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일몽 일일천하
구일몽 일일천하
복수초(福壽草)는 복수(復讐)하는 풀이 아니다. 이른 봄의 이 황금색 꽃은 황금잔 모양이어서 측금잔화, 설날에 피어 원일초, 눈 속 연꽃인 설연화, 꽃 주위 눈이 녹아 얼음새꽃, 눈꽂송이 등으로 부른다. 이 복수초에 맹독이 있어 꺾거나 만지고 먹게 되면 사망에도 이른다. 꽃말이 동양은 ‘영원한 행복’, 서양은 ‘슬픈 추억’으로 복 받은 복수나 원수 갚는 복수는 따로가 아닌 동전의 양면처럼 항시 함께함이니 경계할 일이다,
임진왜란 때이다. 의금부 도사를 지낸 동래 정씨 정운길은 경북 상주에서 임란의 명장 정기룡(1562~1622)을 따라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함평 월야 지변마을에 정착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8월 말에 왜적이 장성에 이르자, 마을 젊은이들을 이끌고 참전 지변마을에서 4km 거리인 삼서면 우치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아들 정돈은 8월 29일 백여 명의 노복을 이끌고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 복수의병장으로 출전 역시 순절하였다.
장흥 고씨로 광주 남구 압촌동에서 태어난 고종후는 1577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있다가 고향 집에 있을 때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아버지 고경명의 뜻에 따라 동생 고인후와 함께 600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그러나 금산 전투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전사하고 용케 살아남아 시신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1593년 6월 22일부터 29일까지의 제2차 진주성 전투 때이다. 왜는 제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복수한다며 7만 대군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몰려왔다. 이에 관군과 일부 의병이 성을 비우자면서 물러났으나, 고종후는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 복수의병장의 기치를 들고 최경회의 관군과 김천일 의병에 합세했다. 끝까지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전쟁은 전략과 전술 운용이 관건이다. 전략은 전쟁을 이끌어가는 방법이나 책략이고, 전술은 다양한 전투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과 방법으로 이 결과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이때 전술의 하나인 복병은 군사를 숨기는 매복 행위, 혹은 적을 기습할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숨겨둔 군사이다. 일단 군대가 대형을 갖추고 전투에 나서지만, 갑자기 나타난 복병 앞에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복병 때문에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내려앉고 결국 궤멸당할 수도 있다. 정유재란에 이순신을 모함하여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차지한 원균이 왜의 복병에 허덕이다가 칠천량에서 궤멸당한 것도,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이유가 그 복병 전술 때문이다. 더하여 한밤중에 12·3 내란처럼 벼락치기로 대통령 후보를 갈아치우려다 당원의 복병 반란에 9일몽에 1일천하, 달그림자 망상으로 끝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복수나 복병은 적에게 쓰는 것이다. 하지만 태극기에 성조기로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무리, 이 비루한 환호를 받는 윤석열과 잔당 정권은 12·3 내란도 부족해 곳곳에 아군을 잡는 복병을 두고 있다.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는 이영림, 뜬금없는 시간 계산으로 내란수괴를 감옥에서 풀어준 지귀연, 이에 맞장구로 ‘얼씨구나’ 즉시 항소를 포기한 심우정, 헌법재판관 임명은 거부하고 응큼슬쩍 내란 수사대상 이완규를 내세운 내란수괴 대행 한덕수가 그들이다. 또 희대의 살인마나 사기꾼처럼 벼락 심리로 희대의 희한한 판결을 내린 조희대, 대선후보 김문수 갈아치우기인 한밤중의 노름판으로 웃음거리가 된 권영세, 권성동, 한덕수 등이 바로 그 적군은 ‘나 몰라라’ 하고 아군을 잡는 대표 복병이자 세작이다.
국민은 일제의 황국신민이란 말이다.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 자신을 ‘대한국민’이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 보면 지귀연, 심우정, 한덕수, 권성동 등은 대한국민을 복수의 대상으로 여긴 윤석열 12·3 내란 복병이다. 또 이들을 따르는 김문수 등 내란 추종 무리는 황국신민인 국민,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국민은 안중근 참모중장의 대한국민이다. 다가오는 6월 3일, 대한국민이 황국신민을 떨치고 승리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2025. 5. 13 호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