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화

황녀의 영웅들 1권-신들의 시대

운당 2015. 9. 8. 06:19

(2) 지유

 

궁희는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처리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광활한 우주를 향해 달려가는 빛들을 살폈다. 어두운 우주의 곳곳에 널려있는 별무리들을 둘러보았다.

셀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새로 태어났다. 또 셀 수 없는 별들이 사라졌다. 어쩔 땐 별무리들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의 별무리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점검하고 기록하여 마고에게 보고하였다.

소희도 오음칠조와 우주의 소리가 뒤섞여 흐트러지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각 음들이 제 자리에서 소리를 내도록 점검하고 가다듬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마고에게 보고하였다.

마고성은 한동안 그렇게 평화로웠다. 별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들이 관찰이 되고, 오음칠조도 우주의 소리와 순조롭게 다스려졌다. 그렇게 마고성은 부드러운 빛으로 따뜻함이 넘쳐흘렀다. 소희가 잘 다듬은 오음칠조의 맑고 아름다운 음이 흘러 마음을 맑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우주의 별무리들을 살피려고 며칠 동안 성 밖으로 나갔던 궁희가 돌아왔다. 성문을 들어와 천신궁으로 향하던 궁희가 무심코 성벽 아래쪽을 보았다. 성벽 아래에 작은 웅덩이가 파이고 이상한 것이 보였다. 처음 보는 하얀색의 물질이 철철 샘솟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흙을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궁희는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갔다. 조심조심 살펴보며 손으로 만져보았다.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마침 저만큼 소희가 보였다.

이리와 봐요. 소희! 이거 뭐지요?”

며칠 만에야 우주에서 마고성으로 돌아온 궁희를 보고 반갑게 다가오던 소희가 걸음을 빨리했다.

이게 뭘까요? 나도 처음 보는 걸요.”

소희도 처음 보는 물질이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여길 지나쳤는데, 그 땐 아무 일도 없었지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빨리 마고님께 보고를 드려야겠어요.”

그렇게 하기로 해요.”

궁희와 소희는 천신궁으로 걸음을 빨리 했다.

마침 마고는 천신궁에 나와 있었다. 궁희와 소희는 엎드려 예의를 갖춘 다음, 마고대성의 성벽에 생긴 이상한 일을 보고했다.

마고님! 우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성벽 아래에서 이상한 일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없었던 일입니다.”

궁희와 소희의 이야기를 듣고 난 마고는 이미 짐작한 일이라는 듯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함께 가보자. 이제 너희들에게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될 거다.”

마고는 휘적휘적 큰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마침내 성벽에 이르러 궁희와 소희에게 물었다.

너희들 빛이 어떤 일정한 모양이나 형태를 갖추고 있더냐?”

아닙니다.”

궁희와 소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면 어둠이 일정한 모양이나 형태를 하고 있더냐?”

마고가 참 이상한 것을 묻는다 생각하면서 궁희와 소희는 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이 성을 쌓은 돌들은 어떠하냐?”

돌들은 어떤 형태의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 빛이나 어둠은 일정한 모양이나 형태가 없는 물질이다. 그러나 돌들은 어떤 모양이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 세상에 또 하나의 새로운 물질이 생겨났다. 바로 이 물질이다. 이 물질은 크기나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형태와 모양을 갖는 물질과 갖지 않는 물질의 중간쯤 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린 그와 같은 모든 물질을 액체라고 부를 거다.

그럼, 이게 액체인가요?”

맞다. 그리고 이 액체는 땅에서 나오는 지유라는 샘물이다. 땅의 젖이다.”

땅의 젖이요?”

그렇다. 이 세상의 만물을 먹여 살릴 귀한 샘물이다. 이제 이 마고성에 새로운 생명체가 살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증표기도 하다.”

새로운 생명체요?”

그렇다. 창조자 마고, 짐의 뜻이다. 너희들은 이제 두려워말고 하루에 한 번씩 여기 젖샘에 와서 이 지유를 마셔라.”

오랜 세월, 그 알 수 없는 오랜 세월동안 실달성과 허달성의 정기가 마고성으로 모였다. 또 오랜 세월을 지나며 그 정기가 마고성의 낮은 쪽으로 가라앉았다. 시냇물처럼 흘러 더 낮고 깊은 곳으로 흘러 모였다. 그렇게 한군데로 모이고 모이니 이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마고대성의 땅바닥을 뚫고 솟구쳐 나온 것이다.

지유는 지금의 젖과 비슷한 물질이었다. 다만 지유는 젖처럼 기름지고, 부드럽고, 고소했으나 결코 배가 부르다는 걸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마고는 이 지유가 앞으로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릴 거라고 했다. 마고성에도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날 증표라고 했다.

궁희와 소희는 매일 아침 젖샘으로 나갔다. 마고성 밖으로 멀리 나가지 않을 때면 항시 그렇게 둘이 만났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하루만 안 보아도 마음이 이상했다. 허전하고 일손이 안 잡혔다.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궁희가 안 보이면 마고성 여기저기를 찾아 다녔다.

, 성 밖으로 일을 나갔지.’

궁희가 우주로 나간 걸 깨닫고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하루라도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보고 싶었다. 하지만 궁희와 소희는 그립고 보고 싶은 게 무엇 때문인지, 또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