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유혹
(1) 사람들의 세상
세월이 많이 흘렀다.
각 씨족의 사람들도 3천명으로 불어났다. 12씨족이니 모두 합하면 3만 6천명의 사람들로 불어난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불어나니 좋았지만, 지유를 마실 때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면 복잡해요. 씨족별로 시각을 정해 순서대로 지유를 마셨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각 씨족별로 지유를 마시는 시각과 순서가 정해졌다.
또 그렇게 사람이 많다보니, 그 중에는 아주 뛰어난 사람도 있고, 평범한 사람도 있고, 조금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도 있고, 게으른 사람도 있었다. 친절한 사람도 있고, 자기 일만 열심인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일 년 내내 말 한 번 나누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모두들 맑은 영혼과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어서 다투거나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각 씨족의 사람들이 불어나 벼라별 사람이 많을 때다.
백제궁 쇠 씨족에 지소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는 백제궁의 쇠 씨족이었지만, 어머니는 백소의 적제궁 불 씨족 사람이었다. 백제궁 사람들은 얼굴색이 백색이다. 적제궁도 백궁과 백소의 후손이어서 얼굴색이 백색이다. 그런데 지소의 얼굴은 약간 붉은 색이었다. 그리고 3천이나 되는 쇠 씨족 사람들 중에서 어쩐지 조금 게으르고 어수룩했다. 움직임도 힘이 없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여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지 않으려 했다.
씨족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할 때도 혼자서 빈둥빈둥 놀면서 엉뚱한 상상을 곧잘 했다.
하지만 머리가 영리했다. 남보다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 손재주도 뛰어나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빼어난 물건을 만들어내곤 하였다.
지소가 15살이 되어 백제궁의 학교를 마치고 천제궁의 학교에 다닐 때다.
지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어왔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든 바르게 서서 돌아가는 팽이를 만든 것도 지소였다. 실달성이 지구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오늘 날의 지구팽이 같은 거였다. 그걸 아이들에게 나눠주니 모두들 좋아하였다.
팽이뿐만이 아니었다. 구슬, 제기, 연날리기 등도 다 지소가 만들어와 시작된 놀이였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바퀴타기였다. 지금의 외발 자전거 같은 거였다. 그 바퀴를 타고 씽씽 달리는 놀이에 아이들은 홀딱 빠졌다. 좀 더 멋있고, 잘 달리는 바퀴를 갖는 게 큰 자랑거리기도 했다.
“야, 넌 발명왕이야. 만들기 천재야!”
“그래, 우리 지구에서 너만큼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없을 거야. 넌 앞으로 지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할 거야.”
아이들은 그런 칭찬으로 지소를 기쁘게 했다.
“저는 앞으로 우리 백제궁의 천제님 백궁님이 만드신 날틀을 개량할 생각이지요. 많은 사람이 타고, 먼 곳까지 편안하게 구경 다닐 수 있는 커다란 날틀을 만들 거지요.”
학교의 박물관에는 백궁이 젊은 시절에 만든 날틀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소는 그 날틀을 가장 좋아했다. 박물관에 가면 지소는 그 날틀 앞에서 하루 종일이라도 서 있을 듯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 좋은 날틀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앞으로 이런 날틀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지소야!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런 지소를 지켜보며 학교의 선생님들도 지소에 대해 기대가 컸다.
그렇지만, 그런 뛰어난 능력과는 달리 너무 게으르고 빈둥거렸다. 학교는 날마다 지각이었다.
“지소야! 학교 가자.”
“알았어. 먼저 가.”
지소는 ‘무슨 밤이 이리 짧나? 해는 짧아도 좋지만 밤은 길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자리에 누워 빈둥거리고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고. 너와 함께 가려다간 지각하겠다. 먼저 간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지소는 아예 친구들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차츰 지소를 부르러 오지도 않았다.
어느 날이다. 그날도 지소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보니 해가 중천이다. 또 지각인 것이다.
지소는 느릿느릿 학교로 향했다.
‘그렇지. 오늘은 지유를 먼저 실컷 마실까?’
지소는 지유가 있는 젖샘으로 갔다. 그런데 사람이 많았다. 이미 학교의 학생들이 지유를 마실 시각은 지나버렸다. 그리고 하필이면 다른 씨족의 지유 마실 시각과 겹쳤던 것이다.
지소가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날따라 지유를 마실 사람의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조금 있다 와야지.’
기다리기 지루하여 지소는 저만큼 숲 속에 가서 또 한숨을 잤다. 그리고 다시 젖샘에 와보니, 이번에도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웬 일이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지소는 다시 숲으로 가서 또 한숨을 잤다. 그러다 잠이 깨어 젖샘으로 갔다.
그런데 이거 또 웬 일인가? 이번엔 전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줄을 지었다. 지소는 다시 숲으로 갔다. 한참을 있은 뒤 또 다시 젖샘으로 나가보았다. 그런데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지소가 그날 그렇게 하기를 다섯 번이나 하였다. 하지만 결국 지유를 마실 수가 없었다.
지소는 화가 나기도 하고 목이 말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고 지유고 생각하기도 싫어 집으로 가버릴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이 탁 풀린 지소가 젖샘 앞 광장을 지날 때였다. 마침 그날은 청궁 천제의 청제궁 열매 씨족 사람들이 여러 가지 열매를 가지고 와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둥글고 큰 열매, 길쭉한 열매, 색깔이 예쁜 열매, 향기로운 열매, 달큼한 물이 들어있는 열매, 단단한 열매, 부드러운 열매, 부드러운 살이 단단한 씨를 감싼 열매, 거꾸로 단단한 씨를 부드러운 살이 감싼 열매, 사나운 가시가 있는 열매, 등 온갖 열매들이었다.
새롭고 이상한 걸 만들기 좋아하는 지소였다. 처음 보는 열매들에 푹 빠져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나하나 자세히 구경하였다.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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