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황궁의 결심
(1) 파헤쳐진 젖샘
그런데 일이 크게 번져갔다. 계율을 어기게 된 것은 백제궁과 적제궁의 일만이 아니었다. 어느 사이에 음식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각 궁마다 늘어갔다.
“이제 지유 대신 나무 잎과, 풀잎만 먹도록 합시다.”
황궁은 모든 나무와 풀의 이파리를 살펴보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골랐다. 그런 다음 그 나무와 풀의 이파리만을 하루에 한 번 먹도록 하라고 했다. 새로운 계율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계율은 금세 무너졌다.
“백제궁과 적제궁 사람들이 먹던 포도가 정말 달큼하고 향기롭다네. 또 물고기와 짐승 고기는 고소하고 씹는 맛이 일품이라네. 왜 이런 맛없는 나무나 풀잎을 먹어야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포도와 물고기, 짐승 고기를 우리도 한 번 먹어보세.”
“그래. 오늘 밤에 우리 집으로 오게. 준비해놓을 테니 우리끼리 몰래 먹도록 하세.”
사람들은 하나 둘, 그렇게 몰래 다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계율을 지키지 않았다. 계율은 있으나마나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천제궁의 황궁에게 임금 환과 하늘, 산 들, 세 씨족장이 찾아왔다.
“큰 일 났습니다. 마고성의 젖샘을 누군가가 파헤쳤습니다.”
“뭐라고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황궁은 지도자 환, 세 씨족장과 함께 파헤쳐졌다는 마고성의 성벽 아래로 갔다. 지난번 마고가 성문을 닫아버린 뒤로 마고성은 어둠 속에 잠긴 듯 희미한 형체만 보였다. 그리고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그 마고성의 성벽이 뚫려져 있었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젖샘의 반대쪽을 파헤친 것이다. 누군가가 지유를 마시려고 그런 듯했다.
하지만 젖샘의 지유가 흘러나오기는커녕 성벽 안쪽 젖샘은 흔적도 없었다. 그 자리는 단단한 흙과 자갈로 덮여있었다.
“아, 이제 모든 게 허사가 되었구나.”
황궁 천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크게 소리 내어 한탄을 하였다.
그동안 황궁은 어떻게든 마고성의 일을 바로 잡고 싶었다. 지소로 인해 일이 생겼다. 그리고 지소에게 계율을 지키도록 충고해야할 씨족들이 함께 잘못을 저질렀다. 그보다 더 큰 잘못은, 잘못을 벌하지 않고 계율마저 없애버린 백궁과 백소였다.
하지만 그런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다섯궁의 계율을 바로 잡고 엄히 지켜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성문 아래 엎디어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계율을 지키어 지유를 마실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겠다며 나무와 풀잎에 손도 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계율을 엄히 지키도록 합시다. 그런 다음 마고님을 찾아가 엎드려 빌어야 합니다. 다섯궁을 살리고, 이 세상을 살려야 합니다.”
황궁은 청제궁의 씨족들, 흑제궁의 씨족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당부도 하고 감독도 하였다.
그러나 먹을 것에 대한 탐욕으로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마고성의 젖샘까지 파헤쳐 버리면서 황궁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이미 여러 음식의 맛에 취한 사람들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졌다.
“내일이 무슨 소용인가? 오늘 잘 마시고 잘 지내면 되는 거야. 자, 우리 집에 가세. 내가 기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마련했다네.”
“그거 좋은 말이네. 잘 먹고 잘 노는 일 말고 좋은 일이 뭐가 있겠나? 노세, 노세, 잘 놀아보세. 잘 먹고 잘 살아보세.”
그렇게 사람들은 백제궁과 적제궁 사람들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맛있는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계율을 지키려던 사람들도 젖샘이 파헤쳐져 없어졌다는 걸 알고 핑계거리가 생겼다. 마음 놓고 맛있는 음식을 찾고, 만들어 먹으며 즐기고 흥청거렸다.
마고가 성문을 닫아버리고, 소리와 오음 칠조가 흐트러지면서 지구의 순환은 어지러워졌다.
더욱이 백제궁과 적제궁이 폐허가 되고, 남은 세 궁의 사람들도 먹을 것에 대한 탐욕으로 할 일을 게을리 하자, 지구의 순환질서는 더욱 엉망이 되었다. 사계절의 순환이 더 흐트러졌다. 일 년 내내 추운 곳, 더운 곳이 생겼다. 하루 종일 낮이 계속되는 곳도 있고, 밤이 계속되기도 했다. 걸핏하면 비가 내리는 곳도 생기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사막이 되는 곳도 생겼다.
그러자, 사람들 마음도 불안하고 각박해졌다. 작은 일에도 다투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줄도 모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심성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먹을 것이었다. 지유만 마시고도 살았던 사람들이 온갖 음식을 먹고, 더 많이 가지려고 경쟁을 하면서 차츰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번엔 서로 많은 것을 가지려고 다투고 싸움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서로 패를 나누어 싸우고 도둑질까지 했다.
“이게 곧 세상의 종말이다. 마고님이 세상을 열고 모두가 행복을 누리고 살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단 말이냐?”
황궁은 날마다 각 궁을 돌아다니며, 천신과 천녀를 만나고, 임금 환과 각 씨족장을 만나 대책을 논의하고 방안을 마련했다. 직접 각 씨족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계율을 지키며 옛 풍속과 심성을 되찾자고 하소연하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앞에서만 듣는 척하고, 되돌아서면 그만이었다. 황궁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쳐, 되돌아 갈 길이 아득하고 멀었다.
어둠 속에서 빛이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생겨 우주가 되었다. 그리고 소리가 있었다. 빛이 흘러 실달성이 생겼다. 어둠이 흘러 허달성이 나란히 생겼다. 소리가 실달성, 허달성과 감응하여 마고성이 생겼다. 다시 소리가 마고성과 감응하여 마고가 생겼다.
마고는 창조자로 우주의 지배자로 이 세상의 역사를 열었다. 마고는 궁희와 소희를 만들어 세상을 다스리도록 했다. 궁희와 소희는 다시 황궁과 황소, 청궁과 청소, 백궁과 백소, 흑궁과 흑소 등 네 천인과 천녀를 낳았다. 그들이 짝을 이뤄 12쌍의 아들딸을 낳으니, 바로 인류의 시조로 열두 씨족이 그들이다. 12씨족의 사람이 각기 3천으로 불어나고 세상은 평화로웠다.
그러던 것이 작은 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결국은 말세가 되고만 것이다.
황궁은 이제 마고성과 다섯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고성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린 모두 천손족이다. 그러나 지금은 천손족의 명예와 긍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길은 하나다.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천손족의 본성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천제 황궁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으나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연재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0) | 2016.07.18 |
---|---|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0) | 2016.07.11 |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0) | 2016.07.05 |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0) | 2016.07.03 |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0) | 2016.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