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3

정읍 이평 말목장터 전봉준 감나무

정읍 이평 말목장터 전봉준 감나무 전라북도의 젖줄 동진강과 정읍천이 만나 서해로 들어가며 펼쳐놓은 배들평야(梨坪)는 말 그대로 지평선에 해가 뜨고 지는 곡창지대이다.1892년 4월, 그 배들이 있는 고부에 조병갑이 군수로 취임했다. 평양 기녀의 서자이나, 신정왕후 조대비 권력을 등에 업은 조병갑은 희대의 탐관오리였다. 부임하자마자 부모 불효죄, 형제간 불목죄, 잡귀를 즐긴죄, 노름죄 등의 세금으로 삽시간에 2만 냥의 돈을 착복하였다.그뿐인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정읍천의 물을 막은 만석보 아래 동진강에 또 하나의 만석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약속과 달리 물세를 거두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진황지(陳荒地)에도 토지세를 부과했다. 더하여 1841년부터 1845년까지 태인 현감을 지낸 자기 아버지 조..

나주 금성관 은행나무

1894년 음력 7월 초하루, 광주지역 5천 동학농민군을 이끄는 최경선이 나주 금안리에 진을 쳤다. 7월 5일 어둠이 내리는 시각 나주 접주 오권선과 함께 나주 관아의 서쪽 성문인 서성문을 공격했다. 하지만 나주 목사 민종렬과 수성군 도통장 정석진이 이를 잘 막아냈다. 8월 13일, 전봉준은 수하 10여 명과 함께 민종렬과 담판을 하기 위해 나주 관아로 들어갔다. 하지만 목사 내아인 금학헌에서의 회담은 결렬되었고, 전봉준은 객사인 금성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옷 세탁을 핑계로 사지를 벗어났다. 10월 18일, 조정은 관군과 일본군을 파견하며 호남초토영을 나주에 설치하고 민종렬을 초토사로 임명했다. 11월 23일이다. 수만의 농민군은 나주 금안리의 진을 나와 북망문 쪽 함박산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농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