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스탄불, 둘째 날-1월 27일 오전 성소피아 사원
사실상 터키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이다.
‘부지런히 봐 둬야지.’
맘 속 무장을 단단히 하고 호텔을 나섰다.
터키어와 우리 말에 비슷한 단어들이 있다고 했다
물을 ‘수’라고 하고 묘자리를 ‘맷자리’라고 한단다. 빵을 ‘에크멧’이라 한다는데 이 말에 얽힌 우스개 소리가 있단다.
이 ‘에크멧’을 ‘에르켓’으로 잘못 들은 한 아가씨가 빵집에 가서 ‘파제(신선한) 에르켓(남자) 바르므?(있습니까?) 했다고 한다.
잠시 웃는 사이 다시 오리엔트 종착역 실케지 역을 지나쳐 불르모스크가 있는 히포드람 광장에 도착했다. 오늘 들릴 성소피아 사원이 어제 본 불르모스크와 이웃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 성소피아 성당은 서로마 출신인 콘스탄틴 황제 때, 처음엔 목조로 지어졌다고 했다. 젊은 시절 이곳에 유학을 온 콘스탄틴은 부친 사망 소식과 장인이 처남인 막센티우스를 후계자로 옹립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여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왕좌에 올랐다고 했다. 그 뒤 313년 기독교를 인정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곳 불르모스크와 성소피아 성당은 종교의 상징적 성지이지만,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 니키아의 반란으로 이곳 히포드럼 광장에서 3만 명의 대학살이 있었던 곳이라고도 하니, 그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이슬람 사원이, 기독교 성당이 어루만져 주는 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4차 십자군이 지나가면서 이곳 성소피아 성당을 점령한 ‘단돌로’라는 90이 넘은 우두머리 장군이 어찌나 악랄했던지, 수많은 인명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것은 물론 바로 이곳 성소피아 성당 안에서 처녀까지 겁탈했다고 한다. 말이 좋아 허울 좋은 십자군이지, 전쟁하면 정복자의 잇속 챙기기, 살육과 약탈 그리고 겁탈이 부수적인 만행으로 따라붙기 마련이다.
아무튼 성소피아 성당에 그 잔혹하고 악랄한 십자군의 두목 단돌라의 묘지가 있다고 하니, 기독교를 위해 싸웠다고 해서 그런 대접을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인간사임에 틀림없다.
그런 상념도 잠시 외벽은 허술하지만 내부는 7톤의 금으로 모자이크 장식이 화려하다는 성소피아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세인트 소피아는 처음엔 성당이었고, 그 뒤로 이슬람 사원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박물관이라고 했다. 원 이름은 ‘아야(거룩한) 소피아(지혜)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고 했다. 어쨌거나 입구의 성 크리스토퍼의 석조 설교대에서 사진을 찍고, 황금 치장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양 12마리가 눈에 띄었는데, 예수의 12 제자를 상징한다고 했다. 금 모자이크는 아라베스크 문양이었다.
정면을 보니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있었고, 이슬람 사원이었던 영향으로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불 켜진 등(미흐라)도 있었다. 왕의 기도처며 사회자가 서 있던 장소 등 그런 저런 곳들을 둘러본 뒤, 구불구불 일곱 구비를 도는 돌길로 된 나선형 통로를 올라 2층으로 갔다. 그곳은 황후의 기도처라고 했다.
2층에 올라오기 전 돌벽에 그려진 십자가가 지워져 있는 걸 보았는데, 그게 십자군 원정의 영향으로 바로 단돌라 같은 포악한 인간말종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4차 십자군의 두목 단돌라는 90이 넘은 나이에 백성을 살육하고 이곳 성당 안에서 처녀를 겁탈하는 등 정복자가 할 수 있는 온갖 못된 짓을 다했다고 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악감정이 컸다고 했다.
2층에 올라와 그 단돌라의 무덤을 먼저 찾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찌나 밟아댔던지 무덤이 주위 바닥보다 더 폭삭 꺼져 있었다. 광주 망월동 구 묘역 입구에 놓여있는 전두환의 광주 방문 기록 비석돌이 방문객의 발길질을 받는 것처럼, 동방의 나그네도 그 단돌라의 무덤을 ‘애라이! 니가 무슨 십자군이냐? 날강도, 떼강도 두목이지! 낫살이나 쳐 먹은 놈이 할 짓이 그 짓이었더냐? 쥐새끼하고 계 묻을 놈이다!’ 그리 중얼거리며 힘껏 발로 밟아주고는 성화 구경을 하러 갔다.
가장 볼만한 것이 바로 그 성화들이었다. 성화를 볼 때는 먼저 빛을 뿌리는 후광을 보라고 했다. 십자가와 예수에게는 그 후광이 그려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4가지 색을 살피라고 했다. 붉은색은 신이며, 푸른색은 그 신이 인간의 육신을 두라고 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했다. 또 흰색은 순결, 황색은 영광을 상장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손가락 인데 2개의 손가락은 인성과 신성을 상징하며, 3개의 손가락은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며 ‘3위가 일체다’ 라는 걸 말한다고 했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끈 것은 커다란 항아리다. 황금으로 치장된 그 커다란 두 개의 항아리는 밭에서 어떤 농부가 발견하여 임금께 갖다 바친 거라고 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 황금 항아리를 보면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매실주를 담가놓으면 한 일 년을 퍼 마셔도 될 듯 싶어서였다.
그렇게 성소피아 성당과도 이별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점심을 먹고는 유람선을 타고 보스프로스 해협으로 나간다.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길>
<성당 안의 야외 설교대>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성당 안>
<항아리, 2개가 있었다>
<성당 안 모습>
<성화>
<성당 안 정면>
<이층으로 올라가는 통로>
<성화>
<성화>
<2층에 있는 단돌로 무덤>
<지워진 십자가>
<황후의 기도처>
<참새와>
<구두닦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