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해 뜨는 들모실 느티나무

운당 2022. 10. 20. 09:16

화순군 이서는 광주광역시의 주산인 무등산의 뒤쪽이 아닌 앞쪽이고 해 뜨는 동쪽이다. 뒤가 튼튼한 것도 좋지만 앞이 든든한 것은 더 좋다. 뒤로 지나가는 시간도 살펴보지만, 현실은 앞으로 가는 시간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뒤는 그저 역사가 되지만, 앞은 그 역사의 희망이자 그걸 이루는 소망이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는 무등산 동쪽의 이서천, 장복천, 안심천을 젖줄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이서천은 무등의 3대 폭포인 세 무지개가 뜨는 시무지기에서 내려온다. 장복천은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인 광석대에서 내려온다. 여기 규봉암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보조국사 지눌, 그의 제자 진각 등 여러 국사가 도를 이룬 곳이다. 또 지공과 나옹도 거쳐 갔다. 안심천은 무등산 자연휴양림인 편백나무숲에서 흘러온다.

그렇게 이서천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품은 물이고 장복천은 불경으로 도를 닦은 물이다. 더하여 안심천은 편백향기 가득한 물이니, 이 물을 마시고 손발을 담그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신선이라고 해도 넘치는 말이 아니다.

이 천혜의 땅에 연산군 6년인 1500년경에 사람이 들어왔으니, 야사는 우리 말로 들 마을인 들모실이다. 이걸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평사, 금사, 사촌, 사천이라 하다가 야사라고 하니, 들모실이 들모래가 된 셈이다. 그렇다고 물이 거꾸로 흐르진 않을 거다.

또 이 물이 흘러가 동복천이 되는데, 이곳의 4대 적벽이 절경이다. 이 적벽은 기묘사화에 이곳으로 유배 온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먼저 물염적벽의 물염정은 조선 중종때 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 물염은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뜻이니 가히 신선이 사는 마을의 정자 이름이다.

창랑리의 창랑적벽은 높이 약 40m에 길이가 100m 가량 이어지며 펼쳐지는 병풍절벽으로 그 느낌이 웅장하다. 한 여름의 붉은 베롱꽃, 뭉실뭉실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을 담고 찰랑찰랑 흘러가는 물결은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이다.

노루목 적벽은 장항적벽의 우리말 이름이다. 이곳에 삿갓 선생이라 부른 김병연의 시가 남아있다. ‘무등산고송하재, 적벽강심사상류’, 그러니까 무등산이 높아도 소나무 가지 아래이고 적벽강이 깊어도 모래 위로 흐른다이니, 자연의 순리를 담아 인간의 교만함을 경계했다. 또 이 노루목 적벽이 동복호가 되기 전에는 불꽃놀이를 했던 곳이다. 불붙은 풀짚단이 적벽 위에서 떨어지고, 강물에서 올라오는 불꽃 그림자가 푸른 물결에서 합쳐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어 보산적벽을 보고 동복천을 따라가면 평양의 만경대와 비슷한 만경대이고, 연둔리 둔동마을에 이른다. 이곳 아름다운 물마을 건너편 구암마을이 삿갓 선생이 숨을 거둔 종명지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235호인 해 뜨는 마을 야사리의 느니타무 나이는 4백살쯤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 두 그루를 할머니 나무로 모시고 마을 앞 논가의 할아버지 나무와 함께 당제를 지냈다. 하지만 할아버지 나무는 고사되어 이제 그 자리에 손자뻘 나무가 있다.

이 해 뜨는 느티나무는 옛 이서중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에 있었다. 따라서 축구도 마음대로 못했지만 나무와 아이들은 평생 친구였다. 그러다 20082월 일곱명의 졸업생과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느티나무만 옛 학교터를 지킨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천연기념물 제303호인 5백살 은행나무와 함께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으니, 우린 그저 산천과 인걸이 변함없이 의구하기만을 기원할 따름이다.

들모실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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