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산인면 고려동 이오 자미화 재령 이씨는 황해도 재령군이 본관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학자 이오는 본관이 재령이며 고려 사재시(司宰寺)의 종3품 관직 사재령을 지낸 이일선의 넷째 아들이다. 성균관 진사이던 이오는 고려가 사라지자, 송도의 두문동에서 망복수의의 결의를 다지고 경남 밀양으로 내려왔다.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의 옛 지명으로 고려 성균관의 태학생 72명이 은거한 곳이다. 이들은 조선이 건국되자 이곳에 들어와 동·서쪽에 문을 세워 빗장을 걸고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당시 성균관은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 인문사회 3개 학과에 9백여 명, 율학, 서학, 산학 등 자연과학기술계 6개 학과에 4백여 명의 학생이 있었다. 조선 태조는 이들을 불러 자신의 집인 경덕궁에서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