길에 다녀온 뒤 말하여도 늦지 않다.
배의 갑판으로 갑자기 갈매기 몇 마리가 날아온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의 누나와 남동생이다. 아침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파도에서 그네를 타던 갈매기를 그 두 아이의 새우깡이 부른 것이다. 이따금 환한 웃음소리가 터지는 건 던져주는 새우깡을 갈매기들이 덥석 챙길 때이다. 그 아이들의 깔깔 웃음소리와 갈매기의 끼룩 소리가 아름다운 화폭을 더 아름답게 색칠한다.
눈앞의 통영 도남항 등대가 연필 모양이다. 이 연필 등대가 ‘꽃’의 시인 김춘수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 구절을 파도 위에 쓴다. 그러더니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뭍같이 까닥 않는데’로 이어진다. 그렇게 이 연필등대는 김춘수, 유치환, 박경리 등 이곳 출신이거나 활동한 작가들을 기리기도 한다.
한반도의 뭍 섬에 신이 있다면 그 신들의 으뜸 신이 사는 섬은 한산도이다. 하늘의 북극성처럼 한산도는 한반도 뭍섬의 지침이 되는 위치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이다. 조선의 첫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첫 통제영을 뭍섬의 지침이 되는 이 한산도에 열었다.
그리고 1597년 이순신이 없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조선 수군을 말아먹을 때까지 3년 8개월여 수군의 근거지였다. 당시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은 판옥선 160여 척, 거북선 3척을 내동댕이치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다 죽임을 당했다. 이 해전은 임진정유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이며 처절히 궤멸된 치욕이다. 그리고 원균은 다시는 없어야 할 어리석은 지도자의 본보기이다. 그러기에 이순신의 그 날은 더욱 빛나고 더하여 성스럽다.
왜란 초기인 1592년 7월 8일이다. 6척의 조선 판옥선이 60여 척의 왜 함대를 거제도와 통영의 좁은 물목인 견내량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한산 앞바다에서 학익진으로 왜선 47척을 불사르고 13척을 빼앗았다. 이때 왜도 학익진을 알았으나 파도치는 바다에서는 불가능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순신은 학의 날개로 왜선을 쓸어버렸다. 왜에게는 그저 꿈결이었으나, 그 꿈결을 이순신이 현실로 만들었으니 생각만으로도 두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통쾌한 한산대첩이다.
여기 한산도의 지명 ‘문어포’는 그 한산대첩 때 섬으로 도망친 왜군이 길을 물은 곳이다. 마을 사람이 엉터리로 가르쳐준 데로 갔으니, 바로 ‘속은섬’이다. 그 왜군이 산을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파서 ‘개미목’이고, 두억리는 죽은 왜병의 머리가 억 두나 되어서이다. 이들 시신을 매장하여 ‘매왜치’, 승전의 고동을 불어 ‘고동산’, 이순신 장군이 비로소 갑옷을 벗고 쉴 수 있어서 ‘해갑도’이다. 이렇듯 4백 년을 넘어 그날의 통쾌함이 한산도에 지명으로 남아있다.
통영을 떠난 배가 그 한산도의 관함항에 이어 제승당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이순신과 삼도수군통제영의 유적지인 제승당까지는 찰싹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걸어서 금방이다. 그리고 이순신이 ‘한산셤 달 발근 밤의 수루에 혼자 안자/ 큰 칼 녀픠 차고 기픈 시름 하는 적의/ 어듸셔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긋나니’를 읊은,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누각 ‘수루’에 앉아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여기 수루를 지키는 느티나무는 이순신의 나무이고, 조선 수군의 나무이다. 한겨울이어서 느티나무는 모두 잎을 떨구었지만, 그 펼치고 있는 나뭇가지의 당당함은 조선 수군의 우렁찬 함성이 잎 대신 매달려 있음이다. 이 수루에 앉아 그날의 한산대첩지 바다를 바라보니, 한반도 뭍섬의 으뜸 신이 계시는 황궁이 바로 여기 제승당이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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