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37)
13. 5천 결사대
“마침내 신라와 당나라가 출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서기 660년이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향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급해진 의자왕이 전남 장흥 땅 고마미지현으로 급히 사람을 보냈다. 유배를 보낸 좌평 흥수에게 나당군의 침입에 대한 계책을 물었다.
흥수가 두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쓴 글은 다음과 같다.
‘대왕이시여! 날랜 군사를 보내 당나라 군대가 백강의 기벌포를 건너지 못하게 하고, 신라 군대가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소서. 성주들은 성문을 닫아걸고 적군의 물자와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게 하시오. 그리하여 적이 지치면 맹렬히 공격하시오.’
그러나 한심했다.
“흥수의 말을 따라선 안 됩니다.”
흥수가 왕을 원망하여 적을 이롭게 하는 말을 한 것이다. 오히려 당나라 군사들이 백강으로, 신라 군사가 탄현으로 들어온 뒤 막아야 한다.
“그러면 항아리 속의 자라를 잡듯이 양 적군을 일시에 격살할 수 있습니다.” 대신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했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당군과 신라군이 기벌포와 탄현을 지나 진격해온다고 했다.
의자왕은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자기 주위를 둘러보니 믿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의 실책을 뉘우쳤다. 하지만 때가 늦고 상황은 너무도 다급했다.
이제 단 한 사람 계백 밖에 없었다. 성충과 흥수를 두둔한다고 그동안 계백을 멀리했던 의자왕이다.
“이봐라. 계백을 급히 들라하라.”
의자왕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계백을 불렀다.
“이제 백제를 구할 사람은 그대밖에 없소. 백제군의 지휘권을 그대에게 줄 테니 적을 무찌르고 백제를 구하시오.”
“예, 대왕! 목숨을 바쳐 백제를 지키겠습니다.”
사비성을 나오며 계백은 성충과 흥수의 충언을 떠올렸다. 그들 모두다 백제를 지키려면 육지는 금산의 숯고개, 바다는 금강 하구인 기벌포를 지키라고 했다.
하지만 당군은 기벌포를, 신라군은 이미 숯고개를 넘어와 버렸다. 가장 험한 그곳을 미리 막았어야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 황산이 뚫리면 도성인 소부리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어떻게든 황산의 지형을 활용해 5만의 신라군을 막아내야 한다. 13만의 당나라군은 그 다음 문제다.
계백의 눈앞에 불타오르는 사비성, 처절하게 죽어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어른 거렸다.
‘아니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계백은 고개를 흔들어 그런 모습을 떨어버렸다. 지금은 죽는 순간까지 적과 맞서 싸우는 것뿐이다.
의자왕의 부름을 받기 전에 계백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눈앞에 닥친 위기를 해쳐나갈 묘책이 없었다. 모든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계속>