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봄꿈

운당 2024. 1. 18. 11:40

봄꿈

 

봄꿈은 개꿈이라는 말이 있다. 왜 하필 봄꿈을 개꿈이라고 할까?

4차 산업혁명시대지만, 6, 7십 년 전만해도 우리 사회는 ‘농자천하지대본’의 농본사회였다.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에 봄을 맞아 낮과 밤이 같은 춘분을 전후하여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보릿고개라 부르는 춘궁기였다. 가을 양식은 바닥이 나고 햇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 고통받던 시기였다. 관청은 구휼미를 풀었지만 남의 전답에 더부살이하는 농민들은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어 걸인, 유랑민이 되기도 했다. 칡뿌리나 띠뿌리, 생솔가지 껍질을 벗겨 먹고, 산천의 온갖 나물로 연명했다.

그렇게 온 산천에 만초가 생동했지만, 봄은 풀 죽은 시기였다. 배고픈 아이가 깜빡 잠이 들어 온갖 꿈을 꾸면 어른들은 무조건 시큰둥하게 ‘개꿈이다!’며 핀잔부터 했다.

어떤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에게 학부모가 찾아와 상담을 청했다. 간밤에 딸아이가 잠자리에서 손을 휘저으며 ‘안 돼. 오지 마’하고 잠꼬대를 해서 놀랐다는 것이다.

담임은 ‘갓 입학하여 집단생활을 하고, 이런저런 규칙과 과제까지 해결해야 하니, 심리적 압박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며 앞으로 더 지켜보자고 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친구와 다투었던 날 꿈을 꾸며 헛소리에 손을 휘저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주던 부모님의 걱정스런 모습이 오랜 세월에도 어제 일만 같다.

아무튼 보통 꿈은 회상몽(回想夢)이라고 한다. 수면 상태가 되면 뇌수의 활동 상태가 달라지는데, 이때 일어나는 표상이 ‘꿈의식’이며, 깨어나 회상이 ‘꿈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꿈은 현실 체험들의 융합, 치환(置換), 상징, 형상화 등이고 현실계와 관련을 가지면서도 비논리적, 비합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꿈에 관한 말들 역시 다른 말들과 복합되어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꿈결’이란 꿈처럼 허무하게 지나간 시간을 말한다. ‘꿈자리’란 꿈에 나타난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징조까지를 포함한다. 또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꿈자리가 사납다’ 등은 좋지 않은 꿈을 꾸었을 때 주로 쓴다. 역시 ‘꿈땜’도 궂은일이건 좋은 일이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쓴다.

그리고 ‘용꿈’과 ‘개꿈’이 있다. 뜻밖의 행운이라 여겨지면 ‘용꿈을 꾸었다’하고, 개꿈은 현실성도 바랄 수도 없는 헛됨을 가리킨다.

꿈의 한자 ‘몽(夢)’이 붙은 말도 다양하다. 꿈의 징조는 몽조(夢兆), 꿈속을 몽중(夢中), 비현실적 환상은 몽환(夢幻)이다. 자나 깨나 잊지 못함은 ‘몽매(夢寐)’이다. 잠을 자면서 돌아다니면 ‘몽유병(夢遊病)’, 꿈에 사정(射精)하는 건 ‘몽정(夢精), 몽설(夢泄), 몽색(夢色)’이다. 한때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一場春夢),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단지몽(邯鄲之夢)’이다. 헛된 망상은 ‘백일몽(白日夢)’, 좋은 꿈은 ‘화서지몽(華胥之夢)’이다.

속담도 많다. 손해를 보면 ‘꿈꾼 셈만 치자’고 위로하고, 어떤 일을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여 ‘꿈보다 해몽이다’고 한다. 또 지나친 기대에 ‘떡 줄 사람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경계한다. 아울러 ‘그림의 떡’, ‘꿈에 떡 맛보듯’, ‘꿈에 본 돈이다’, ‘꿈에 서방 맞은 격’ 등도 충분히 일을 해결하지 못했거나, 희망이 사라졌을 때 아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처럼 꿈과 관련된 말들을 살펴보면 꿈의 의미는 좋은 것보다, 비현실적이고 일시적이며 허무함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그래서 봄꿈은 개꿈이라는 말로 이룰 수 없는 아쉬움이나, 희망의 허망함을 대체하고, 위로하고 위로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고 너는 안 된다고 하는 덮어씌우기 ‘물귀신 꿈’이 횡행하는 세태이다.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이 봄에 우리 모두 함께 희망하고, 함께 행복하고, 함께 이룰 수 있는 꿈이 많았으면 한다.

 

* 올 봄 선거 제발 좀 잘해서 입만 열면 허언을 일삼는 검찰 독재를 청산합시다. 군부독재와 싸운 그 의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답답합니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틀막과 공업용 미싱  (0) 2024.03.25
뉴욕타임스 1면  (0) 2024.02.21
독도에서 연평도까지  (0) 2024.01.08
사자성어 ‘자승자살’  (0) 2023.12.18
국빈, 극빈  (0) 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