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14
한라산이여!
겨울의 들머리,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서 제주 배를 탄다.
녹동과 소록도를 잇는 소록대교가 밋밋한 초가지붕 용머리처럼 능선을 그리며 바다에 걸려있다. 소록도와 거금도의 금산을 잇는 거금대교의 모습은 소록대교보다 더 웅장하고 길며 수려하다. 푸른 바다 위에 그리는 용머리의 능선도 더 아름답고 부드럽다.
나폴리와 시드니가 미항이라지만, 우리나라의 남쪽 항구는 어느 곳이든 다 빼어난 그림 한 폭이다. 녹동항의 아름다움은 그 중 백미로 천혜의 미항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갈매기 끼룩이는 녹동항 부둣가에 서서 바다 내음을 맡아보라. 인생에 남겨둔 여유가 있다면 한 계절을 녹동항에서 바다와 함께 그렇게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녹동항을 출발한 여객선 2등실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마치 우주선의 조종실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푸른 바다, 그 바다와 이어진 푸른 하늘, 마치 여객선이 하늘을 붕붕 날아가는 듯 싶다.
아름다운 항구 녹동항의 여객선 터미널
위쪽은 차도, 아랫쪽은 인도인 거금대교
제주는 지금으로부터 7, 8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대의 유적으로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속칭 ‘빌레못굴’ 유적이 있다. 이 빌레못굴에서 타제석기와 함께 오늘날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지방에서만 서식하는 순록과 황곰의 뼈가 발굴되었다.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였다. 1928년 제주항 축항 공사 때에 인근의 동굴 속에서 발견된 중국 한(漢)나라 시대의 화폐인 오수전(五銖錢), 화천(貨泉) 등의 유물은 과거 제주도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무역로상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문헌상의 제주도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역사서가 먼저다. 기원후 3세기 중국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오는 ‘주호(州胡)’에 관한 기록이 그 첫 예다.
‘주호는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그 곳 사람들은 마한인들 보다 키가 작고 언어도 한족(韓族)과 같지 않다. 그들은 모두 선비족(鮮卑族)처럼 머리를 깎았으며,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옷은 가죽으로 만들어 입었는데, 상의만 있고 하의는 없어서 거의 나체와 같다. 배를 타고 한(韓)나라에 왕래하며 물건을 사고 판다.’
하지만 이 기록은 당시 제주도 사회의 미개상태를 과장해서 서술한 것이리라.
그렇게 4시간여, 옛 기록에 나타난 제주를 생각하며 마침내 제주항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번 제주기행의 목적은 한라산과 강정포구, 그리고 추사유배지 세 곳이다. 출발하기 전 그 세 곳의 상황을 살폈고 잘 곳까지 인터넷을 검색하여 미리 점찍어 놨지만, 인생사라는 게 그렇게 순리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택시기사가 좋은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해서 동문시장 쪽 부근에 숙소를 잡게 되었다.
숙소에 짐을 놔두고 남은 시간을 정처 없는 산책으로 매꾼다. 그렇게 방향도 없이 걸어 관덕정과 용두암, 탑동해안도로를 둘러봤다. 탑동해안도로의 이마트 근처에 모여 있는 횟집거리에서 맛있는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있었음도 두 말할 필요 없는 나그네의 호사였다.
용두암
비가 온다고 했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걱정하듯, 걱정한다고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백록담을 보면 좋지만, 안 보여줘도 그 뜻을 어찌 거스르랴?
그런데 이게 웬 조화냐? 7시쯤 버스를 타고 성판악 휴게소에 내리는데, 금세 비가 쏟아질 듯 어둡던 하늘이 동쪽부터 벗겨졌다. 휴게소에서 김밥 한 줄을 사고, 오미자차를 한 잔 마신 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북쪽으로 몰려갔다. 이내 해가 나오고 구름이 비끼며 나오는 청명한 하늘이 마치 꿈처럼 파랗다.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는 사람처럼 입안 가득 바람을 머금어 훅 불어봤다. 그러자 마치 그 입김에 훅 날아가듯 나머지 구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햐! 이것 봐라.’
진짜 요술을 부린 것처럼 여겨져 속없이 킬킬 키득거렸다.
인적이 뜸한 완만한 산길을 부지런히 걷는데, 부산에서 왔다는 74세 노인이 젊은이와 짝을 이뤄 걸으며 ‘놀멍 쉬멍 한라산길, 1950m가 장난이냐?’ 자작시를 읊었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앞지른다. 평생의 꿈이 백록담을 보는 거라는데, 필자도 오늘 그 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사라오름을 지나고, 12시 이전이어야 입산이 허락된다는 진달래 대피소에 이른다. 대피소에서 커피 한 잔을 청해 기분좋게 마셨다.
