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화

황녀의 영웅들 2-지구의 시작

운당 2016. 6. 29. 16:30

10. 마고의 계율을 어기다

  <주성기 작가님의 지리산 바래봉 사진입니다,> 

(1) 혼란에 빠진 다섯궁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포도알을 가지가지에 매달자, 이내 그 포도 알이 송이송이, 주렁주렁, 탐스런 포도송이가 되는 것이다.

지소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넝쿨에 달린 포도송이에서 포도 알을 하나 땄다.

난생 처음이다. 젖샘의 지유 외에 무엇을 먹거나 마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맘이 떨리고 손이 떨렸다. 그 떨리는 손으로 포도 알을 재빠르게 입에 넣었다.

정말 달큼하고 향기로운 열매였다. 입 안 가득 달큼한 맛과 향기가 돌았다. 구름이 피어나 산을 덮듯 온 몸에 퍼졌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솟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지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포도 알속에 독이 있었던 것이다. 그 독이 지소의 온 몸에 퍼진 것이다.

지소는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를 한 송이 땄다. 그리고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집 밖으로 나왔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물기둥으로 솟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바로 포도의 힘이로다. 포도를 먹으니 참 좋구나.”

지소는 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다.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소의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니, 저 사람 지소가 미쳤나? 무슨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지?”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 지소의 노랫말을 들었다. 그리고 깜빡 놀라며 귀를 의심하였다.

, 포도의 기운이 솟으니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너는 구나. 달큼하고 맛있는 포도여! 샘솟는 물기둥이여! 모두들 달큼하고 향기로운 포도를 먹으세요.”

지소는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해서 포도를 따먹었다.

지소가 포도를 먹으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자, 사람들은 호기심이 생겼다.

이보게. 지소. 포도가 무엇인가?”

바로 이게 포도요. 달큼하고 향기로운 포도요. 지유보다 맛있는 포도라오.”

그 포도를 어디서 났는가?”

우리 집 울타리에 있지요. 송이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요.”

정말 자네 집 울타리에 있는가?”

그렇다니까요. 젖샘의 지유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포도가 우리 집 울타리에 있지요.”

사람들은 궁금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앞 다투어 지소의 집으로 몰려갔다. 과연 지소의 말대로 넝쿨 가지에 포도가 송이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탐스런 포도 알에서 달큼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왔다.

지유는 아무런 맛이 없었다. 향기도 없었으며 마셔도 배가 부르거나 기분이 좋거나 하지도 않았다. 물론 배가 고파서 지유를 마시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습관처럼 하루에 한 번 마셨을 뿐이었다.

그런데 포도는 달랐다. 우선 생김새부터 먹음직스러웠다. 달큼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있었다.

그 달큼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맡자, 사람들은 순간 몸이 휘청했다. 어지럼증이 일어 쓰러지려 했다. 그리고 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얼 망설이오. 어서 맛을 보시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한 움큼씩 포도를 따 입에 넣었다. 그랬더니 과연 지소의 말이 맞았다. 달큼한 향기가 금세 입안에 가득 퍼졌다. 지유에서 맛보지 못한 맛을 느꼈다. 힘이 불끈 솟고 기분이 좋았다.

내 말이 맞지요?”

그렇군. 지소. 이 포도나무는 어디서 구했나?”

들에 가면 이런 나무가 많지요. 그 나무를 캐오시오. 그런 다음 이 포도 알을 하나씩 가지에 매다시오. 그러면 금세 이 같은 포도나무가 될 거요.”

지소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연장을 챙겨서 들로 나갔다. 지소가 말한 포도나무를 캐와 자기 집 울타리에 심었다. 지소 집의 포도나무에 열린 포도 알을 가져와 자기 집 포도나무 가지에 매달았다.

또 과연 지소 말이 틀림없었다. 포도 알을 매달자, 금세 그 알은 송이송이, 주렁주렁, 포도송이가 되었다.

쇠 씨족 사람들의 집은 모두 포도나무 울타리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 포도를 따먹기 시작했다. 지유를 마시러 가지 않았다.

그 소문이 금세 또 퍼졌다.

어이, 자네들은 지유 다신 포도를 먹는다지?”

같은 백궁, 백소의 후손들인 금 씨족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렇다네. 이 포도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네. 어디 한 번 맛을 보게나. 그리고 자네들도 울타리에 이 포도나무를 심게나.”

포도 맛을 본 금 씨족도 모두 그 포도의 달큼하고 향기로움에 빠졌다. 너도 나도 들에 나가 나무를 구해와 울타리에 심었다. 그리고 포도 알을 얻어다 가지에 매달았다. 그러자 금세 풍성한 포도송이를 매단 포도나무가 되었다.

금 씨족 사람들도 지유 대신 포도를 먹었다.

또 그 소문이 같은 일족인 적제궁의 불 씨족에게도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그 불 씨족 사람들도 포도나무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유 대신 포도를 먹으며 즐거워했다.

이제 백궁과 백소의 후손들이 사는 백제궁이나, 적제궁의 사람들 집에서는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울타리가 모두 풍성한 포도송이를 매단 포도나무였다.

이제 지유는 그만 마시자. 이제 지유는 필요 없어. 이렇게 맛있는 포도가 있는데 지유를 왜 마시냐?”

모두들 포도 맛에 흠뻑 취했다. 맛과 향기, 그리고 배까지 부르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으니, 저절로 노래가 나오고 춤을 췄다. 그러다가는 제 할 일까지 잊어버리기도 했다. 맡은 일을 팽개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포도의 독에 마비가 된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백궁, 백소의 후손들이 지유 대신 포도열매를 먹는다니.”

각 씨족에는 씨족의 행동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씨족으로서 지켜야할 계율을 지키는지 어기는지를 감시하는 머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쇠 씨족, 금 씨족, 불 씨족에도 그런 머리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임무는 자기 씨족 사람들이 마고의 계율을 어기지 않고 실천하며 지키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머리들까지도 모두 포도를 따서 배불리 먹고 말았다. 마침내 그 일을 백궁과 백소가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큰일이로다. 큰일이로다.”

백궁과 백소는 펄쩍 뛰며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