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음력 7월 초하루, 광주지역 5천 동학농민군을 이끄는 최경선이 나주 금안리에 진을 쳤다. 7월 5일 어둠이 내리는 시각 나주 접주 오권선과 함께 나주 관아의 서쪽 성문인 서성문을 공격했다. 하지만 나주 목사 민종렬과 수성군 도통장 정석진이 이를 잘 막아냈다. 8월 13일, 전봉준은 수하 10여 명과 함께 민종렬과 담판을 하기 위해 나주 관아로 들어갔다. 하지만 목사 내아인 금학헌에서의 회담은 결렬되었고, 전봉준은 객사인 금성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옷 세탁을 핑계로 사지를 벗어났다. 10월 18일, 조정은 관군과 일본군을 파견하며 호남초토영을 나주에 설치하고 민종렬을 초토사로 임명했다. 11월 23일이다. 수만의 농민군은 나주 금안리의 진을 나와 북망문 쪽 함박산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농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