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과 공업용 미싱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가 섬의 신자를 가르치기 위해 나섰다. 그렇게 기도와 기도문을 가르치고 하루 일을 마칠 즈음 세 사람의 은자가 찾아 왔다. 나이도 많고 문맹인 그들은 예배의식도 모르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기도한다고 했다. 대주교는 크게 나무라며 예배의식과 기도문을 가르쳤지만 날이 저물도록 배우지 못한다. 대주교는 이런 무식한 자들이 어찌 덕망 있는 은자냐고 혀를 차며 배를 타고 떠난다. 그때 바다가 환해지며 세 은자가 바다를 달려온다. 기도문을 잊었으니 다시 가르쳐달라고 간청한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민화인 ‘세 은자’이다.
너희에게 죄는 얼마든지 털 수 있는 몸의 먼지이고, 우린 법 조항에 있건 없건 어떤 짓을 해도 무죄라는 자들의 세상에서 톨스토이의 민화 ‘세 은자’가 가슴에 크게 와닿는다. 그래서 입만 열면 공정과 법치, 자유로 위장하는 통치자보다, 법은 몰라도 이웃과 더불어 호혜와 베풂으로 사는 민초들이 우리 사회를 지키고 이끄는 진정한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법을 잘 알기에 잘 피하는 자들 때문에 법꾸라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그리고 그 법꾸라지들이 또 신조어를 만들어 내니, 채 상병 사건 피의자인 전 국방부 장관 이종섭을 호주 대사로 도피시켜 도주대사, 런종섭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 장관 청문회에서 김행 후보자가 사라져버려 생긴 ‘줄행랑’이 도주와 런으로 진화한 것이다.
또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현직 진보당 국회의원 강성희가 대통령 윤석열의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 끌려나갔다. 또 한국과학기술원 학위수여식에서 전산학부 석사과정 졸업생 신민기가 축사하는 대통령 윤석열에게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을 복원하십시오. R&D 예산 복구하라! 부자 감세 철회하라!’라고 외쳤다. 그러다 졸업가운을 입고 잠복한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히고 팔다리가 들려 끌려나가 대전유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대통령 주재의 의료개혁 관련 민생 토론회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토론회장의 입장을 거부당하고, 이를 항의하다 역시 입이 틀어막힌 채 분당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로써 입틀막과 사지부양이란 신조어가 또 생겼다.
15~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신의 문학관이 논산에 있다. 얼마 전 논산 여행에서 누가 김홍신 문학관이 저기 있다며 들려보자고 했다. 이때 문득 김홍신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말한 공업용 미싱이 떠올랐다. 그래서 ‘안 돼! 그자는 공업용 미싱 입틀막의 원조다. 그런 무도한 자의 문학관에는 절대 들릴 수 없다.’라고 반대했다.
지난 코로나 시절 안철수 씨가 과학방역이라는 씁쓰레한 신조어로 한숨을 쉬게 했는데, 또 이 입틀막 사지부양 경호를 정부는 과학경호라고 둘러댄다.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히니 ‘아니다, 그건 가학경호다’라는 백성들의 한숨 섞인 신조어가 더 늘었다.
사실 입틀막, 사지부양을 과학경호로 둘러대는 것보다 공업용 미싱으로 입주둥이를 박아버린다는 말이 더 잔인하고 끔찍하다. 하지만 공업용 미싱은 언어폭력이지만, 입틀막과 사지부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신체폭력이다. 그래서 입틀막과 사지부양이 훨씬 더 무섭다.
아무튼 법꾸라지에 줄행랑, 도주대사 런종섭, 과학방역 헛소리, 입틀막, 사지부양 과학경호 등 신조어가 어지럽다. 이뿐인가? 윤통격노, 자위나베, 양평굴곡, 명품디올, 실종건희, 의료사망, 회칼상무, 대파망조 등 끔찍하고 역겨운 신조어가 우리말과 정서까지 망치니 역사의 죄인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법도 모르고 힘도 없는 너희는 그저 딱 입틀막이다. 까딱하면 사지부양에 저세상이다’라는 그자들의 협박과 공갈, 공포정치에 톨스토이 민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교훈이란 게 참 슬프다. 언제쯤 예배도 기도문도 모르는 민초들이 존경하는, 아니 존경까진 아니라도 혀를 차지 않을 수준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늘을 우러르니 고개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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