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화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운당 2016. 6. 19. 09:26



(2) 사람의 불어남

 

다섯 궁의 아이들 24명이 짝을 지어 12씨족이 되었다.

중앙의 천제궁에 궁이 또 세워졌다. 동쪽의 청제궁, 북쪽의 흑제궁 등 다른 궁도 마찬가지였다. 씨족 숫자만큼 궁을 더 만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씨족 끼리 경쟁이라도 하듯 아이들이 태어났다. 또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니, 어느 덧 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이 사는 집의 처마와 처마 끝이 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지구는 넓었고, 씨족들의 삶터도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아직은 음과 양의 이치가 복잡하지 않고 사람들의 영혼이 맑을 때였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시기심 등 사람으로서의 욕구라는 게 없을 때였다. 영혼과 심성이 순수하고 순결했고, 소리에 의존하지 않아도 듣거나 말하며, 움직이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먼 길도 새처럼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다섯 궁의 천신 천녀들이 맡겨준 일이나 심부름을 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먹는 음식 걱정 같은 것도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마고성의 샘에 가서 지유를 마시면 되었다. 그 지유는 사람 수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솟아나왔다. 쉼 없이 솟아나와 부족함이 없었다.

한가할 때도 심심하지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면 그 상상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생각만하면 무엇이든 만들고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물체나 형상은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도 없었다. 금방금방 다른 상상이 뒤이어 나타나고 물체나 형상도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그런 상상을 통하여 지구는 날로 새로워지고, 변화를 거듭하였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 상상을 그림으로 그려 남기기도 하고, 실제로 그 상상의 물체나 형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생겼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인기를 끌었다. 뛰어난 솜씨와 재주를 가진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부러워했다.

황궁 씨의 하늘 씨족, 산 씨족, 들 씨족 사람들은 주로 짐승을 만드는 재주가 남달랐다. 하늘 씨족은 날개를 가진 날짐승을 잘 만들었다. 여러 모양과 크기의 날짐승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게 하였다. 산 씨족 사람들은 산에 사는 짐승을 잘 만들었다. 호랑이 같은 사나운 짐승도 있었고, 다람쥐나, 토끼 같은 약한 짐승도 있었다. 들 씨족은 들에 사는 짐승을 만들었다. 나비나 메뚜기 같은 곤충들이 많았다.

청제궁의 나무 씨족, 풀 씨족, 열매 씨족 사람들은 역시 나무와 풀과 열매에 대한 상상이 뛰어났다. 온갖 모양의 나무와 풀, 열매들을 만들어냈다.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따라 그것들이 변하고 바뀌도록 했다.

백제궁의 쇠 씨족과 금 씨족은 땅 속의 여러 가지 쇠붙이와 금을 가지고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도구를 만들었다. 주로 집을 짓고 길을 닦는데 필요한 연장을 만들었다. 또 목걸이나 반지 등 갖가지 장신구를 만들었다.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적제궁의 사람들은 불을 잘 다뤘지만, 뛰어난 상상으로 물체나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백제궁의 사람들이 금이나 쇠붙이를 다룰 때 도움을 주었다. 불의 온도와 세기에 따라 금과 쇠붙이는 쓸모 있는 도구나 장신구가 되기도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기도 했다.

흑제궁의 사람들은 천제궁의 사람들처럼 물 속 생명체를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내 씨족은 냇물에 사는 물고기, 강 씨족은 강물에 사는 물고기, 바다 씨족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물고기들로 내와 강, 바다는 생명체로 풍성했다.

그렇게 마고성이 지구가 되고, 12씨족의 사람들이 불어날 때다. 지유를 마시러 마고성으로 오는 시각은 서로 얼굴을 보며 낯을 익히고 사귈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 숫자가 불어나자, 각 궁에서도 학교를 세웠다. 동쪽 청제궁에 청제학고. 서쪽 백제궁에 백제학교, 남쪽 적제궁에 적제학교, 북쪽 흑제궁에 흑제학교가 세워졌다. 아이들은 먼저 자신의 궁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나이가 15살이 넘으면 중앙에 있는 천제궁의 천제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러자 서로 모르는 얼굴이 생겼다. 사람 수도 많아졌지만, 자주 만나지 않으니 낯선 얼굴이 많아졌다.

오랜만이오.”

반갑소. 그간 별 일 없었소?”

어른들은 어른끼리 어울렸다.

, 너 많이 컸다.”

우리 달리기 시합할까? 숨바꼭질 할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숨바꼭질도 하고 달리기 시합도 했다.

그렇게 만나고 사귀면서 또, 다른 궁에 사는 사람들의 뛰어난 재주를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은 천제궁 하늘 씨족의 재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청제궁의 묘기입니다.”백제궁의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시고 가져가세요.”

적제궁의 불 묘기입니다.”

오늘 흑제궁의 묘기가 강에서 있습니다. 강으로 갑시다.”

지유를 마시는 마고성의 성벽 아래는 각 씨족의 재주를 볼 수 있는 광장이 되었다. 흑제궁의 묘기가 있을 때는 우루루 강으로 몰려갔다.

황궁과 황소의 하늘, , 들의 세 씨족은 주로 짐승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 중 사람들의 박수를 가장 많이 받은 묘기는 불을 뿜는 용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재주였다. 사납고 무서운 커다란 용을 마음대로 부리며 하늘을 나는 모습은 모두를 부럽게 했다.

청궁과 청소의 나무, , 열매의 세 씨족은 여러 가지 나무와 풀, 열매를 보여주었다. 온갖 신기한 나무와 풀, , 열매를 가지고 왔다. 향기로운 꽃, 형형색색의 꽃들을 보며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서쪽 백제궁의 사람들은 금과 쇠붙이로 만든 온갖 물건들을 가져와 보여주고 나눠주었다. 집안에 장식을 하고, 옷이나 몸의 장신구로 쓰였기 때문에 그들이 물건을 가지고 오면 모두들 기뻐했다.

적제궁의 불을 다루는 묘기를 보며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들의 몸은 불과 하나가 된 듯했다. 손가락이나, 머리카락에서 불꽃이 솟고, 불을 먹기도 하고 뿜어내기도 했다. 불 위를 걷고, 손짓 하나로 불을 키우기도 줄이기도 하며, 공처럼 던지거나 춤을 추게도 했다.

흑제궁 사람들이 물 속 생명체를 다루는 날은 모두들 강가로 나갔다. 수천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공중으로 뛰어 오르고, 여러 동작으로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물고기들의 재주를 보며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그렇게 지유를 마시러 와서 그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자신의 다른 씨족의 재주를 보면서 즐거워하며 서로 낯을 익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