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그러니까 1월 27일 윤석열 국힘 대선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실은 광화문 정부서울 청사에 구축될 것입니다. 기존 청와대 부지는 국민에게 돌려드릴 것입니다.’라며 ‘영빈관’만 남길 거라고 했다.
청와대 영빈관 터는 조선시대 경농재(慶農齋)가 있던 자리다. 당시 임금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그해의 풍흉을 점쳤던 곳이다.
이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 때에 영빈관을 지었다. 청와대를 찾는 국빈의 만찬과 연회를 위함이었다.
2000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종 황제의 팔도배미 농경을 되살려 곡식 대신 경상, 전라, 충청, 강원도의 소나무를 가져다 심었다. 물론 함경, 평안도 자리는 비워뒀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남편을 제쳐놓고 자신을 ‘후보’라고 자칭한 김건희씨가 이 영빈관을 옮기겠다고 했다. 기자가 ‘아는 도사가 총장님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영빈관부터 옮겨야 된다고 하더라’고 얘기하자, 김씨는 ‘응, 옮길 거야’라고 단도직입으로 즉답했다.
참 우습다. 아니 황당하다. 선거가 남았고, 결과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선후보 부인이 국가 시설을 제 맘대로 옮기겠다고 하니 말이다. 문득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하다. 김칫국을 마신건지, 엿장수 맘대로인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욱 도사의 말에 따른거라 하니, 과연 이 나라가 주술 무속 국가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다른 나라의 비웃음은 그만 두고라도, 이 나라의 희망인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이 청와대 집무실의 이전 문제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1번지’ 시대를 열겠다고했다가 영빈관과 경호 등의 문제로 포기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고, 터가 나쁘다는 도사의 주술로 옮기겠다고 하는 건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지르고 홧불로 태우는 몰염치와 광신적인 사고의 소산 아닌가 싶다.
대통령 집무실이건 영빈관이건 옮기려면 합리적 이유가 먼저이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말로가 안 좋았다지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이 말로가 안 좋았던 건 자업자득이었지, 영빈관의 지형에 따른 주술의 흉점이라고 할 수 없다.
윤석열 대선 후보가 디지털 풀렛폼이니, 아이티산업이니 말은 그럴 듯한데, 그럼 그것도 도사의 주술과 점에 의존해서 말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마디로 도사의 주술이나 무속적인 점괘, 그리고 역대 대통령의 비참한 말로를 이유로 영빈관과 청와대 집무실을 옮긴다는 건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근거가 아니다.
곧 우리나라의 우주선이 달과 화성에도 가게 된 지금은 21세기다. 중세의 무속과 주술에 의존하고 근세의 전쟁광적 사고를 가진 자가 설치는 때가 아니다.
그러니까 ‘15세기의 갑옷을 입고 주문을 외고, 19세기 총칼을 휘두르며 선제타격을 외치는 자가, 21세기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