진달래 대피소
아픈 다리 이기며 노 시인의 싯귀처럼 놀멍 쉬멍 오르길 4시간여, 해발 1800m 표지판을 지나고 1900m 표지판도 지났다. 그런데 차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왜냐하면 다시 구름이 서쪽에서 몰려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잽싸게 몰려오곤 하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다가 백록담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볼을 부풀려 입김을 불어보지만, 엉터리 요술이 통할리 없다.
해발 1900m
마침내 저만큼 정상이다. 까마귀떼가 백록담으로 오르는 나그네들을 반겼다.
그렇게 꿈에도 소원하던 백록담을 바라보고 섰다. 백두산 천지, 태백산 정상, 지리산 천왕봉, 그리고 한라산 백록담까지 보게 되었다. 이제 금강산만 남았다.
한라산 백록담의 까마귀
마악 백록담을 보고 사진 몇 장을 찍으니 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려버렸다. 바람도 세차다. 한쪽에 앉아 식어버린 차가운 김밥을 먹고 그래도 아쉬워 구름 틈새로 이따금 보이는 백록담을 보며 맘 속 기원을 되풀이 했다.
한라산 동능정상
백록담
하산 길, 실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위와 돌, 길이 미끄럽다. 조심조심 천천히 한발 한발 이제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러길 5시간여, 어둠이 내리는 시각, 제법 굵어진 비를 맞으며 관음사휴게소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려 한라산 등정인증서를 발급받았다. 그 인증서가 행여 비 맞을세라, 구부러질세라 가슴에 품은 뒤 택시를 타고 서귀포행 버스길까지 갔다.
다음 날 아침 밖을 내다보니 바람만 불뿐 비가 갰다. 제주시는 비가 온다하니 날씨 운이 좋은 셈이다. 숙소가 서귀포 버스정류장 부근이어서 천제연폭포가 있는 중문 관광단지 버스를 쉽게 탈 수 있었다. 그곳을 잠시 보고 택시로 강정마을과 추사 유배지를 둘러볼 생각을 했다.
천제연폭포와 여미지식물원은 오래전에 한 번 둘러본 곳이지만, 오늘은 천천히 걸어 느긋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주 4, 3 중문면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잠시 묵도를 올릴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다.
중문관광단지를 둘러보고 택시를 타고 가까운 곳이라는 강정마을로 갔다. 마을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 장소에 잠시 들렸다가 구럼비 바위가 보이는 해안가까지 내려갔다.
짙푸른 바다와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해안을 두르고 있는 구럼비 바위를 보며 잠시 손을 모아 맘 속 기원을 했다. 그러면서 나라와 백성을 팔아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친미, 친일, 정경매국노들이 우리들 후손이 주인인 천혜의 자연까지 짓밟는 만행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쥐새끼 닮은 인간을 떠올리면 토부터 나오지만, 오늘은 눈앞에 있으면 쌍판대기가 이그러지도록 따귀를 올리고 싶어졌다. 짙푸른 강정 앞바다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고 슬펐다.
천제연 폭포
중문 4 . 3 위령비
한참을 둘러본 뒤, 사진 몇장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추사 유배지로 갔다. 그런데 아뿔사! 택시에 카메라를 두고 내렸다.
어찌어찌 그 카메라를 찾느라 동분서주하며 시간을 다 보내고, 폭풍으로 배가 출항할지 말지 모른다는 제주항으로 향했다.
이 자리를 빌려 카메라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추사 유배지 들머리의 가게주인 아주머니와 두 분 택시기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지체했지만, 다행히 폭풍에도 아랑곳 않고 녹동행 배는 출항을 했다. 이따금 무서운 파도가 덮치고, 배가 부서질 듯 쿵쿵 거리는걸 보고 들으면서, 밤바다를 달려 한 시간도 더 늦게 녹동항에 도착하였다.
강정마을 누가 이들을 짓밟는가? 해적인가? 쥐떼인가?
강정마을에서 바라본 서귀포쪽
한라산
한번 구경 오십시오 라는 1950m
한라산 백록담
천지의 물이 흘러 태백산 지리산 지나
여기 고였으리라.
천만 봉우리 없어도
골짜기는 깊고 구름은 낮다.
백걸음 무거운 발도 한 걸음으로 쉬고
무거운 먹장구름도 입김으로 날려
놀멍 쉬멍(놀다 쉬다)
바다와 산과 하늘만 보고 걸으니
3대에 공덕을 쌓아야 본다는
백록담 물이 여기 구나.
황천이라 한들 무서우랴?
백록담 위를 날다온
까막 까마귀가 반겨주니
여기서 천상과 천지가 포옹하는구나
어찌 세상이 열리고 닫히는 이곳에서
이 세상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누군들 두 손 모아 기도하지 않으리.
자작시 한 수 읊은 뒤, 이제 ‘제주어선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제’의 호남가 기행을 뭍에서 다시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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