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콩이 2

운당 2015. 9. 7. 06:25

<동화>

콩이 2

 

! 여기가 어디지?’

한숨 늘어지게 잤다. 그러다 숨 막히게 덥고 답답해서 눈을 떴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콩이는 깜짝 놀랐다.

낯선 차였다. 항시 타고 다니던 꽃님 선생님 차가 아니었다.

! 맞다. 그랬었다.’

콩이는 자기가 차에 타게 된 이유를 번뜩 떠올렸다.

그러니까 콩이가 꽃님 선생님 방에서 나온 건 파도와 갈매기 때문이었다.

꽃님 선생님 방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차르르르! 철썩!’

푸른 파도가 차르르 밀려왔다 차르르 밀려가며 하얀 거품을 내뿜었다. 그 파도 위로 갈매기들이 춤추듯 날았다.

그날도 콩이가 창밖에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을 때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창문턱에 앉더니 말을 걸었다.

! 고양이. 너 이름이 뭐냐?”

? 콩이라고 해. 그러는 넌?”

난 끼룩이야. 우리들은 갈매기야. 저 푸른 바다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근데 콩이 넌 왜 방안에만 있느냐? 날마다 널 지켜봤거든.”

, 그건.”

콩이는 끼룩이에게 대답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밖에 나가기가 왠지 무서웠다. 또 항시 문이 닫혀있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답답하지도 않냐? 한 번 창문을 밀어봐.”

콩이는 살그머니 창문을 밀어보았다. 쉽게 열렸다.

! 쉽게 열리잖아. 가자. 바다 구경하러.”

콩이는 훌쩍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끼룩이를 따라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 갯벌 구멍집에 사는 애들은 게라고 해. 또 펄떡펄떡 뛰어다는 애들은 짱뚱어, 그리고 저 물길에 있는 주욱 늘어선 애들은 조개와 고둥, 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애들은 따개비야.”

끼룩이가 콩이에게 바닷가 식구들을 알려줬다.

! 파도와 갈매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참 많구나.”

너무 신이 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콩이가 방파제까지 왔을 때다. 방파제는 사나운 파도를 막아주는 둑길이다. 그 방파제에 빨간 등대가 있었다.

, 어디 갔지?”

끼룩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빨간 등대 앞에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멋진 차였다. 조심스레 살펴보니 차 뒷문 한쪽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좌석에는 소고기 육포가 있었다. 콩이가 좋아하는 거였다.

콩이는 날름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뒷문이 콩이 꼬리에 걸리며 쾅 닫혔다. 문이 닫힌들 어쩌랴? 콩이는 육포를 맛있게 먹었다.

차 안이 차츰 후덥지근해졌다. 몸이 나른해지며 잠이 쏟아졌다. 콩이는 그만 스르르 잠에 빠졌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거기까지 생각을 떠올린 콩이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봤다.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가 아니었다. 바다가 아닌 낯선 산골짜기였다. 깜빡 잠이 든 동안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 문은 닫혀있고 혼자였다.

! 숨 막혀. 더워. 답답해!’

쨍쨍 뙤약볕이 내려쬐는 곳이었다. 차안은 찜통처럼 더웠다. 차츰차츰 더 더워졌다. 마침내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콩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어떻게든 차안에서 나가려했다. 하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버렸다.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니! 이거 뭐야? 고양이잖아.”

더워서 죽었나봐. 혀를 쑥 빼물었어.”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갔다 돌아온 차 주인이 콩이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언제 차안으로 들어온 거야. 에이, 재수 없어.”

차 주인은 축 늘어진 콩이를 길가 고랑으로 휙 던져버렸다.

얼마큼 시간이 흘렀을까? 콩이가 눈을 떴다. 콩이가 버려진 고랑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시원한 고랑물이 다행스럽게도 콩이를 살린 것이다.

그날부터 콩이는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곳은 차들이 쉬어가는 언덕 위 쉼터였다. 음식을 먹기도 했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덕분에 콩이는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무더운 여름이 한참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그날도 콩이는 언덕 위 쉼터 으슥한 곳에 숨어서 쉬어가는 차를 기다렸다. 아침을 굶어서 배가 출출했기에 차 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한 낮이 다될 무렵이다. 마침내 차 한 대가 쉼터에 섰다. 큼직한 외제차였다.

젊은 부부가 내렸다. 그런데 두 사람이 싸우는 듯 했다. 서로 화난 목소리로 다투더니, 여자가 숲 쪽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남자가 갔다.

옳지 됐다. 먹을 게 있나 봐야지.’

콩이는 잽싸게 큼직한 외제차로 다가갔다.

쨍쨍 뙤약볕이 내려쬐는 곳이다. 콩이가 지난번 죽을 뻔했던 그 장소였다.

아니 저게 뭐지?’

차안에 아기가 있었다. 뒷좌석에서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득, 콩이 눈에 차안에 갇혀 죽어가는 자기 모습이 비추었다.

안 돼!’

콩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찻길로 왔다.

저만큼 차가 한 대 보였다. 콩이는 길 한가운데서 펄쩍펄쩍 뛰었다.

미친 고양이다. 날이 더워 미쳤나봐.”

첫 번째 차는 휭 지나가버렸다. 콩이는 하마터면 그 차에 깔릴 뻔했다.

잠시 뒤 또 차 한 대가 보였다. 콩이는 다시 길 한가운데서 펄쩍펄쩍 뛰었다.

뭐야? 저놈의 고양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 ! 소리만 요란하게 두 번째 차도 그냥 가버렸다. 이번에도 콩이는 하마터면 그 차에 치일 뻔했다.

한참 뒤 또 차가 보였다. 트럭이었다. 콩이는 다시 길 한가운데서 펄쩍펄쩍 뛰었다.

오빠! 멈춰. 이상한 고양이야. 사진 좀 찍어야겠어.”

! 진짜 이상하다. 무슨 일이 있나보다.”

트럭에서 남매가 내렸다.

아무래도 무슨 이유가 있어.”

콩이의 이상한 행동에 오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동생은 사진을 찍었다. 펄쩍 뛰고 한 걸음, 또 펄쩍 뛰고 한 걸음씩 걷는 콩이를 따라갔다.

! 아기다.”

큰일이다. 이 찜통더위에 아기를 차안에 놔두다니.”

콩이를 따라온 남매가 차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 울지도 않고 축 늘어져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망치가 있어야겠다.”

오빠가 트럭으로 가서 한달음에 망치를 들고 왔다. 승용차 유리창을 깬 뒤,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콩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생 옷자락을 끌어 고랑으로 데려갔다. 고랑에는 여전히 졸졸졸 시원하게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지 며칠이 지난 뒤다.

엄마! 인터넷 뉴스 동영상 좀 보세요.”

꽃님 선생님의 딸이 전화를 했다,

인터넷 뉴스에 아기를 구한 고양이 이야기가 동영상과 함께 실렸다고 했다. 고양이의 재치로 차에 갇힌 아기를 살렸다는 것이다. 그 고양이가 목숨을 걸고 차를 멈추게 하고, 물이 흐르는 고랑까지 알려줬다고 했다. 그 고랑의 시원한 물로 아기는 몸을 식히고 숨을 쉬었다고 했다.

엄마! 뉴스 동영상에 나오는 고양이가 꼭 우리 콩이 같아요.”

알았다. 그 뉴스 동영상 보고 전화하마.”

전화를 끊고 꽃님 선생님은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마음도 콩콩 뛰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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