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화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운당 2016. 7. 5. 05:25

11. 마고의 노여움

 

<주성기 작 '능소화'> 

(1) 마고성문을 닫다

 

마침내 젖샘의 지유를 마셔야 한다는 계율이 백제궁과 적제궁에서는 없어졌다. 마고성이 생기고 하루에 한 번 젖샘의 지유를 마셔야 한다는 계율을 그들 씨족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백궁과 백소의 후손인 쇠, , 불 씨족들이 계율을 어기고 지유 대신 포도열매를 먹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 더욱이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지 않고, 지켜야할 계율마저 없앤 것은 더 큰 잘못이었다.

사람이 불어나 젖샘의 지유를 줄을 서서 마셔야 하는 불편은 창조자 마고와 천신 궁희, 소희의 뜻을 받들어 해결할 문제였다. 그런데 계율을 어긴 씨족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계율을 없애버린 것은 절차와 과정에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지구가 생기고, 사람이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일어난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마고님! 백제궁과 적제궁의 세 씨족들이 계율을 어겼습니다. 지유 대신 포도열매를 먹는다 하옵니다. 더욱이 지유만 마셔야한다는 계율조차도 없애버렸다 합니다.”

세 씨족이 지유대신 포도열매를 먹는다는 사실은 마침내 마고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라고? 계율마저도 없애버렸다고?”

마고는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였다. 당장 궁희와 소희를 비롯하여 아홉 천신과 천녀를 불렀다.

우리 잘못이오. 모든 벌을 달게 받겠소.”

마고궁으로 가면서 백제궁의 백궁과 적제궁의 백소가 다른 천신 천녀들에게 그간의 상황을 얘기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 일은 마고님이 결정할 일이오. 또 이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잘못이기도 하오, 가서 마고님께 엎드려 잘못을 빌고 처분을 받읍시다.”

모두의 대표이고 지도자인 황궁의 마음도 무거웠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앞장 서 마고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모두들 예를 갖춰 절한 다음 마고 앞에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었다.

짐은 언젠가 이런 염려스러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율을 엄하게 정해 각 씨족들에게 지키도록 한 거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율을 엄히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황궁을 비롯하여 모두들 간절히 용서를 구했지만 마고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계율을 어긴 것도 잘못이지만,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계율을 없애버렸으니 그 실망이 너무 크구나. 이제 너희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잘못을 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마고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이제 이 천상의 문을 닫도록 하겠다. 앞으로 너희 모두가 몸과 맘을 닦아 하늘의 뜻과 이치를 스스로 통하지 않으면 이 문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친 마고는 궁희와 소희 외에는 모두를 마고성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런 다음 마고성의 성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순간 짙은 안개가 몰려왔다. 그 안개가 마고성을 감쌌다. 그러자 마고성의 모습은 그림자처럼 안개 속에 가려졌다. 희미한 윤곽만이 마고성임을 알게 해주었다.

모두들 하릴없이 마고성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각자 궁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여 잘못을 바로 잡도록 하시오. 이제 젖샘의 지유를 마실 수 없으니,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할 거요. 지유 외의 모든 음식에는 독이 있다고 하였소. 그러니 음식에 의한 독이 사람의 심성과 몸을 헤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오.

황궁은 다른 궁의 천신과 천녀들에게 간절히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소리와 오음 칠조였다. 지금까지는 마고성에 있는 음악궁에서 그 소리와 오음 칠조를 관리했는데, 이제 마고성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음악궁을 어찌하면 좋으오?”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궁으로 돌아간 뒤 황궁은 천신 소리와 천녀 황소와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 천제궁에 마고성의 음악궁에 맞먹는 시설을 한 것이지요. 하지만 마고성의 음악궁이 없으면 이곳 시설은 반쪽짜리 기능 밖에 할 수 없지요.”

무슨 해결 방법이 없소?”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소리와 오음 칠조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지구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올 겁니다. 그 혼란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바로 잡는데 몸과 마음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소. 지금으로선 우리의 잘못에 대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소. 하지만 우리 모두가 몸과 맘을 닦아 하늘의 뜻과 이치에 통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마고님의 노여움을 풀고 하늘의 문이 다시 열리도록 합시다. 두 분이 누구보다도 수고해 주셔야 합니다.”

황궁은 천신 소리와 천녀 황소에게 특별히 부탁을 하였다.

황궁 천제님의 뜻에 따라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두 천신, 천녀도 굳은 마음의 각오를 나타내며 천제궁에 보조장치로 만들어놓은 천제궁 음악실로 갔다.

하지만 소리와 오음 칠조의 흐트러짐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세상은 혼란 속에 빠지고 말았다. 갑자기 바다에서 육지가 솟아올랐다. 그 솟아오른 육지가 산과 들과 강으로 나뉘어졌다. 순식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또 그렇게 솟아 오른 육지가 한쪽에서부터 꺼져 내리며 바다가 되기도 했다.

소리와 오음 칠조가 잘 관리가 될 때는 밤낮이 정확했다. 12시간은 낮이고 12시간은 밤이었다. 사계절도 뚜렷했다. 세 달씩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알맞게 돌아갔다.

또 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비가 되어 내와 강으로 가고, 바닷물이 되었다. 다시 바닷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다.

낮과 밤도 일정하게 교대로 되지 않고, 갑자기 밤이 되었다가 낮이 되었다. 또 낮도 밤도 아닌 때도 있었다.

봄인가 하면 겨울이고, 어느새 여름이다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었다. 갑자기 무덥다가 찬바람과 함께 눈이 펄펄 날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바닷물이 그냥 통째로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고,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가뭄이 들어 땅이 갈라지고, 폭우와 장마가 들어 내와 강이 넘쳐나면 땅 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시간과 날씨와 자연의 변화와 순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