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 극빈
11월 1일은 가톨릭의 만성절(萬聖節)이니 말 그대로 모든 성인, 그중에서도 특히 축일이 따로 없는 성인들을 기리는 날이다. 영어로는 ‘All Saints′ Day, All Hallows′ Day’이니 할로윈(Halloween)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리고 할로윈은 이 만성절의 전야제로 만성제(萬聖祭)라고도 한다.
따라서 할로윈은 10월 31일이다. 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사람들이 귀신이나 신비주의와 연관시킨 것이 할로윈의 기원이나 요즈음에는 종교 성격의 기념보다는 상업과 신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이 할로윈의 기원은 여럿이나 그중 고대 켈트족이 죽음과 유령을 찬양하며 벌인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켈트인들은 태음력 그러니까 1년이 28일씩 13달로 이루어진 달력을 사용했고 한 해를 4개의 기념일로 구분했다. 이 4개의 기념일 중 한 해의 마지막이자 새해의 시작을 앞둔 10월 31일을 가장 큰 축일로 여겼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먼 나라의 축일이 21세기 들어 서울 이태원동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이 공휴일이 아니므로 굳이 10월 31일을 고집하지 않고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택했고 지난해 2022년은 10월 29일이 주말이었다.
이날 사람들은 귀신, 마녀, 악마, 유령, 괴물 등의 복장이나 피에로, 천사, 동물, 온갖 만화나 게임의 여러 캐릭터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변장이란 변장은 모두 즐긴다. 이 코스튬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함께 어울린다.
우리나라에도 할로윈과 유사한 나례(儺禮)가 있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진 섣달그믐에 탈을 쓰고 귀신을 쫓는 의식의 풍습이었다. 세종대왕은 이 의식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좋지 않게 여겼지만, 가끔은 밤늦게까지 봤다고 한다.
또 정월 대보름 다음날인 1월 16일이 ‘귀신날’이라며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무튼, 요즈음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줄고, 다음 세대에는 이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세태에서 이 할로윈을 서양 풍습이라고만 기피할 게 아닐 듯싶다. 우리 나례도 있었으니, 이런 풍습을 축제로 승화시켜 온 국민이 조상을 추모하고 축제로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생각하면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솟는다. 진상규명이나 책임지는 자가 한 명도 없으니, 비명에 간 분들은 물론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까? 그 생각에 이르면 숨이 콱 막힌다.
그나마 이번 1주기 추모 행사는 지난 10월 29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애초 야당과 공동주최가 논의되었으나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는 “순수한 추모 행사로 개최하겠다며 ‘온전한 기억과 추모’,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을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께 호소하는 자리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대통령을 정중하게 초청한다. 유가족들 옆자리를 비워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은 엉뚱하게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추도 예배를 올리는 것으로 생색을 냈다. 우리나라에 수해가 났을 때 6·25의 침략 공산국이던 우크라이나에 달려갔던 것과 비교하면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더욱 참사 책임 부서인 행안부장관 이상민은 추모대회 전날 이태원을 찾아 ‘한 번 포가 떨어진 곳에는 다시 포가 안 떨어진다’고 했다. 이태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참사가 일어날 것이란 예고인지 어떤지 이해하기 어려운 망언이다.
점 하나 차이인 님과 남처럼 국빈과 극빈도 점 하나 차이다. 국빈방문을 했다고 자랑하지만, 내 나라와 국민을 챙기지 않으면 그저 극빈일 뿐이다. 제아무리 수십, 수백억 양해각서에 낙타고기 접대, 말 앞에서 미소로 사진 찍어 으스대도 빈껍데기 흉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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