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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27)

운당 2014. 9. 5. 07:02



해가 뉘엿뉘엿 서쪽 바다로 들어가는 황혼 무렵이었다. 한라산 사슴들은 꼭두새벽이나 황혼 무렵에 산기슭의 풀을 뜯고 이곳 백록담 못에 와서 물을 마셨다. 이 사슴 떼를 이끄는 건 눈부신 흰털을 가진 아름다운 사슴이었다.

나무꾼이 그 흰 사슴이 이끄는 사슴 떼를 발견했지.”

마침 달이 솟았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연못에도 달빛이 곱게 번졌다. 그리고 수 백 마리의 사슴들이 연못 주위에 가득 찼다.

나무꾼은 연못가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가지고 있는 활을 꺼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마리의 사슴을 겨누고 시위를 팽팽히 당겨 화살을 쏘았다.

화살에 맞았는지, 사슴이 푹 고꾸라졌다. 나무꾼은 바위틈에서 나왔다. 쓰러진 사슴을 찾으러갔다. 그러다 깜짝 놀라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어허! 네 이놈! 어찌 죄 없는 생명을 죽이느냐?”

흰 사슴이 갑자기 흰 머리에 흰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운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무꾼의 앞을 가로 막았다.

노인의 부드러우면서도 매서운 호통소리에 나무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겁에 질려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한 거다.”

그렇게 말한 노인은 백록담 못의 물을 떠와 화살에 쓰러진 사슴의 상처에 발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사슴이 벌떡 일어났다. 화살에 맞은 상처가 아물고 죽음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너희 어머니에게도 저 물을 가져다 드리렴. 그러면 병이 나을 것이다.”

나무꾼은 노인의 말대로 백록담 못의 물을 떠다가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못을 백록담이라고 부르지. 흰백, 사슴록, 못담 그러니까 흰 사슴이 놀던 못이란 뜻이지.”

그렇구나.”

구름이와 세민이는 백록담 까마귀의 얘기에 푹 빠져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제주는 신비롭고 신령스런 곳이야. 그래서 설문대 할망의 혼령도 만나 뵐 수 있어. , 날 따라오렴.”

백록담 까마귀가 앞장을 섰다. 구름이와 세민이를 외돌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바로 여기야. 설문대 할망은 막내아들 외돌개 바위와 함께 살고 계셔. , 그럼 내가 먼저 간다.”

백록담 까마귀가 외돌개 바위 아래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세민아! 무서워? 우리도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안 무서워.”

구름이의 물음에 세민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우리도 백록담 까마귀처럼 바다 속으로 들어가자.”

구름이가 풍덩 바다로 들어갔다. 세민이도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