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천자암 쌍향나무
냄새와 향기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무색무취라는 말도 있지만, 그 무색과 무취도 색과 취의 특성이니 모든 만물이 색깔은 물론 냄새와 향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냄새는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 따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성질이나 낌새를 말하지만,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꽃, 향, 향수는 향기라고 하니 좋은 뜻이다. 따라서 사람도 이익에 눈멀어 살살거리면 냄새나는 녀석이라 눈 흘기고, 이타적 삶을 사는 분에게는 장미나 치자꽃처럼 향기로운 분이라고 존칭한다.
측백나뭇과 향나무속인 향나무는 그 향기로움으로 얻은 이름이다. 그리고 줄기가 누운 눈향나무,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곱향나무,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뚝향나무, 북아메리카 원산인 연필향나무, 가지가 나선 모양으로 돌아가는 가이쓰가향나무 등이 있다.
화순 동복천이 무등산 앞쪽의 좁은 골짜기를 나온 뒤, 사평을 지나면서 들녘을 적시다가 조계산을 만나 한바탕 크게 굽어지는 곡천에서 송광천을 만난다.
그 곡천에서 만난 동복천과 송광천이 사이좋게 주암호를 들어가는 걸 보며 송광천을 거슬러 벌교 쪽으로 조금 가면 송광면 소재지 이읍마을이다. 잠시 쉬어 동쪽으로 싸목싸목 오르막을 한 시간여 걸으면 조계산 중턱의 천자암에 이른다.
천자암은 조계산의 남쪽에 위치한다. 두 그루의 향기로운 쌍향수가 있는 범상치 않은 절집이다. 여기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수령 8백여 년의 쌍향수는 곱향나무이다. 왼쪽 항나무가 오른쪽 향나무에 은근히 기대며 끌어안은 모습이다. 한 나무를 밀면 두 그루가 함께 움직이고 만져보기만 해도 극락에 간다고 한다. ‘천자암에 당도하니, 일지요 쌍향수도 흔들어보고’는 ‘순천가’의 일절이다. 한 나무를 흔들면 두 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흔들린다는 일지요(一枝搖)이니, 신비롭고 경이로운 나무이다.
천자암은 고려 때 담당국사가 창건했다. 당시 보조국사가 금나라 장종 왕비의 불치병을 치료해 주었고 이를 인연으로 왕자인 담당이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이 귀국하여 천자암을 열고 짚고 온 지팡이를 꽂으니 잎이 나고 가지가 벋었다.
하지만 이 쌍향은 조선 선조 때 서역에서 건너왔다고도 하고,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살았던 시대 차이도 100여 년이다.
그럼에도 사실이 무엇이든 향기로운 사연이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절하는 듯한 모습은 스승께 예의를 갖추는 제자의 예절이고, 한 나무가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니, 이는 인간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자연의 오묘한 가르침이다.
이곳 천자암 가는 길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밤꽃 향기다. 비리비리쫑쫑, 보리밭 고랑에서 종다리 하늘 높이 튀어 오르고, 먼 산 뻐꾸기 울음에 콸콸 흐르는 물길 잡아 논모를 심을 때, 온 산에 흐드러지게 밤꽃 피는 그 무르익은 봄날에 가면 참 좋다.
아카시아 꽃향은 은은하지만, 그 꿀은 향수 맛이다. 밤꽃 꿀은 톡 쏘며 쓰나, 꽃향기는 향나무 향이다. 이 세상에 생명을 잇게 하는 정(精)향기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속물도 있지만, 온몸을 가시로 둘렀으나, 밤은 뭍 생명의 식량이 되는 고마운 열매이다.
천자암 가는 길에 지천으로 밤꽃이 필 때, 그 밤꽃 향기 맡으며 싸목싸목 걸어 천자암의 쌍향수를 만나보자. 쌍향나무 앞에서 함께 간 이들과 넌지시 어깨에 기댄 모습으로, 하나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리는 일지요 사진도 남겨보자.(호남일보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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